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해바라기씨를 심었더니 태양이 화단에 가득 차 있다 피는 것은 아픈 거라고 까만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해바라기 야위어 갈수록 흙담처럼 흘러내린 눈동자를 털어낸다 눈 감으면 사라지고 누군가 쌓아 놓은 것들은 아프지 않으면 영혼을 잃어버린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인디언들 씨앗은 힘이 세다고 씨앗 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초록, 노랑, 빨강 해마다 허락도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가 보다 죽은 씨앗을 입김으로 불어 밑바닥 온기를 모아 햇볕에 던져 나는 힘센 화단에 소소한 밀알이 된다
처음엔 그냥 사랑이었다가 점차 뜨거운 사랑이었다가 차츰 짜증과 원망이 섞여 일상의 지루함에 지쳐가다가 친구인지 가족인지 이웃인지 동료인지 관계의 경계가 모호해 지다가 서로의 일에 매여 무관심해지다가 머리카락 희끗해지는 어느 날 잡자기 예잔함과 함께 가슴 아픈 연민이 밀려오고 가엾은 마음에 괜스레 눈물이 나고 미안함과 죄책감에 가슴이 져려오더니 이제는 한시도 눈 밖에 둘 수 없고 그저 곁에만 있어도 안식을 얻는 함께 있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 잠결에 듣는 목소리에도 행복해지는 그대, 아내라는 이름의 사람
솔바람 조용히 오가는 골짜기에 딱따구리 부지런히 죽은 나무를 오가며 입춘대길을 새겨 넣는 아침 저수지 가에 겅쩡거리는 왜가리와 고고한 백로도 반가 사유상의 자세로 버들가지에 눈이 부풀어지는 때 맞추어 경전을 독송하고 기다림은 모든 것을 마모시키듯 응시하는 수면 위에 무뎌진 칼날을 쓰윽 쓰윽 갈아 날을 세운다 본능에 목말라하던 자존심도 버리고 자신을 세우는 신성함에 목을 매어야 무더지지 않는 세월을 만난다 늙은 스님은 매어 있는 닻을 끊어 망망대해로 떠가는 허름한 목선에 올라 심연에 가라앉아서도 가부좌 틀고 주인 잃는 빈 목선은 아제 아재 바라어제 바라승아제 주문을 외운다 모두 내 탓이다
칼날에 잘려 나간 비늘에 새벽 시장이 환하다 음각을 덮고 있는 갈치 사이로 삐져나온 눈알에 서늘해진 마음 베인다. 파도 부스러기처럼 경매사 목소리 부서지고 울뚝불뚝한 그 소리 따라가면 온통 가시밭이다. 가시들이 파닥일 때마다 어둠은 새파랗게 변하고 꽁치, 갈치, 풀치 가시가 많은 것들일수록 달빛에 더 환하게 출렁였으므로 그래서 달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눈이 따끔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시 많은 사람이 어디론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등뼈 휘어지지 않으려고 휘어지는 고기들이 뛰고 날고 들릴 듯 말 듯한 울림들 신기루라던 물고기자리에 어록으로 수북이 쌓인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생존의 소리, 아침 햇살에 찔려 따끔거린다.
왜? 떫으냐? 밤새 구정물 통에서 우려진 땡감 떫은맛이 빠졌나 맛을 본 자국 크고 작은 이빨 흔적 파랗게 젊어 떨어진 땡감아 아련한 눈시울을 적시는 지금은 네가 잊혀가지만 나를 짓밟고 지나간 저 자국들 가슴 가득 응어리 쌓여 세상 떫은맛을 보면서 삭여 빨갛게 익은 늦가을 홍시도 한때는 떨떠름 했다
부엉바위가 지키는 저수지에 물결이 일렁이면 내 마음도 함께 일렁인다 저수지를 끼고 돌아 봉선지 외가마을로 가는 길 아득한 어릴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마을 어귀에서 반기며 내 마음을 녹였던 할머니의 미소가 그립다 외가에서 보냈던 하루 그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 봉선지 물결 안에 이 순간에도 영원히 간직한다
여름에게 묻지 못한 말도 많은데 가을이 먼저 와 연못에 앉았다 스미고 물들면서 손쓸 수 없이 그대로 고추잠자리 떼 날아들자 연못의 부레옥잠 뛰쳐나오려는 걸까 푸른 하늘이 한결 높아졌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지난 21일 충남 서천군 문예의 전당에서 열린 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단장 강정남)의 정기연주회가 큰 감동 속에 막을 내렸다. 이번 연주회는 ‘오! 해피데이’를 주제로 2024년을 마무리하며 지역민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했다. 충남도와 서천군, 한국마사회 사회공헌재단(KYDO)의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가 주최하고 주관했다. 연주회는 윌리엄텔 서곡으로 시작해 마림바 연주자 김보람과 하지율 학생의 협연, 영화 마녀배달부 키키와 맘마미아의 OST 연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또한 서천초등학교 ‘빛나는 우쿠렐레’와 장항초등학교 ‘꿈빛아모이퓨전오케스트라’ 단체가 참여해 약 130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채우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번 공연의 출연진은 모두 서천 출신으로, 베이스 박성준, 소프라노 안하영, 뮤지컬 배우 김영재 등 지역 청년 예술가들이 협연해 본 공연등의 멋진 하모니를 선사해 한 겨울밤을 녹이는 열띤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강정남 단장은 “앞으로도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고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라며 “청소년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값진 경험
여자가 초록을 연모한 빛이 머문 자리 쌀을 양동이에 반만큼 담고 빗소리가 범람하는 물웅덩이에 하얀 꽃 부족한 잠을 물속에서 채우고 쌀눈 제 몸 불러 하얀 스민 물에서 건진다 쌀들이 사라지고 넓은 그릇에 담긴 가루 쑥 구절 버무려 연둣빛 마음 반죽을 떼어 손바닥에 둥글납작 봄볕이 등을 쓰다듬어 다독인다 한 덩어리 솥에 목단꽃 깔고 쑥이 녹색 물 되어 흐르는 동안 구름 속엔 숨소리가 떠돌고 당신을 향한 쑥 소반에 담는다
어렸을 때 산이 울었다 모깃불 옆에 잠드는 졸음에 실려 은은하고 처량히 시집와서 굶어 죽은 며느리가 보릿고개 지나면 나와 운단다 아주 먼 데서 배고파 우는 구슬픈 징 소리처럼 엄니 가슴에서 산 울음 운다 배고프지 않아서도 들을 수 없는 울지 않는 산 포만감에 졸며 밤에 주저앉아 있다 아쉬울 게 없는 요즘 산이 울지 않고 내 가슴만 쓸어내린다
일을 하다가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진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냉정한 듯 위험을 보이지만 속마음은 늘 가족들 생각을 합니다 습관처럼 보일러를 줄이고 전등을 끄고 버려진 치약을 주어 쥐어짜는 내 모습에서 당신을 봅니다
기다림과 외로움에 기대 사는 독거 어르신들처럼 6월의 햇살이 그리움에 도탑다. 기후 변화로 일찍 찾아온 더위를 뒤로 하고 나는 산과 들을 지나 마서면 어리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 댁으로 들어선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일 먼저 나를 반겨 주는 할미꽃 한 무더기를 천천히 들어다 본다. 그 빛과 향기는 지금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과 가장 많이 닮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미꽃 설화보다 더 힘들었던 전쟁 세대 어르신들! 당신 몸은 아랑곳없이 해와 달을 따라 수천 번씩 허리를 굽혔다 폈다 결국, 기역 자로 등이 굽은 모습과 줄기의 솜털이 흰 머리카락처럼 변한 모습에 할미꽃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성글진 꽃망울에 눈인사를 건네며 어르신을 부르며 문을 열고 안부를 여쭙는다 “어르신 잘 지내셨지요?” 어르신께서는 기도하고 계셨다며 남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그저 잠자듯 데려가 달라고 기도 하셨다고 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마지막 소원은 까막눈인 당신이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꼭 편지로 남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간절함에 나도 모르게 도와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르신께서는 6.25를 겪으시면서 배움에 기회를 놓치신 것이었다
발이 시렸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구멍 난 바닥에 제각기 몸을 뉘고 꿈꾸던 시간이 마르지 않게 서로의 여윈 발목을 끝없이 적셔주었다. 쳇다리를 지나 물받이 자배기 속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자주 꿈의 언저리를 적셨고 젖을수록 강해지는 꿈들은 조금씩 겨울의 빗장을 풀며 자랐다. 아무도 함부로 뿌리 내리지 않았다 어깨에 어깨를 기대면서도 서로의 아픔과 기억을 더듬어 거리를 두고 서로가 일어서야 할 공간을 위해 몸을 움츠렸다. 뒤돌아보지 말고 오직 한 줄기로만 살아 오를 것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의 깊이 제각기 허공을 향해 쏘아 올리던 작은 주먹 같은 별들 어둡고 무거웠던 하늘을 밀어 올리고 검은 보자기 속 헤아리던 시간과 마주하였을 때 우리는 겨울 아침을 녹이는 국 한 그릇, 어울려 위안이 되는 나물 한 접시가 되었다. 오래도록 꿈꾸던 자들의 열망을 모아 소박한 밥상을 다독이는 샛노란 희망이 되었다.
살아도 살아도 잊혀지 않는 게 있더라 흘러가는 구름 속 청춘의 눈물 씻던 하늘과 서쪽 바다, 쪽빛 노을의 일렁이는 고요와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푸르름 떠나지 않는 동산이 그러하고 호숫가에 아름아름 피어나는 안갯속 굴곡진 삶의 자유가 그러하다 살아도 살아도 그리운 것이 있더라 먼 산 밤마다 울어오는 소쩍새며 풀벌레며 애 닮던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없어 뒤척이던 밤이 그러하고 해 질 녘 얼기설기 삼대 울타리처럼 산마루에 걸터앉자 사라진 뭇별의 이야기를 노래하던 동무들이 그러하다 눈처럼 시린 달밤이면 초가지붕에 하얀 박꽃들의 웃음소리가 그러하고 쑥 향기 가득한 한 여름밤 강냉이의 가지런한 청초함이 그러하다 살아도 살아도 길이 되는 길 내 고향 ‘서천’ 길이더라
엄마 분 냄새가 노을에 스민다 아침에 잠자고 저녁에 눈뜨는 꽃 빨강 분홍 노랑 하양 방울 무늬 핀다 다양한 꽃들이 피는 것은 자식들 예쁘게 봐 달라고 한 가지에 모여 피는 이유는 세상을 널리 보라고 흔들며 인사하는 뜻은 웃는 얼굴이 성공한다고 세상에 분꽃 없어도 하늘에 엄마 꽃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