역대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비해 유난히 제9대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말들이 많다. 서천군의회 구성원인 의원들은 군민을 대신하라고 선거를 통해 뽑아준 대변자로 서천군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고 아울러 군민이 불편을 겪는 민원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책무가 있다. 다만, 군의회 의원들은 서천군 집행부의 정책을 의결하지만, 그 집행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즉, 집행부 행정의 감시와 견제만 할 수 있을 뿐 행정 집행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천군 집행부 역시 군의회가 의결한 정책을 집행하지만, 그 의결에 관여하면 안 된다. 그래서 현행 지방자치법에 의회(의결기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집행기관)을 분립해 상호 대등한 위치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제9대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놓고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9대 첫 행정사무감사 회기 기간에 이지혜 의원이 감사권을 활용, 방대한 서류제출을 요구하는 등 갑질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에 서천군의회와 서천군 집행부는 올해 초 의회의 서류제출 요구를 놓고 회기 중 이외 폐회 중에도 군의회 의장의 결재하에 정식 공문을 통해 서류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것에 합의했다. 합의한 결과, 현재 상황을 보면, 일부 군의회 의원들의 사무실 앞에는 서류제출과 정책 집행 설명을 위해 대기하는 공무원들도 늘어나고 대기하는 시간 역시 최소 2~30분씩 기다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강선 의원은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문제가 있다며 담당 팀장에게 마치 집행부의 수장인 군수인 양 질타를 하는 등의 의정활동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군청 A 팀장은 지난 7일 공무원 내부 통신망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 아래 선을 너무 많이 넘은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미심장한 글로 이 의원의 왕성한 의정활동을 비판했다. 그는 “이 의원이 35도가 넘은 폭염에 온열질환으로 3명의 사망자가 발생, 이를 예방하기 위해 드론을 투입해 예찰에 나선다는 보도기사를 보이며 ‘업무 효율성·행정력 낭비’라 질타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잘못된 행정이라는 답변 받기를 원하듯 고압적인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라면서 “혹여 사업이나 운영계획서의 결재란에 의원님을 추가해 주기를 바라시는 건지요”라고 비꼬았다. 이어 “의원님의 왕성한 의정활동에 수많은 자료 제출과 보고하기 위해 문 앞에서 2~30분씩 대기하는 직원들의 고충 또한 행정력 낭비가 아닌지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 의원은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에서 해안 쓰레기 관련 현장 방문 시 안전요원들에게 막말했다는 의혹 제기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의원은 ‘그런 일 없다. 정당한 의정활동이었다’라며 ‘정치 공세’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당시 이 의원이 먼저 묻기 전에 서천군의회 의원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사뭇 궁금하다. 혹여 내가 서천군의회 의원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아랫사람 대하듯 군민을 상대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말이 나온 김에 서천군의회의 ‘특권’ 의식에 대한 민낯을 보자. 이달 들어 군청 신청사 지하 주차장에 의회 주차장 8면이 등장했다. 말인즉슨 의원들의 왕성한 의정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지만, 민원인 또한 이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군민의 대변자로 군민을 위해 머슴처럼 일하겠다는 군의원들이 결국, ‘특권’을 누리겠다는 의식에 갇혀 나온 발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다수 군민은 지하 주차장에 민원인을 위한 주차 공간이 조성된 줄도 몰라 체감온도 35도가 웃도는 폭염 속 땡볕이 내리쬐는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 하물며 의회 사무과 한 직원은 ‘개인 생각으로는 민원인이 1층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면 더 편리할 것 같다’라고 말해 더욱 끔찍했다. 과연 군의회가 군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 직원 말대로 편리성을 말한다면, 군의원들이 군의회 방문에 수월하고 편리한 1층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군민은 땡볕에 주차해야 하고 정작 본인들은 그늘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이제라도 군의회는 ‘특권’ 의식을 버리고 군민만을 바라보며 더 낮은 자세를 갖길 바란다. 또한, 집행부 정책의 감시와 견제를 철저히 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해야지만,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무리하게 관여하거나 고압적인 월권행위 역시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이를 바라보는 군민의 눈은 날카롭고 더욱 매섭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민의 머슴이라던 서천군의회 의원들이 군민 위에 군림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다. 특히 군청 신청사를 방문한 민원인들이 30도가 웃도는 땡볕인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데도 사실상 군의회 의원들의 차량 주차를 위해 8개 면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빈축을 사는 등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군에 따르면 신청사 지하 주차장은 장애인, 경차 등 총 42면으로 조성됐으며 이 중 최근 군의회 청사 입구 인근 8면에 의회 주차 알림판을 설치하는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주차장 8면에 의회 주차 알림판을 바라본 군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sbn뉴스에 제보한 한 군민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민원인은 땡볕이 내리쬐는 외부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군의회 의원들은 그늘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 자체가 과연 정당한 것이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 군민은 “지방선거 당시 군민을 대신해 머슴처럼 일하겠다고 외쳤던 군의원들이 군민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니 결국, 군민이 머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며 “서천경찰서 민원인 주차장 조성 공간을 보고 배우라”고 꼬집었다. 이에 군의회 사무과 관계자는 “신청사 이전 후 군의회 의원들의 출근이 매일 있고 민원들의 방문도 자주 발생해 군 집행부와 협의를 통해 의회 주차 8면을 조성하게 된 것”이라며 “꼭 의원님들을 위한 주차 공간이 아닌 민원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민원인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1층 외부 주차장 이용하는 것이 민원 업무를 보시기에 더욱 수월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군의회 일부 의원은 주차장 이용 시 시행하고 있는 차량 5부제를 무시한 모습도 보였다. 군은 신청사 주차장의 혼잡을 막기 위해 차량 5부제를 통해 요일별로 차량 끝 번호가 ▲월요일 1, 6번 ▲화요일 2, 7번 ▲수요일 3, 8번 ▲목요일 4, 9번 ▲금요일 5, 0번 등으로 주차장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sbn뉴스가 지난 8일 지하 주차장 현장을 취재할 당시, 김경제 의장 차량이 해당 주차 공간에 주차됐고 주차된 김 의장의 차량 끝 번호는 화요일에 출입이 제한된 7번인 것으로 나타나 씁쓸함을 남겼다. 게다가 민원인이 이용하는 주차 공간은 이미 차량으로 채워져 빈 곳을 찾아 개구리 주차를 하는 한편 의회 주차 알림판이 부착된 공간에는 의장 의전차량과 의장 소유 차량, 홍성희 의원 차량 등을 제외한 5곳은 텅 빈 곳으로 남아 있었다. 이와 관련 김경제 군의회 의장은 “군의회 의원뿐만 아니라 민원인들 역시도 해당 공간에 주차할 수 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막말 파문 논란에 휩싸인 이강선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을 상대로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이 주민소환 추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정치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희 대장은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초의원 주민소환제 관련한 서류 및 처리 절차에 대한 문의를 마치고 이강선 의원의 주민소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이는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에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방문한 이 의원이 해수욕장 인명구조 안전요원에게 ‘싸가지 없다’라고 막말 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정한 사과도 없이 ‘정치적 타격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라는 이 의원의 일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한 2차 가해로 생각이 든 이 대장의 화를 더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장은 지난 6일 SNS(페이스북)를 통해 “진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서천군의회 더불어민주당은 공천할 때 뭐 보고 공천합니까. 도대체 주민들 고발하고 신고 잘하는 사람 공천하는 겁니까. 궁금합니다”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인지했다는 나소열 전 정무 부지사가 이 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제가 공천했다’라며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번 사태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나 전 부지사의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이에 이 대장은 나 전 부지사의 진정 어린 사과에 맞춰 이번 사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일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진정 어린 사과 대신 ‘정치 공세’라고 반박에 나선 것이 알려지면서 2차 가해로 판단, 이를 묵과할 사안이 아닌 그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이 이 대장의 숙고 끝에 내린 행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장은 지난 6일을 기점으로 SNS(페이스북)를 통해 이 의원의 막말 파문과 의정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맹비난을 쏟았다. 그는 또 지난 7일 SNS(페이스북)를 통해 “올린 글 중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처벌받겠지만, 올린 글이 모두 사실이라면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을 향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캐묻고 공무원들을 괴롭히고 있다”라며 “군의원 연봉 3,500만 원이 아깝다”라고 비난했다. 이어 “주민에게 봉사하라고 완장 채워주니 보이는 게 없냐. 어떤 세상인데 주민들에게 ‘싸가지가 없네. 영업허가가 있네 없네 하냐”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이 없다는 이가 어떻게 군민을 대변할 수 있냐”라며 주민소환 추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부응하듯 일부 동조자들은 줄지어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사를 밝히면서 신청서를 제출하겠다는 등으로 이 대장의 행보를 응원하고 나섰다. 또한 한 네티즌은 “의원이 되면 다 그런가 봐요. 도대체 뭐가 그리 만들까요? 세상 사람은 다 똑같은데 진짜 잘못한 사람한테는 말 한마디 못 하면서 힘없는 사람한테만 큰소리치는 제일 못난 사람들~~~”라며 이 대장이 올린 글에 화답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서면질의에서 이강선 의원은 이희 의용소방대장이 주장하는 사실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며 허위사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외국인들의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과 범죄예방 활동을 위한 외국인 자율방범대 지원 대책이 마련됐다. 서천경찰서에 따르면 외국인 자율방범대는 지난 2016년 5월 남다른 주인의식 속에 범죄예방 활동 참여하고자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 주민 22명의 구성원으로 출범했다. 이 방범대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접 참여해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든다’라는 목적 아래 주 2회 외국인 밀집 지역 중심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방범대 운영에 따른 예산 부족 등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그동안 체계적인 방범대 활동에 제한받아왔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서천군과 서천군의회를 방문, 외국인 자율방범대 운영의 활성화를 위한 예산지원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이에 따른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 1일 서천군의회가 지역사회에 민간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 ‘서천군 자율방범대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서천군 집행부 역시 이에 따라 외국인 자율방범대에 예산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서천지역에 등록된 외국인은 총 1,531명이다. 특히 등록 외국인 중 서면 660명(43%), 장항읍 439명(28%), 서천읍 104명(6.7%)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례 개정안으로 외국인들의 자발적인 자율방범대 활동이 지역주민의 다문화 인식 개선 등과 함께 치안공동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서천경찰서는 기대했다. 또 외국인들의 많이 분포되어있는 지역의 치안 불안 해소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찰서 관계자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인한 농어촌현장의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할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외국인 자율방범대를 가동해 맞춤형 순찰을 시행하는 등 내·외국인 주민 간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2020년부터 올 7월까지 서천군 외국인 범죄 발생은 총 104건으로 이중 사기 범죄가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교통 범죄가 32건으로 뒤를 이었으며 폭력 범죄가 18건, 절도 범죄가 7건, 기타 범죄 4건 등으로 나타났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최근 충남 서천지역 주택에서 침입 절도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가운데 서천경찰서가 특단의 조처를 강구하는 등 범죄예방에 나섰다. 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6월 서천읍에 있는 한 주택 안방 침대 밑에 보관 중인 금반지, 금목걸이, 은 40돈, 진주목걸이 등을 침입 절도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마서면에서는 집을 비운 사이 절도범이 집안으로 침입해 현금 200만 원을 훔쳐 달아났으며 장항읍에서는 빈집 방충망을 뜯고 침입한 절도범에 의해 금반지, 금목걸이 등 총 580만 원 상당을 도난당했다. 또한, 서천지역에서 최근 3년간 92건의 침입 절도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여름 휴가철(7~8월)에는 40건(36.8%)이, 연말(11~12월)에는 36건(33.1%) 등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였으며, 주간 시간대에는 55건(59.8%)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서는 침입 절도로 강도·성폭력 등의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지역치안협의회와 함께 사업비 약 700만 원을 투입해 침입 감지시설(HOUSE-GUARD)을 본격적으로 설치할 방침이다. 이 침입 감지시설은 주민들의 범죄 불안감 증폭을 막기 위한 것으로 여성 안심 귀갓길, 외국인 밀집 지역, 침입 절도 상습 발생 지점 등 취약 지점 50개소를 선별해 설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찰서는 침입 감지시설 설치 희망자를 모집한다. 경찰서 관계자는 “오는 21일까지 서천경찰서 생활안전계 또는 가까운 지구대·파출소에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라며 “신청 완료 후 범죄예방 진단 등 필요성 여부를 판단해 설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침입 감지시설은 건물 외부(2층 높이)에 설치하여 태양광으로 상시 충전되고 고성능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사람 등의 물체를 센서가 인식하는 경우 LED 불빛이 점등된다. 또 ‘무단출입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송출되어 사전 경고를 하게 되며, 시인성이 좋은 설치 안내판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충남 서천군 기산면 광암리 삼거리에서 화양면 추동리 방향으로 420m 지점에서 활동리를 지나 1㎞쯤에 대등리(옛 숭문북동)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은 17세기 한집안에서 8 문장가를 배출한 고령신씨(高靈申氏) 석북 신광수(申光洙1712~1775) 4남매와 자녀들이 청빈하게 살았던 숭문동의 선대와 가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골짜기 어귀에는 복사꽃 피어/앞마을 이웃들은 눈이 부시네./시인은 내키는 대로 길을 가노니/봄새는 제철 만나 지저귀누나./세상 길이 한 해 한 해 바뀌어 가도/천기(天機)는 하루하루 다시 살아나네/저녁 바람 흰 머리에 불어오는데/냇가에서 마음을 가누지 못하네.” 이 시는 영조 때의 저명한 시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고향 한산의 숭문동(崇文洞-지금 화양면 대등리)에 머물 때 썼던 시(詩)이다. 복사꽃 활짝 피어 눈부신 세상이 되면 누군들 들로 산으로 꽃구경 가고 싶지 않으랴? 당시의 숭문동은 복사꽃이 만발하였을 것 같다. 1. 숭문동 입향조 순창공 신영원 고령신씨(高靈申氏) 석북 신광수의 6대조 순창공 신영원(申永源1496∽1572)이 전남 순창에서 한산 숭문동으로 정착하면서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 이윤수(李允秀)의 딸과 결혼하여 숭문동(활동리) 처가에서 살았다. 신영원은 아들이 어성 신담(申湛 1519∽1595)으로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이었다. 그 후손 신호(申澔)와 성산이씨는 석북 신광수(申光洙), 신광연(申光淵)을 낳고 일찍 돌아가셨다. 보령 청라 이천령(李千齡)의 딸인 둘째 부인 전주이씨는 진택 신광하(申光河)와 여류시인 부용당신씨(芙蓉堂申氏)를 낳았다. 신광수는 아들 5명을 두었고 숭문동에서 4남매 등 조선의 8 문장가를 배출하였다. 신광수의 7대손이 신석초(申石艸-본명 應植 1909~1975)도 1950년대 한국의 대표 시인이기도 하다. 2. 석북 신광수의 생애 및 활동 석북 신광수는 영조 때 남인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과 교우하였으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남인을 철저히 배척하는 노론들 때문에 17년간 과거를 포기하고 찌든 삶을 살았다. 모친께서 한 번만이라도 과거를 보라는 부탁 때문에 늦은 나이 61세에 기로과(耆老科)에 장원급제하여 병조참의와 영월부사를, 1775년 64세에 우부승지를 역임하였다가 그 해 파주 장릉(長陵-인조릉)의 제관으로 가던 중 찬비를 맞고 감기로 4일 만인 1775년 4월 26일 사망하였다. 그 후 장례는 6월 15일에 한산 숭문동인 신광수의 옛집 남쪽 100m 지점 장사를 지냈다. 3. 석북 신광수 새집 신축 과정 그동안 신광수의 집터에 대하여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석북집(石北集)에서 1749년도 2월 15일자 숭문동에 신광수의 새집을 짓는 토지 축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의 위치와 방향 주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때는 1749년 2월 15일에 고령 신광하(申光河)는 감히 토지의 신령께 고하나이다. 집터는 뒤로 큰 산이 등지고 동북 방향입니다. 집터의 자리는 신비스럽게 빛나며, 드높고 충만합니다,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자리하고 그 원기는 극에 달았습니다. 실로 이러함에 나의 집터로 열고자 하나니 새로 짓는 집이 후손들로 하여금 선조(석북 신광수)의 집이라 하게 하소서”--이하생략-- 【維太歲己巳二月己卯朔十五日癸巳。高靈申光河。敢昭告于土地之神。維嶽艮位。赫靈磅礴。爲虎爲龍。元氣所極。實開我基。先祖是宅--】 집의 방향은 뒷산 어성산(漁城山)의 높은 산을 동북방향을 등지고 남서쪽을 향하고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을 갖춘 명당임을 밝히고 있다. 토지신축문은 석북 신광수가 짓고 동생 광하가 고하였다. 4. 석북 신광수 학문을 계승한 한산지역 유학자들 석북 신광수는 당대의 쟁쟁한 문인, 정치가인 채제공(蔡濟恭), 이헌경(李獻慶), 이동운(李東運)과 만년에는 정범조(丁範祖), 목만중(睦萬中) 등과도 많은 교류를 하였다. 그러나 제자로 가르친 문인들은 있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산지역인 화양면 숭문동(활동, 대등)을 비롯하여 대하리, 추동리, 육원리, 봉명리 등에 석북 신광수의 정신과 학문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있었다. 추동 덕수이씨 이안진(李安眞-한산군수역임) 6세손 두실 이환모(李煥模1735∽1821), 대하리 나주정씨의 서천 입향조 정휘신(丁徽愼)의 아들 동은(東隱) 정지묵(1748∽1829), 두실 이환모의 학문은 봉명리의 굴재(掘齋) 이방규(李方珪1862∽1947)로 이어졌다. 두실 이환모는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고 부친 이유의 셋째 아들로 많은 글을 남겼다. 이환모는 양죽헌 이송년(李松年-초명 이초만) 양죽헌 유고집(養竹軒 遺稿集)의 서문을, 또한 석북 신광수 아들 신석상(申奭相 1737∽1816 정산 현감 시절:1800년)도 서문을 썼고, 봉명리 굴재 이방규는 발문을 썼다. 이방규는 동강중학교를 설립한 청암 이하복(李夏馥)선생을 가르친 스승이다. 두실 이환모(李煥模)는 문집 두실오언(斗室寤言)의 문집 6권을 남겼지만, 발간되지 못했다. 나주정씨인 동은 정지묵(1748∽1829)은 신광수 제자로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말년에 정지묵은 한산 고촌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의 원장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영모리 숭정산 선산에 자리하고 있다. 그 후손들은 대하리, 기복리에 정착하여 세거하고 있다. 5. 석북 신광수(申光洙) 진사(進士) 합격과 숭문동 문희안(聞喜宴) “도홍선(桃紅扇)은 한삼소매 툭 쳐서 날리고/ 우조영산(羽調靈山)은 당세 독보적이라네./ 작별할 때 춘면곡(春眠曲) 다시 한 가락 부르고/ 꽃 떨어지는 시절에 강을 건너 돌아가네” 이 시는 우리 고장 숭문동 고령신씨 8문장가를 배출한 사람 중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 1712∽1775)가 1750년 2월 늦은 나이인 39세에 진사과시(進士科試)에 합격하여 고향 숭문동(화양면 대등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신이 자기 집으로 친구와 친척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 때 당대 최고의 명창이었던 원창(遠昌)의 부채에 써준 석북 신광수의 시(詩)이다. 당시에는 노론이 집권하고 있었기에 남인은 정계에 진출하기 어려웠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노론계의 인사가 아니면 과시에 합격할 수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삼일유가(三日遊街)를 즐겼다. 과거에 급제한 석북 신광수도 어사화를 꽂고 사흘 동안 시관과 선배, 친척을 방문하며 인사를 드리고 고향에서 문희연(聞喜宴)도 벌였다. 석북 신광수 주변에는 장안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등 음악인들이 많았다. 뒤늦게 진사에 합격한 석북의 삼일유가에 친구들이 동원되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석북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동원된 음악인들, 석북이 지은 시를 노래한 음악인들, 이들 각각이 이루는 교유의 방식과 내용은 달랐다. 그 현장 가운데 가객인 판소리 광대 원창(遠昌)은 석북이 노래를 좋아하였기에 39세 늦게 과거급제하고 숭문동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던 것이다. 아마 이 때에 가객(歌客) 이세춘도 참석하지 않았을까. 석북은 생활이 궁핍하였기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대 원창에게 출연료를 지급할 수 없었다. 석북 신광수는 보답으로 출연료 대신 복숭아꽃이 활짝 핀 합죽선에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그 시가 석북집에 남아 있다. 광대 원창은 그것을 받아 귀한 보물로 여기고 돌아갔다. 일화로는 석북이 시를 써준 부채를 가지고 궁중의 공연 때도 자랑하고 다녔다고 전한다. 석북집에 남아 있는 당시 삼일유가의 모습을 그린 시에 “복사꽃은 취한 듯 버들은 조는 듯/ 쌍적(雙笛-2개의 피리) 소리 봄바람에 말 앞에 서네/ 서른아홉 살 신진사(申進士)를 길가에서 사라들이 가리키며 자신에게 신선(神仙)이라 하네”라고 남겼다. 또한 공연장에서는 나이어린 광대도 출연하여 검무와 줄타기 공연도 함께하였다. “연화검무(蓮花劍舞) 작은 홍의(紅衣)/ 칠보(七步-줄타기)로 아슬아슬/ 돌아서며 번쩍 줄 위에서 나네/ 문득 평지로 떨어진 몸은 요지(瑤池-신선이 사는 곳)에서/ 잔치 파하고 돌아온 양”이라고 시로 당시의 모습을 남겼다. 판소리 광대 원창은 노비 신분 이였다. 영암군(靈巖郡) 종면(終面) 무덕정리(茂德亭里) 사는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재주(文在主)의 소유 노비로 외지에서 주인의 토지재산을 관리하는 외거노비(外居奴婢)였다. 외거노비는 생활에 자유로웠다. 이로 인하여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재주의 호적부를 보면 모친도 노비로 이름은 취매(翠梅)로 5번째 낳은 노비인 원창(遠昌-1695년생)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의 거주지는 경상도 남해였으며 석북 고향에서 축하공연 당시 나이는 55세였다. 6. 석북 신광수는 청백리로 살았다 석북 신광수는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영조 임금이 군을 집경당으로 불러 만나 어머니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고 하교하며 이르길 --중략-- “도정 아무개에게 장차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려고 하는데, 들으니 집이 없다고 하여 내가 무척이나 가련히 생각한다. 가히 중조(中朝)의 고사를 따라서 호부에 주택 1구를 사주도록 명하고, 그 어미에게 노비 각 1구씩 내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군은 황공하여 상소를 올려 죽어도 감히 받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아뢰어 이르길 “신광수가 감히 받지 못하겠다는 말이 맞사오니, 일읍(一邑: 한 고을)을 주어 어미를 봉양하도록 하는 편이 낫겠사옵니다.” 하였다. 그 아룀을 옳게 여겨 즉시 순천부사를 제수하였다가 다시 영월부사로 제수하였다. 이렇듯 석북 신광수는 청백리로 살았다고 번암 채제공의 묘지명에서 기록하고 있다. 7. 장사지낸 후 10년 후 다시 개장 합장 10년 후 1785년에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신광수 부인 묘와 합장하는 장례식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다. “내 눈물을 흘리며 이곳 묘에서 맹세한 지 십년(1785년) 눈물이 줄줄 흐른다./ 밤 상량위에 달이 뜨면 그대 얼굴이 보이네./ 어찌하여 석북(石北)은 이와 같이 오는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황홀하게 놀았으면 하네./그대의 훌륭한 문장은 상자에 남겨두고/ 뽕나무 가래나무(고향이란 표현)의 봄 그늘 옛 산에 개장을 맞네./그대 아득하고 먼 그곳 천상의 깊은 궁궐에 모여/ 천상음악의 궁궐에서 옥황상제 가까이 하리라/” 【盟壇老淚十年 潸樑月中宵每見顔 何以得來如石北 怳然遊戲復人間 文章異氣留陳篋 桑梓春陰葬故山 遙想蘂珠宮裏會 塤箎幾許動仙班】라고 개장만사를 남겨놓았다. 개장만사를 보면 채제공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관직에서 물러나 서울 근교 명덕산에서 8년간의 은거 생활 시기이다. 개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숭문동 재실에서 개장만사를 지은 것이다. 지금 석북 신광수의 집터 바로 아래에 1775년도 8월 4일에 터를 잡고 8월 10일에 상량문을 기록한 옛 고택이 공가로 남아 있다. 6일 만에 상량할 수 있었던 것은 신광수의 옛집을 헐어다가 재실로 급조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건물 자재를 보면 새로운 목재가 아닌 헌 집의 자재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 새로 밝혀진 문화유적에 대하여 중요한 유적인 만큼 백비(白碑)와 석북 신광수 생가지 및 재실 건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8. 철저히 글씨 지워진 석북 신광수의 백비(白碑) 발견 숭문동 묘역에는 하얀 백비가 있다. 70여 년 전에 주변에 묻었던 백비를 2014년 시조명칭 유래비 건립 및 석북 문학제를 하면서 발굴하여 세웠다. 그동안 종중과 많은 사람이 찾아와 백비에 대하여 비석에 글씨가 없는 청백리인 신광수의 백비로 여겨왔다. 필자가 지난 2022년 9월 28일 신광수 묘역에 세워진 백비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백비가 아닌 비석에 새겨진 비문의 글씨가 철저히 지워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부 지워지지 않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서울 종중에 알렸고 지워진 글씨를 판독하기 위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의뢰하여 판독작업을 의뢰하였으나 철저히 지웠기에 판독 불가로 확인한 바 있다. 비문에 새겨진 비문은 석북 신광수와 절친하였던 번암 채제공(蔡濟恭)의 문집에 석북 신광수 묘지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문중이 족보상에도 번암 채제공의 묘비명의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글자의 수는 무려 1,900여 글자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비석의 글씨를 철저히 지웠을까? 채제공이 쓴 비문 내용에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중략—“석북 신광수가 일찍이 벼슬하지 않은 선비로 관서(함경도)의 비류강에서 배를 타고 놀았다. 하루는 맑은 물이 흐르는 절벽 아래에 정박하였는데, 관서지방 인사들이 찾아와 자리가 비는 날이 없었다. 당시 관서(關西-평안도)의 관찰사인 정휘량(鄭翬良)이 신광수의 이름을 흠모하여 객사에서 만나 교유하고자 하였다. 신광수는 끝내 가지 않았으니 그 자중함이 이와 같았다.--”라며 정휘량의 자질을 논하였다. 정휘량은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또한 정휘량의 조카 정치달(鄭致達)의 숙부로 정치달은 영조의 딸 화완옹주(和緩翁主)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 집안이다. 당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집안이었다. 그 후손들이 비석에 대하여 문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로 인하여 권력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비문을 갈아내 훼손한 것으로 보여진다. 신광수의 장례의 상황에 대하여도 묘지명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동생 진택 신광하(申光河)의 행장에 묘역 옆에는 부인의 작은 묘가 좌측에 있으며, 그 해는 합장해서는 아니 되는 해로운 해가 되어 부득이 쌍분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도 고령신씨 집안에서는 비문을 지워버린 사연을 숨긴 채 지내오다가 70여 년 전에 땅속에 묻어버렸다가 2014년에 내용을 모른 채 청백리의 표상인 백비로 알고 다시 세웠던 것이다. 비석을 묻은 사실을 알고 있던 종중에서 다행히 알려주었기에 세상에 들어내고 사실이 밝혀지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영원이 묻혀버릴 석북 신광수의 묘비이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장동혁(국민의힘/보령시·서천군) 의원은 오는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전국 5개 시·도(충남·인천·강원·전남·경남)와 함께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입법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특별법 제정 방향에 대한 각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준비되었다. 토론회에는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참석해 석탄화력발전소가 소재한 5개 시·도를 대표해서 환영사를 할 예정이다. 또한 김동일 보령시장이 화력발전소 시·군 행정협의회(보령·태안·동해·삼척·고성·하동·당진·옹진) 명의의 ‘특별법 제정 촉구 공동건의문’을 국회 산업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측에 전달해 특별법 제정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소속 정훈 연구위원이 주제 발표를 맡았으며 △정남철 숙명여대 교수, △김종천 한국법제연구원 규제법제연구센터장, △김진수 한양대학교 교수, △김인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양용현 KDI 규제연구센터장,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 △문양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장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 6월에 장동혁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으며 여·야 국회의원 34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정부는 탄소중립 2050 계획에 따라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를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이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전국적으로 약 7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해당 발전소가 소재한 지역은 경기침체와 실업, 인구감소 등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장동혁 의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는 지역에 대한 지원은 선택이 아닌 국가적 책무이다”라며 “토론회를 통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많은 지혜가 모아져 위기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법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꼭 나가봐야 하나요? 입주 업체들 민원 제기에 담당자가 나갔으면 된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는 서천군청 경제진흥과 담당 팀장이 지난 21일 <sbn서해신문> 취재진에게 전한 서천특화시장 먹거리동 업체들이 에어컨 고장에 따른 민원 제기에 대한 답변이다. 서천특화시장 먹거리 동 업주들은 이날 “에어컨 고장으로 방문 손님들 발길 돌렸다”라며 “가뜩이나 식당에 손님도 없는 사정에 그나마 온 손님도 너무 덥다고 발길을 돌렸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먹거리 동에 입주한 한 식당 업주는 “오죽하면 군수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상황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했다”라며 “무더위 날씨에 선풍기 바람 앞에 식사하는 손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먹거리 동 관리사무실과 상인회에 따르면 먹거리 동은 시스템 에어컨 2대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날 2층과 1층에 입주한 업체 2곳에 가동되는 1대를 제외한 나머지 1대가 운영하는 업체 5곳은 고장으로 에어컨 가동이 멈춘 상태였다. 이에 따라 1층 먹거리 동에 입주한 업체 2곳을 제외한 업체 5곳은 앞뒤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선풍기 가동으로 손님들을 반겼다.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2곳의 업체 역시 앞뒤 현관문을 활짝 열려 시원한 바람 대신 뜨거운 바람 속에 손님을 맞이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제진흥과 담당 팀장은 민원 현장 방문은 고사하고 <sbn서해신문> 취재진에게 에어컨 고장 수리 부품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담당 직원이 나갔으면 된 것이 아니냐 식의 안하무인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먹거리 동 업주들에게 에어컨 고장 수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리지 않아 먹거리 동 업주들의 공분을 샀다. 또한, 비서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군수에게 보고하는 대신 경제진흥과 담당자에게 알리는 등 민원 제기를 안일하게 대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비서실 관계자는 “먹거리 동 업체들의 민원 제기가 생각보다 심각한 줄 몰랐다”라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군수님에게 보고하기 어려워 해당 부서에만 민원 처리를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sbn서해신문>의 취재진의 본격적인 취재가 이뤄지자 경제진흥과 담당팀 직원들은 민원 현장을 방문해 에어컨 수리 부품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한 AS 업체 기사의 수리를 지켜보고 업주들에게는 에어컨 고장 수리 진행을 알렸다. 이 상황이 공직사회에 알려지자 자성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폭우와 폭염 등으로 내수경제 불황이 지속돼 업체들의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해당 부서의 안일한 민원 처리 행정서비스가 불만만 키우는 꼴이 됐다”라며 “이를 계기로 공무원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삼아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에 나서야 한다”라고 전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서천지회(이하 서천예총)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이 지역민 문화 향유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서천예총은 지난달 27일 문예의 전당 대강당에서 500여 명의 문화인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가 있는 날’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날 발대식에서 김기웅 군수는 “지역의 발전과 문화예술의 번영은 역사적으로 늘 함께했듯이 서천군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여 서천군민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서천예총에 따르면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서천군과 함께 주관하는 2023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천의 문화‧역사‧지리적 특징과 자연의 소재를 이용한 ‘서천은 유(YOU) 문화애(愛) 유(YOU)’라는 대주제와‘에코(Eco) 서천애(愛)’라는 연관주제를 가지고 지역 특징에 어울리는 콘텐츠로 기획됐다. 이에 서천예총은 이날 ‘서천별곡’이라는 소주제로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서천군립전통무용단을 통해 서천의 대표적인 명소 9곳을 연주와 춤과 영상 등을 펼쳤다. 또 박해미 외 3인이 출연한 맘마미아 뮤지컬 갈라콘서트를 개최했다. 이어 지난달 29일 ‘서천갯벌’의 소주제로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서천갯벌의 소중한 자산에 대해 조도순 국립생태원 원장과 다하다협동조합의 렉쳐 콘서트가 진행됐다. 아울러 서천갯벌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김수곤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를 통해 생태원 관람객에게 서천갯벌의 모습을 알렸다. 한편 ‘문화가 있는 날’은 오는 26일 ▲‘맥문동 꽃밭에서’로 연결되어 ▲한산 모시꽃 피다 ▲생활문화동호회 축제 ▲제2의 청춘 내 나이가 어때서 ▲문·날 돋보기의 교육, 체험,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문화예술 공연장의 시설 노후와 함께 구조적 한계점으로 그동안 전문 예술인과 군민이 겪었던 문화예술 향유의 문제가 해소될 전망이다. 군은 지난 20일 김기웅 군수를 비롯해 군 관계자, 건축설계사, 무대 기계, 음향, 구조 등 30여 명의 관련 분야 전문기술인이 참석한 가운데, 서천 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건축 설계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착수보고회는 최근 개청한 신청사와의 연계를 통해 피부에 와닿는 군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풍요로운 삶터·쉼터·일터로 변화하는 새로운 서천의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김기웅 군수는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서천의 문화 발전과 예술 활성화를 위한 핵심 프로젝트로, 앞으로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군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는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라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회관 건립 추진은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충남도 균형발전 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2021년 12월 문화예술회관 건립 부지 선정 및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을 완료한 군은 지난해 7월 문화예술회관 건립사업 기본계획 수립에 이어 지방재정투자심사 완료 및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말 군은 문화예술회관 건립 기획설계 및 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 완료하고 지난 6월 일반 설계 공모 후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착수했다. 이에 군은 내년 4월 문화예술회관 설계를 완료하고 각종 인허가를 마친 후 6월경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5년 12월에 준공 및 시범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남아있다. 우선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따른 당초 사업비 202억 원보다 증가한 297억 원의 재원과 부족한 주차장 확보가 가장 큰 관건으로 보인다. 또 전문 기획사들이 공연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에는 대공연장 관람석이 너무 적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재정적으로 부실한 서천군청의 입장에 볼 때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인지도가 높거나 규모가 큰 공연 개최는 사실상 어려워 고수익을 노리는 전문 기획사들의 참여로 문화예술 보급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656석, 소공연장은 210석으로 구성돼 조성된다. 이에 따라 대공연장 좌석이 1,000석 이상으로 조성되지 않는 한 수익성을 생각하는 전문 기획사들의 공연 개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지역 출신 한 기획사 대표는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고향에 전문공연장이 조성된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막상 건립계획을 접하고 보니 아쉽다”라며 “그나마 우리 같은 전문 기획사의 공연으로 군민에게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지만, 공연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우선 사업비 및 주차장 확보에 대한 문제는 군 내부적으로 해결 방안 찾는데 여러 가지 대안을 갖고 논의하는 중”이라며 “관람석 증가는 현재 건폐율 제한 등으로 사실상 어려울 실정이지만,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전했다.
상식이 통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통을 잘하는 공무원이 필요하다. 소통은 내가 먼저 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면을 기회로 삼아 자기과시를 한다거나 소아적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막장 노릇을 해서는 더욱 안 된다. 자기주장과 관철을 꾀하기 전에 이미 돼 있는 대의명분을 성취하는 공동적 노력을 앞세울 때 진정한 소통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가 있다. 공무원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봉사와 친절을 생명으로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공무원은 본인만이 가진 아주 고약한 성품, 독특한 가치관을 숨기고 민원인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이런 책무에도 최근 서천특화시장 먹거리 동의 에어컨 고장 수리에 대한 민원 제기에 임한 담당 공무원의 자세를 볼 때 과연 책무를 다한 공무원인가 싶을 정도로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이는 일련의 사태의 가장 큰 원인우로 서천특화시장, 장항전통시장이 ‘건물주가 없는 시장’으로 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명백히 서천특화시장과 장항전통시장의 건물주는 서천군청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주인이 없는 상태로 변해버린 것 같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에 입주한 업주들의 몫이 되고 있다. 만약 담당팀 직원들이 특화시장 건물주였다면 세입자들에게 과연 그렇게 했을지 궁금하다. 삼복더위에 에어컨 고장은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로서 손님맞이에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는 무더운 기온 속에 뜨거운 국밥을 먹는다는 것이 손님으로서도 특별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해당 식당 업주는 점심 손님 중 상당수가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앞에 식사하기 부담스러워 오던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그나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몇몇 지인들이 이런 상황을 알고 식당을 찾아 뜨거운 국밥을 주문해 먹는 등 해당 식당 업주를 위로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에어컨 고장 원인과 수리 기간 안내는 고사하고 해당 부서 담당 팀장은 민원 현장조차 방문하지 않고 ‘담당 직원이 나갔는데 꼭 나가 봐야 하느냐’식의 자세를 고수했다. 바로 민원인과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실을 말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규명하려고 하지만, 진실과 옳고 그름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서로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자세다. 특히 공무원은 더욱 그렇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진실과 옳음을 잠깐 묻어두고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하는 공무원의 참모습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공무원은 군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을 가지고 소통하는 넓은 가슴을 지닌 채 지역사회를 더욱더 아름답게 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또 법과 제도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쟁점의 심각성이 제도적 인위 위주로 편견이 돼서도 안 된다. 군민에 대한 정직과 봉사, 직무에 대한 창의와 책임을 다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바로 군민이 원하는 모습이다. 또한, 책임의 자세와 창의적인 발상을 갖고 민원을 제기하는 군민에게 먼저 다가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통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기계적 인정을 베푸는 수준으로 끝나서는 더욱 안 된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는 민원 제기를 시인하고 벗어나는 길도 오직 공무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서천 공직사회가 변한다. 그래야 서천군청 행정서비스가 바뀐다.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올바른 서천군청의 행정서비스를 군민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2025년 12월에 완공될 충남 서천군 문화예술회관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공연장 외 전시·휴게·예술단체 사무실 등 조성과 회관 외부에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워터플로우가든’과 어린이를 위한 ‘다이나믹힐 그라운드’ 조성 등으로 군민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군은 지난 1988년에 건립된 현 문예의 전당이 시설 노후와 구조적 한계로 그동안 전문 예술인과 지역민에게 충분한 문화예술의 공간과 환경을 제공하지 못해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전문공연장인 문화예술회관을 신청사 문화공원 내에 조성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문화예술회관은 202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내년 6월 착공에 들어간다. 총사업비 297억 원을 투입되는 문화예술회관은 1만2,135㎡ 용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축물로 대공연장(656석), 소공연장 (210석), 각종 사무실 등이 조성된다. 문화예술회관은 서천의 자랑인 한산모시, 산, 금강의 흐름을 의미하는 부드러운 선형의 상징 입면을 디자인화했다. 건물 구조는 철골 콘크리트조, 철근콘크리트조, 트러스 지붕 등으로 외부 마감은 로이복층유리, 금속패널, 금속 루버 등으로 마무리되며 주차장은 총 101대가 주차할 수 있게 조성된다. 건물 외부 공간은 계절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용이 가능한 수 공간으로 ‘워터플로우가든’과 숲속 휴게공간인 ‘커뮤니티 광장’, 어린이들을 위한 모험형 지형 놀이터인 ‘다이나믹힐 그라운드’ 등이 마련된다. 지상 1층에는 뮤지컬·연극·음악회·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인 ‘대공연장’과 강연회·패션쇼·전통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가능한 가변적 무대인 ‘소공연장’ 등이 조성된다. 또 공연·전시·휴게가 가능한 다목적 문화예술 공간인 ‘서천정원’과 효율적 유지관리를 고려한 통합로비인 ‘서천홀’,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는 관람객들의 휴게공간인 ‘오픈라운지/카페’ 등도 마련된다. 지상 2층에는 지역 예술단체가 상시 이용이 가능한 ‘통합 사무실’과 입주단체를 위한 전용 휴게공간인 ‘휴게라운지’, 서천의 평야를 담은 발코니인 ‘오브제 계단’ 등이 설치된다. 지상 3층에는 서천의 들판과 자연환경을 전망할 수 있는 ‘서천들판’과 다양한 종류의 전시가 가능한 ‘전시실’, 오케스트라·무용·합창 등을 연습할 수 있는 ‘리허설룸’ 등이 조성된다. 또 연습 중 휴식을 위한 야외 공간인 ‘휴게 데크’와 가족 단위의 관람객을 위한 사적인 공연관람석인 ‘가족실’ 등이 마련된다. 지하 1층에는 관람객 동선과 분리된 연기자 및 직원들의 보안과 휴식을 고려한 ‘선큰 가든’과 분장실 내 화장실 및 스텝 회의실 등 있는 ‘연기자 대기실’, 지역 행사·축제 홍보 및 특산물을 소개하는 ‘서천기념홀’ 등이 설치된다. 대공연장은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다양한 공연목적에 최적화된 건축음향 환경으로 구성하고 음향적 친밀도, 발코니 하부 객석 음질 확보, 흡음 및 확산 전략 수립으로 건축 음향적 최적화된 음질을 확보하는 데 역점을 뒀다. 특히, 단형 그리드·3D 픽셀 맵핑 조명 등 최신기술 적용으로 운영자, 감독, 연출자 등에게 만족도 높은 공연환경과 백업시스템을 갖춘 음향 콘솔 및 라인어레이 스피커 적용으로 디지털 환경 무대 음향시설 등이 조성된다. 소공연장은 무대, 객석 구조 변화로 연주회, 합창뿐만 아니라 패션쇼, 강연 등 행사 시에도 유연한 공연환경을 구성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노현배 문화예술팀장은 “문화예술회관이 지역 내 산재해 있는 문화·역사 관광지를 공유하면서 방문객과 군민의 축제장으로 서천읍성, 서천향교길과 연결된 문화 벨트 도시 재생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랜드마크로 또 문화·도시·자연을 잇는 문화 벨트 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소속 일부 시도 지사들의 잇따른 수해 관련 언행에 ‘오만함의 극치’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충청권·영남권에 많게는 1주일 넘는 이번 집중 폭우 때, 일부 지사의 언행은 여러 날이 지났으나 비판받기에 충분해서다. 사과도 했고, 유감도 표명했지만, 수재민과 국민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집중 폭우 수재민 위로차, 현장을 찾은 국민의힘 김모 국회의원이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라고 했다가 중징계받았다. 올봄 잇단 대형산불 때도, 일부 지사들의 골프 연습이나 골프 회식설로 구설수에 이어 이번 역시 공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구실을 둘러대고 사과하고 변명하지만,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물난리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과 생계를 하루아침에 씻겨버린 수재민의 망연자실한 눈물과 한숨을 생각해 보라. 그 수재민이 내 형제요, 이웃인데 내 가족이 아니라고 그런 언행을 할 수 있나. 김영환 충북지사 발언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일 충북 도청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에게 사과는 했으나, “거기(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내가)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김영환이 우리 유족을 두 번 울렸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냐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충북도·청주시 등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와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누가 뭐래도 재난 지휘 본부 역할을 했어야 하는 책임자인데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골든 타임이 짧은 상황에서 사고가 전개됐고, 임시 제방이 붕괴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조처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그는 그러면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김 지사 본인이 가장 큰 책임자인데, 참사 책임을 누구에게 또 하급자에게 지우겠단 말인지 되묻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참변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관할 떠넘기기’와 무대응으로 아까운 시민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김 지사는 참사 당일인 지난 15일 사고 발생 1시간 뒤에 보고받았는데도 오송 현장이 아닌 괴산댐으로 출발했다. 그가 참사 현장에 왔을 때는 참사 후 몇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이범석 청주시장 역시 김 지사보다 더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 그가 지난 21일 충북 도청 홈페이지에 “참으로 슬프고 참담한 심정"이며 "도지사로서 깊은 애도와 함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사과했다. 그뿐만 아니다. ‘수해 골프’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대구시장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대선주자급 홍 시장에 대한 홍 시장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를 시작한 상태다. 홍 시장은 집중호우 탓에 경북지역에 산사태가 났던 지난 15일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 라운딩했다. 물론 홍 시장의 말마따나 경북 예천 등에서 참사가 났지 골프를 친 그날 대구에는 이렇다 할 큰 피해는 없었다. 비판이 들끓자, 그는 인터뷰 및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항변했다. 그는 “주말에 골프를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나!”, “공직자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며 되받아쳤다. 국민적 비판 여론이 더 커지자 지난 19일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리강령은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사고’가 벌어졌을 때 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는 “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민의힘 소속 일부 시도지사의 언행은 곧 오만이 아니고서는 뭐냐 말이다.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시·도정 잘 이끌 테니 표를 달라며 겸손한 듯한 그 말투들은 대체 다 어디 갔나. 이들도 과거 여느 정치인들처럼 이제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내가 누군데?’하는 건가. 우스운 일은 이들 중에 사실 보도, 비판 보도, 지방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자숙할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못된 정치인들이 목에 힘을 주고 걸핏하면 법적 대응이니, 강경 대응이니 하며 소인배 같은 꼴을 연출하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과거 정권부터, 3.9 대선을 통해 갈라진 편 가르기, 선출직들의 배신감, 여야 정쟁, 하루하루 팍팍한 삶에 지친 국민을 다독이고 섬겨야 한다. 당당함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국민 앞에 더 겸손해야 옳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대표성이 있는 특화시장 내 주차장 등 부수 시설에 대한 정비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삼중고를 겪고 있는 특화시장 상인들을 위한 것과 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편의·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정비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보자와 군에 따르면 특화시장 우측에 설치된 주차장 출입로에는 차량 주차를 관리하기 위한 CCTV가 설치된 기둥이 도로 한가운데에 방치돼 시장을 처음 방문한 차량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이 기둥은 지난해 11월 주차장 정비사업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8개월째 도로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25일 <sbn서해신문> 취재진이 주차장 출입로 한가운데 설치된 이 기둥을 살펴본 결과, 기둥에는 CCTV 3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주차 차량을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폐쇄회로 선은 절단돼 있었다. 게다가 이곳을 지나가던 차량의 접촉사고로 인해 기둥 이곳저곳이 찌그러진 흔적이 남아있는 등 이곳을 지나가던 상당수 방문객 차량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보였다. 또 특화시장 조성 당시 마련된 화장실의 경우 출입구에는 홍보지 등이 붙어있어 지저분하게 보였고 외벽은 커다란 균열로 인해 흉물스럽게 비쳤다. 여기에 장애인 주차장의 표지판 대다수는 이곳 저쪽으로 기울어 있는 등 서천을 대표하는 전통시장 이미지가 훼손돼 있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군청 해당 부서 직원은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자세를 보이는 등 미온적인 민원 처리 행정서비스를 보였다. 군청 해당 부서 한 관계자는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CCTV가 설치된 기둥은 올 1월에 인사로 인해 자세히 모른다”라며 “이 업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주무관이 알고 있는 사안”이라고 답변해 CCTV가 설치된 기둥의 이전에 대한 계획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또 “화장실 입구에 균열이 발생한 올해 초 시설 담당 주무관과 안전 점검을 시행해 내부 균열이 없다고 하여 올 추경 내지는 내년도 예산을 마련해 외부 균열만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애인 주차 표지판은 매번 곧게 세우는 정비를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활어 배송 차량의 접촉으로 인해 기울어지고 있다”라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제보한 한 군민은 “서천에 대표 전통시장이 이렇게까지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최근 비수기·핵 오염처리 수·경제불황 등 삼중고를 겪고 있는 시장 상인들은 생각한다면 건축 주로써 민원 처리 행정기관으로써 마땅히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데 답답하기만 하다”고 성토했다.
우리 고장 비인면 남당리 청절사에 송당 유홍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씨조선의 종계(宗系)의 역사가 명나라에 잘못 전달로 명나라 법전이 잘못되어 200여 년간 고쳐지지 않고 있어 조정에서 유홍을 사은사(謝恩使)로 삼아 종계변무를 관철시켰다. 이로 인해 광국일등공신에 책록된 유홍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비인면 남당리(통박골) 청절사(淸節祠)에 배향된 인물 중에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등공신인 유홍(俞泓)이 있다. 유홍은 조선 중기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와 충청, 전라, 경상, 함경,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우의정 등을 지냈다. 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자는 지숙(止叔)이고, 호는 송당(松塘) 또는 퇴우당(退憂堂)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아버지는 생원 유관(兪綰)이며, 어머니 의령남씨(宜寧南氏)는 사복시(司僕寺) 정(正)으로 추증된 남충세(南忠世)의 딸이다. 비인 남당리 입향조(入鄕祖)인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유기창(兪起昌)의 증손자이고, 예조 판서(判書) 유여림(兪汝霖)의 손자이다. 유홍(俞泓)은 조부 경안공 유여림(俞汝霖)이 김안로(金安老)의 탄액을 받고 부친 유관(兪綰)과 함께 비인(庇仁) 남당리(통박골)8세때 이사를 와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유홍(俞泓) 둘째 부인 김광열(金光烈)의 강릉김씨의 딸을 신독재 김집(金集)이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후사가 없어 율곡 이이(李珥)의 서녀(庶女)를 둘째 부인으로 하여금 후사를 이었다. 둘째 부인은 김익형(金益炯)과 김익련(金益鍊)을 두었는데, 김익련은 서녀의 자녀로 과거를 볼 수 없었기에 음직으로 찰방을 역임했다. 또한 둘째 부인의 부친 율곡 이이(李珥)는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는데도 젊은 시절 한때 사찰에서 참선(參禪)의 공부를 하였던 사실을 거론하며 문제를 제시하였으나, 고시관(考試官) 유홍(俞泓)은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과오를 범했던 것은 주자(朱子)도 면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은 이미 유학으로 돌아왔는데 문제 삼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하며 논의를 거쳐 장원으로 합격 선발한 사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옳게 여겼다고 하였다. 신독재 김집은 율곡 이이(李珥)의 부친 사계 김장생(金長生)과 아들 신독재 김집(金集)으로 학문이 이어진 제자이기도 하다. 유홍(俞泓)과 율곡 이이(李珥)는 과거시험장에서의 인연과 또한 두 사람의 딸로 인하여 사위 신독재 김집(金集)을 사위를 두게 되는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1673년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김집(金集)의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명나라 종합법전)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했던 사건이다. 고려 말 1390년(공양왕2) 이성계의 정적이던 윤이(尹彛)·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를 타도하려는 목적으로, 공양왕이 고려 왕실의 후손이 아니고 이성계의 인척이라 한 적이 있다. 이때 윤이 등은 이들이 공모해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면서, 이성계의 가계에 관해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 뒤 명나라는 이 이야기를 믿고, 그 내용을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 大明會典’에 그대로 기록하였다. 조선에서 이러한 종계(宗系)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394년(태조 3) 4월이었다. 건국 직후의 조선으로서는 왕통의 합법성이나 왕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종계 문제를 계기로 이성계를 무시하고 의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계오기를 빌미로 조선을 복속시키려고까지 하였다. 더구나 이인임은 우왕 때의 권신으로 이성계의 정적이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그의 후사라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말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이후 양국 간에 매우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유홍(俞泓)은 1587년(선조20) 10월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 북경(北京)에 갔는데, 이때 조선에서는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잘못된 종계(宗系)를 시정해달라는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요청하였다. 이전부터 조선에서는 13차례에 사신을 보내 명나라에 종계변무를 요청하였으나, 명나라에서는 명나라 태조의 유훈(遺訓)이라며 정정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결국 사은사 유홍(俞泓)은 종계를 바로 잡아주겠다는 명나라의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명회전(大明會典)’이 아직 반사(頒賜-황제가 내려줌)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선조는 유홍에게 명나라 조정에 청해서 거의 완성된 ‘대명회전’을 얻어오게 하였다. 유홍(俞泓)이 예부(禮部)를 찾아가 이를 청하였는데, 예부에서는 아직 황제의 어람(御覽)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주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홍(俞泓)은 머리를 땅에 쪼아 피를 흘리며 간청해 명나라를 감동시켰다. 유홍(俞泓)이 거듭 요청한 끝에 예부 상서(尙書) 심이(沈鯉)가 그 정성에 감동하여 제본(題本)을 갖춰 순부(順付-내려줌)할 것을 주청하였다. 이에 황제가 허락하여 대명회전(大明會典)이 특별히 하사되고 칙서까지 내려졌다. 1588년(선조21) 조선의 숙원 사업이었던 종계변무를 이루고 ‘대명회전’을 가지고 돌아온 유홍(俞泓)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가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으로 승진하였으며, 의금부 판사(判事)를 겸직하였다. 당시 ‘대명회전’의 한 질을 받아온 유홍의 소식에 대해 선조가 얼마나 기뻐하였는가는 ‘선조실록’ 선조21년 3월 28일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백 년 마음 아팠던 응어리가 깨끗이 씻기어, 조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없다가 아버지가 있게 되었고, 임금이 없다가 임금이 있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수천리가 비로소 인류(人類)를 되찾았다. 나는 이제야 할 말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당시 국왕 선조(宣祖)는 1587년 9월 13일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조공품(朝貢品)인 방물(方物)을 도둑맞고, 자금성 동남쪽으로 흐르는 개울인 옥하에 지었던 사신들의 전용 객관인 옥하관(玉河館)이 불에 탄 것 때문에 이유(理由)를 말하고 사죄(謝罪)하는 진사사(陳謝使)로 배삼익(裵三益)을 차임하여 북경에 보냈는데, 명국(明國) 황제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가 우리나라에서 지성으로 사대(事大)한다 하여 귀국하는 유홍(俞泓)에게 칙서를 내려 표창하고, 또 망룡의(蟒龍衣)를 하사하였다.” 1588년 5월 2일 선조는 모화관(慕華館)에 나가 칙서와 망룡의(蟒龍衣) 받았다. 선조는 사은사 유홍(兪泓)에게는 차례를 건너뛰어 오르는 가자(加資)인 초자(超資)에 전(田) 30결(結)과 노비(奴婢) 5구(口)와 가사(家舍), 무명베인 정목(正木) 30동(同)을 하사하였다. 그 후 1592년(선조25) 4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선조가 관서방면으로 파천(播遷-도성을 떠남)하려고 하니, 유홍(俞泓)이 서울을 고수하여 사직(社稷)과 함께 죽을 것을 상소하였다. 그해 5월에 우의정에 임명되어 신성군(信成君)과 정원군(定遠君)을 모시고 평안도로 갔으며, 선조가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할 때 선조를 수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해 6월 유홍(俞泓)은 선조에게 자신은 노쇠하여 요동으로 갈 수 없으니 세자에게 보내달라고 청하였고, 선조의 재가를 받았다. 이후 서울에 거주하며 우의정(右議政)의 업무를 보던 유홍(俞泓)은 수성대장(守城大將)이 되어 불타 버린 도성을 소제(掃除)하고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런 가운데 선조가 서울로 돌아온 후 사헌부에서는 유홍(俞泓)이 도체찰사를 역임하던 당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며 탄핵하였고, 선조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간 신하라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듬해인 1594년(선조27) 1월 유홍(俞泓)은 해주(海州)에서 중전(中殿)을 모셨으며, 그해 11월 좌의정(左議政)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사헌부로부터 정승의 지위에 오르고는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다며 체차 해달라는 논핵을 받았다. 선조는 대신을 가볍게 체차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으나, 사간원과 홍문관 등에서도 거듭 탄핵을 하는 바람에 유홍(俞泓)은 좌의정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해 12월 25일 해주 우사(寓舍-임시거처하는집)에서 병으로 졸하니, 향년(享年) 71세였다. 원래의 묘소는 임진왜란 중인 1595년(선조28) 2월 고양에 임시로 조성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1612년(광해군4) 12월 현재의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261번지로 이장하였다. 두 명의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