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문화가 있는 날 ‘모시 꽃 피다’ 공연이 지난 5일 충남 서천군 문예의 전당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공연은 전통예술단 혼,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몽골국립예술단 등이 참여했으며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프로그램인 서천별곡, 서천갯벌, 맥문동 꽃밭에서 등에 이어 네 번째로 펼쳐졌다. 공연은 몽골 국립예술단이 하닥(하늘색 긴 천)을 이용한 ‘인사 춤’으로 화려한 시작을 알리면서 대강당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어 2008년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몽골 민요 ‘오르팅 도(Urtiin Duu)’가 선보여 음악적으로 저음역 대와 고음역 대를 오가는 진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끊임없이 호흡이 이어지게 연주하는 호흡법인 ‘비투 호흡(닫힌 호흡/몽골 무형문화유산)’을 이용해 몽골 전통악기인 ‘림베’와 ‘여칭’으로 ‘사계절’이라는 연주가 펼쳐졌다. 서천군립무용단인 전통예술단 혼이 ‘서천의 삶, 서천의 한, 서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천 아리랑’을 몽골 국립예술단과 콜라보 공연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할흐 민족과 부랴티야 민족의 민요로 짧은 노래(버기니 도)를 연결해 부르는 몽골 민요 메들리가 선보였으며 몽골 여성의 아름다움과 몽골인들의 환대를 표현한 ‘컵 춤’도 펼쳐졌다. 또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두 가지 음이 한꺼번에 나오는 몽골의 독특한 창법인 ‘후미’의 공연이 이어졌다. 사냥, 전쟁의 승리, 황제에게 충성하는 행동과 감정, 유목 생활 등 삶의 모습을 자연과 동물에 빗대어 유목민족의 특이한 춤으로 표현한 ‘잘람 하르’ 공연으로 지쳐있는 관객들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했다. 몽골이라는 나라와 몽골인의 사고방식을 예술로 가장 정확하게 잘 표현됐고 말 떼의 달리는 발소리로 깨어난 초원이라는 제목을 가진 ‘세르셍 탈’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서천 자연의 특징인 금강과 바다의 만남을 서양악기와 국악기의 만남을 그려 부드럽지만 경쾌하고 차분한지만 역동적인 ‘서천별곡’을 연주해 이번 무대의 대미를 장식했다. 김기웅 군수는 “오늘은 충남과 서천의 춤과 음악을 바탕으로 몽골을 대표하는 국립예술단과 우리 서천의 문화예술단체가 ‘서천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공동 초연 창작하게 된 뜻깊은 날”이라면서 “이 공연 무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신 양국 예술 단체, 예술가들의 노력이 국내외 문화교류에 모범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이에 쩌크게렐 껀찍(Tsoggerel-Gonchig) 몽골국립예술단장은 “오늘 무대에서 몽골 국립예술단과 서천의 문화예술 단체 간의 공동 창작작품으로 선보인 협연을 통해 양국의 우호를 더욱 증진 시키고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 믿는다”라면서 “몽골의 예술이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의 가슴에 깊은 감명으로 남길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고요한 바다에서는 유능한 선장이 나오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 듯한 산더미 같은 검은 파도가 들이닥치는 비바람 속에서야 능력 있는 선장이 나온다. 나라도 위기에 빠졌을 때, 진정한 리더가 나오는 법이다. 옛말대로 난세에서 영웅이 나온다. 하지만 난세에는 비단 영웅만 나오는 게 아니라, 간신도 나온다. 영웅들이 무용담이 눈부셨기에 간신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 고사에 이런 얘기가 있다. 송나라 때 간신의 무리를 대표하는 가사도(賈似道)란 인물이 있었다. 그에게는 배다른 누이가 황제 이종(理宗)의 후궁이 됐다. 그 누이는 미모가 빼어나고, 영민해 입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종의 총애를 얻어 귀비로 봉해졌다. 그녀는 현명하고 덕이 깊어 황제의 총애를 얻자 그에게 과장하여 말한다. 가사도의 재능이 출중하고, 지혜롭다고 고하여 기용해 줄 것을 청했다. 사랑에 빠진 이종은 시비를 가리지도 않고 곧 가사도를 중용했다. 감히 누구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가사도는 누이 덕에 출세 가도를 달려 마침내는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더니 그는 이종에 이어 도종(度宗), 공제(恭帝)의 3대에 걸쳐 황제 곁에서 권력을 누린다. 이를 소개한 중국 리정이 쓴 ‘권력의 숨은 법칙’에는 가사도가 무덕(無德), 무공(無功), 무재(無才)한 빈 그릇이었다고 소개한다. 심신이 편해진 그는 큰 건달의 습성이 살아나 도박과 여색만 즐겼다. 유람선은 서호(西湖)에서 규모가 가장 컸으며, 그가 거느린 가희의 수만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권력을 쥔 뒤, 조정에는 부패 탐욕 뇌물수수, 매관매직 등 온갖 비리가 성행했다. 그의 집에는 관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무렵 징기스칸의 손자 몽케가 세 갈래의 길로 남송을 침공했다. 가사도는 우승상 겸 추밀사의 자격으로 군사를 이끌고 출정했다. 불량배 출신인 그에게 전술이나 지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을 치를 용기가 있으리 만무했다. 그는 몽골군이란 이름만으로도 겁을 집어먹었다. 쿠빌라이(황제 몽케의 동생으로 후에 5대 황제)가 양주를 공격해오자 급히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다. 그러나 몽골군은 협상을 거부하고 양주로 진격했다. 결국 가사도의 빈 그릇 같은 능력과 허세에 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중국의 장개석, 모택동, 장쩌민, 시진핑 등 근래의 국가주석들은 모두 이 고사를 담을 책을 즐겨 읽었다. 최고 통치자가 인재를 고르고 골라 등용하고 아낀 이유는 자신의 천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서기 290년쯤 있었으니, 1,700여 년이 지난 얘기다. 지난해 6월 우리 지역주민들은 남다른 기대를 안고 지방선거를 통해 군민의 대변자를 새로 뽑아 군의회로 보냈다. 무엇보다 가사도 같은 무뢰배에다, 무덕(無德), 무공(無功), 무재(無才)한 인물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정당이나 학연, 지연, 혈연 등이 아닌 인물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천군의회 의원들은 어떤가? 대변자가 아닌 보스를 뽑은 것이 아니냐는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앞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군민을 위해 머슴처럼 일하겠다는 의원들은 보스인 양 청사 지하 주차장에 ‘의회 주차’라는 안내판을 붙여 영역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일부 의원은 자신을 뽑아 준 지역주민에게 욕설에 가까운 막말을 해 결국, 서로 사과를 통해 이해 당사자와 화해를 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구실로 경찰서에 고소했다. 게다가 언론의 재갈을 물리려 언론사 대표 포함해 언론인까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는 정치 보스인 양 처세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의회의 수장인 의장은 한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비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으로 고발당해 현재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군의원들의 행태를 지켜본 지역주민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군의회 의원은 군민의 대신해 군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는 등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솔선해 푸는 대변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치 보스는 그 반대다. 탐욕, 막말, 오만, 독선, 탈법, 무례, 무능, 무책임이 정치 보스의 상징이다. 정치 보스는 우선 사리사욕, 이해타산이 먼저다. 현안이 있는 지역사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며 남의 탓만 한다. 이것은 상대의 잘못이며, 그 잘못의 책임은 상대에게 있다고 우긴다. 서천군의회 의원들이여! 지역주민의 대변자인지 정치 보스인지 숙고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서천군의회 일부 의원들이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 군민을 향해 ‘지껄였다’, ‘그 XX’ 등의 막말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군의회가 가진 공식적인 회식 자리는 군의회 개청식 후 마련된 것으로 보인 가운데 일부 의원들이 개방된 공간에서 식사 중인 일반 군민에게 들릴 수 있게 막말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파문이 예고된다. 서천주민자치참여연대는 지난 5일 시민단체 카페 게시판을 통해 ‘이것이 서천군의회의 민낯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군의회 일부 의원들이 군민을 향해 ‘지껄였다’·‘그 XX’ 등의 막말한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시민단체는 군의회 개청식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김경제 의장과 이강선 의원 규탄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4일 군의회 의원들이 개청식을 마치고 가진 회식 자리에서 이 같은 막말이 오갔다고 주장했다. 또 이 단체는 서천읍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가진 회식 자리는 개청식 후 가진 의원들의 회식 자리이므로 의장의 업무추진비로 마련한 자리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 회식 자리는 사적 모임이 아닌 공식적인 공무 모임 자리였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이 자리에서 일부 의원이 집회에 참석했던 군민의 발언을 두고 ‘지껄였다’라고 표현하고, 또 다른 의원은 집회에서 발언한 한 군민에 대해 ‘그 XX는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일하면 안 돼’라는 욕설을 섞어 비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단체는 이들의 회식 자리 옆에서 식사하던 한 군민이 이 같은 막말을 듣고 ‘어이없다! 이런 사람들이 무슨 의원이냐?’라며 녹취한 파일을 시민단체에 보내왔다고 전했다. 또한, 이 단체는 이 음식점이 밀폐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곳으로서 의원들이 식사 중 나누는 대화가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주변의 시끄러운 식당 잡음이 그대로 녹취돼 당시 다른 손님들도 상당수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군의회 일부 의원이 군민의 쓴소리를 ‘지껄인다’라고 서슴없이 표현하고, 또 다른 의원은 선량한 군민을 ‘그 XX’라고 비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단체는 그것도 사석이 아닌 공석에서, 다른 주민들이 모두 듣고 있는 개방형 음식점에서 서슴없이 군민을 ‘이 XX, 저 XX’로 표현하고, 집회에 참석한 주민의 목소리를 ‘지껄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선량(選良)들의 태도인지 묻고 싶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서천주민자치참여연대는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일부 의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린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지방자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초의회의 경우 무용론(無用論)과 폐지론(廢止論)이 기초의회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2년 7월 개원한 제9대 서천군의회의 경우, 역대 어느 의회보다 바람 잘 날 없는 사건·사고로 군민 눈 밖에 나 있다. 군민 삶 속에서 보고 듣고 실천하는 의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힘차게 개원한 제9대 서천군의회는 의원 갑질 파동으로 군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더니 급기야 의원징계와 관련하여 법정 소송전에 돌입해 있다. 집행부와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 대화와 타협, 조율은 간데없고 오직 극렬한 대치와 상호비방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유난히 초선의원이 많다 보니 매끄럽지 못한 의회 운영으로 번번이 의회가 파행을 겪었고, 행정사무 감사 중에는 피감기관인 집행부로부터 항의까지 받는 사태를 빚었다. 의회 사무과는 행정사무 감사에서조차 제외되면서 의회 사무과의 행정은 감시와 견제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무소불위를 기관화했다. 그 사이에도 일부 군의원의 갑질과 독단적인 행동은 끊임없이 지방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면서 군민들의 눈총을 받았고, 급기야 군의회 의장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어 겸직 신고 위반 등 범법 사실이 밝혀졌지만, 서천군의회 윤리특위는 징계 대상이 아니라며 자신들 스스로가 제정한 조례 규정을 부정하고 나서고 있다. 군의원이 검·경찰이나 되는 양, 사적영역까지 침범하여 불법 논란을 초래하며 주민들과 마찰을 일삼고, 급기야는 모 군의원이 사적인 영역에서 지역 사회단체장과 지역 언론사 사주와 기자들을 집단 고소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군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새로 신축한 서천군의회 의회 동은 지방자치단체 청사 규정에서 제외된다는 이유로 초호화판 청사로 둔갑했고, 군의회 의장실은 대통령실이냐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신청사 지하 주차장은 의회 주차라는 팻말을 붙여 군의원 전용 주차장 화하고도 민원인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주민을 섬기고 주민을 우선하겠다는 구호는 정치적 술사(述辭)로 변한 지 오래다. 군의회 의장의 리더십은 간데없고 군의원 7명이 오죽하면 ‘일곱 색깔 무지개’라는 군민들의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게 되었으랴?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집행부 감시 권한을 악용하여 권위를 앞세우려는 성향을 내보이며 도대체 서천군은 군수가 몇 명인지 모르겠다는 공직자들의 탄식 목소리만 높아 간다. 지방의원은 선출직 공직자이다. 국민의 혈세로 세비를 받는 공무원이다. 지방의회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기능이 있듯이 지방의회는 주민들의 견제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주민들의 견제 목소리는 ‘지껄인다’라는 표현으로 일갈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지역 사회단체장을 비속어로 지칭하는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군수가 욕하는 것은 공개로 사과해야 하고, 군의회 의장이 군민의 목소리를 ‘지껄인다’라고 표현해도 되는지도 묻고 싶다. 주민을 대표하는 지방의원이 전과자투성이라는 비난 속에 지방의원 자질론이 끊임없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좀 더 자숙하고 신중히 처리하려는 태도는 어디에도 없다. 뭐 묻은 사람이 뭐 묻은 사람을 나무란다고 자신은 온갖 불법을 달고 살아가면서 남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호통치는 지방의원을 바라보는 주민이나 집행부 공직자들 입에서 기초의회 폐지론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서천군의회는 자숙하고 반성해야 한다. 원 구성 후 1년밖에 안 된 지방의회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의원 징계 문제로 법정 공방을 이어가면서 애꿎은 혈세로 변호사비만 축내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날만 새면 군의원 갑질이니 욕설 파동이니, 했느니 하지 않았느니 군민들 귀에 짜증 나는 소리만 들리는 의회가 과연 존재의 의미가 있는가? 군민을 걱정해 주라고 존재하는 군의회가 군민의 걱정거리만 되는 현실이 아닌가? 이제라도 서천군의회는 초심으로 돌아가라. 배지의 권력에 눌린 초라한 모습을 버리고, 진정 군민을 위하는 봉사자의 길로 들어서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지 비난이라고 반항해서는 안 된다. 군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주의를 벋어 버리고 진정한 군민의 대변자로 거듭나기를 충고해 본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서천군 서천신문이 지난 1일 문예의전당에서 제3대 장현기 대표이사와 윤상규 이사를 새로운 경영진으로 맞이하는 대표이사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김기웅 군수를 비롯해 김경제 군의회 의장과 의원들, 전익현 도의회 의원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석했다. ‘전통예술단 혼’의 식전 공연으로 시작된 취임식은 내빈소개, 경과보고, 취임사, 축사로 진행됐으며 서천신문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 선포식도 이뤄졌다. 이날 장현기 신임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고난의 길과 천산건설을 일으켜 세우기까지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담았으며 앞으로 지역을 서천신문의 운영방침에 대한 경영철학을 밝혔다. 그는 “어릴 적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 배우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오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살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왔고 이제와 그 꿈을 이루고 잠시 쉬려 했지만, 또다시 서천신문 대표라는 중책으로 큰 짐을 지게 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 서천신문 인수와 관련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언론까지 장악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 극구 사양했지만, 반대로 건전하고 올바른 신문사의 운영을 위해서는 든든한 버팀목의 필요한 만큼 그 힘이 되어 주고자 이를 수락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문사를 통한 이득이나 언론 개입으로 인해 불편을 끼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뿐이다”라며 “서천신문이 건강한 지역 언론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든든한 버팀목 역할만 담당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김기웅 군수는 축사를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서천신문의 장현기 대표이사와 윤상규 이사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라며 “장현기 대표께서는 그간 성공적으로 건설사를 운영해 왔고 기업인협의회와 서천사랑장학회 등에서 다양한 활동과 지속적인 봉사를 통해 지역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만큼 신문사의 운영 또한 큰 모범이 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서천신문이 군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서천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써의 역할을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서천신문이 앞으로 나갈 방향도 비전도 제시됐다. 윤상규 신임이사는 “서천신문은 장현기 신임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한편, 새로운 100년의 도약을 위한 힘찬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라며 “새로운 출발을 온 군민들에게 알리고 모든 임직원이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출발할 것을 약속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전했다. 이어 ‘아름다운 생각들로 다시 일어서는 서천’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서천군민들의 화합과 서천군 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서천신문 ▲평범한 서천군민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는 서천신문 ▲창간 34년,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서천신문 ▲언제나 냉철한 자세로 서천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는 서천신문 ▲정의롭고 다정한 서천사람들의 새로운 정신을 이끄는 서천신문 등이 될 것을 약속했다.
우리고장 화양면 활동리와 대등리(숭문동)에는 8문장가 중 시인 기록 신광연과 그의 형제들은 대문장가로 세상에 명성을 날렸고 늦게나마 관계에도 진출하였다. 그 뒤에는 고향을 떠나 전국을 유랑하며 지낸 큰형 석북 신광수와 동생 진택 신광하의 생활과는 반대로 부모님과 고향을 지키며 살았다. 기록 신광연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령신씨가 우리 고장 화양면 활동리(숭문동)에 정착하게 된 것은 석북 신광수, 기록 신광연, 진택 신광하, 부용당 신 씨의 6대조 참판공 신영원(申永源1496∽1572)께서 한산이씨 목은 이색(李穡1328∽1396)선생의 후손인 이윤수(李允秀)공의 따님과 결혼하여 처가인 이곳 활동리(숭문동)에 정착 세거하면서 번창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첨추공 신호(申澔 1687∽1767)의 첫째 부인 성산이씨는 석북 신광수(申光洙 1712∽1775)와 기록 신광연(申光淵 1715∽1778)을 낳으시고, 둘째 부인 전주이씨는 진택 신광하(申光河 1729∽1796)와 부용당 신 씨(申氏 1732∽1791)를 낳았다. 1. 가족과 고향을 지켜며 살았다. 형님 석북 신광수와 아우 신광하의 삶에 비교하면, 기록 신광연(申光淵)의 삶은 참으로 측은하기만 하였다. 자신이 신선처럼 사슴을 타고 마음껏 세상 바깥 기이한 곳을 찾아다니던 기록(기록-사슴타고)의 꿈을 그는 이루지 못했다. 잠시 고향 숭문동을 떠나 우리 고장 장항읍 송림리(鷄山-당뫼) 송강(松江-솔리천)에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자염업(煮鹽業)으로 생계를 꾸림을 제외하고는 끝내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작은 농토를 지으며 살았다. 기록 신광연은 7번이나 초시(생원)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했고, 57세에 진사시험(사마시)에 급제해 8문장가의 전통을 이었다. 역사책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또한 못마땅한 세상과 사람들의 비판을 서슴치 않아 교제를 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2. 첫 아들을 잃고 3딸만 남아 기록 신광연(申光淵)은 두명의 부인을 두었다. 첫째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취민(尹就敏)의 따님과 결혼을 하여 첫 아들을 낳았으나, 일찍이 요절하여 아들을 잃었다. 그 후 두 번째 부인으로 강릉김씨(江陵金氏) 김최경(金最慶)의 따님과 결혼하여 3명의 딸만 낳았다. 기록 신광연은 후사가 없어 형님 석북 신광수(申光洙)의 4째 아들 신석상(申奭相1737-1816)으로 하여금 후사를 이었다. 신광연의 첫째 딸은 파평윤씨 장인 윤취민(尹就敏)의 손자 윤승환(尹昇煥)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이재상(李載常)에게, 셋째 딸은 목현중(睦玄中)에게 시집갔다. 첫째 딸이 장인 윤취민(尹就敏)의 손자와 결혼을 하게 됨은 둘째 부인에게서 낳은 딸이기에 시집을 갈 수 있었다. 신광연의 서모 전주이씨가 낳은 부용당신씨 동생이 석북 신광수(申光洙)의 장인 윤두서(尹斗緖)의 손자 윤운(尹惲)에게 시집을 보내는 경우와 같은 결혼풍습이었다. 3.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기록 신광연에 대하여는 요즘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이름 없는 문인에 가깝다. ‘숭문연방집’에 전하는 신광연의 문집 기록초음(騎鹿樵吟)이 아니었다면, 신광연의 고민과 궁핍한 삶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집의 제목도 참으로 초라하기만 하다. “기록(騎麓-신광하)이 땔나무 하며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땔나무꾼 시인 정도의 시집이라는 것이다. 아마 당대에 여춘영(呂春永1734∼1812)의 노비로 명성을 날렸던 시인 정초부(鄭樵夫.일명 丁樵夫1714∼1789)가 그랬던 것처럼 기록 신광연(申光淵)도 비추어 ‘기록초음’이라 하지 않았나 싶다. 아우 진택 신광하(申光河)가 쓴 묘지명에, 큰형님이 이곳저곳으로 나가 돌아다니자 둘째 형님께서는 집에 머물면서 부모님을 봉양하였으니 여러 아우와 조카들이 모두 둘째 형님이신 공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큰형님이 일찍이 나와 더불어 고금의 시인들을 논하다가 둘째 형님(申光淵)의 시는 어떠한지 물었다. 내가 “신기하고 빼어나며 굳세고 호쾌한 것은 둘째 형님이 큰형님(申光洙)을 따를 수 없습니다만 침울(沈鬱)하고 고고(高古-예스럽고 고상함)한 것은 큰형님이 양보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탁월한 식견이라고 인정해주셨다. 묘비명에 밝힌 바와 같이 기록 신광연은 부모님을 모시며 고향을 지키며 침울하고 고고한 시를 쓰면서 곤궁한 살림을 하면서 가족들의 버팀목 역할을 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4. 궁핍한 생활의 연속 기록 신광연은 말 그대로 굶기를 밥 먹는 듯하며 살았다. 병든 아내는 곡식을 못 빌릴까 걱정하고, 어린 딸들은 발버둥 치며 울어대는 생활고의 현장이 인근 부여(扶餘)를 지나면서 그가 남긴 시 久寒<구한-오랜 추위>에서 알 수 있다. “들판에는 시든 풀이 아득히 널려있고/ 황패한 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질 무렵 떠도는 행인들/ 북풍한설에 떠나는 섣달의 말/ 언덕에 기대어 부부는 우는데/ 세금 독촉에 관리는 야단법석/ 어느 곳에 낙토(樂土 : 편안한곳)가 있단 말인가/ 올해는 끔찍이 어렵고도 힘드네/가림도중<嘉林道中>이라는 시에서도 어느 곳에 가야 편안한 곳이 있단 말인가?/” “아이는 어미 등에서 보채는데/ 가야 할 길은 정말로 아마득/ 떠도는 삶에 정처를 찾기 어렵고/ 가슴 속의 정회(情懷:애틋한 감정)는 가눌 수 없네./ 옷가지 허름한데 눈은 내리고/ 눈앞에는 다시 해가 떨어지네/ 친척이 아니어서라고 말한다 해도/푸대접에 공연히 마음 상하네/” 기록 신광연이 가장으로써 헐벗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정처 없이 걸었던 가장의 심정을 시로써 잘 나타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잠시 고향을 떠나 바닷가 서천 송강(松江 : 현재 장항읍 송림리 솔리천) 계산(鷄山 : 당뫼)에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하는 자염업(煮鹽業)과 방풍을 캐어 약제로 팔며 궁핍한 생활을 진택 신광하(申光河) 둘째 형님과도 함께 하기도 하였다. 5. 애틋한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 기록 신광연은 첫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요절하였기에 말년에 딸 셋만 두었다. 그에게도 대를 이을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이 없이 딸만 있었기에 딸에게 푸대접을 하였던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의 시 유녀<幼女 : 어린 딸 아이>에 딸에 관한 솔직함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 어린 딸 총명하기 그지없어/ 아끼는 아비 마음을 모를 리 없네/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 행하고/ 네,네 대답하며 제때에 척척 맞추네/ 늘그막에야 사랑스러운 줄을 알겠으니/ 아들 아니라고 오래도록 무시해 미안 하구나/ 죽은 뒤의 일을 따져서 무엇 하랴/ 눈앞에 흡족하면 그것이 기쁨인 걸/” 이렇듯 노년의 아버지가 딸에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6. 신행 온 아들 같은 사위에 대한 정 깊은 12곡 기록 신광연의 첫딸을 해남 동강(東江) 백제(白濟)마을에 시집을 보냈다 시집간 큰딸이 15세인 신랑과 함께 신행을 왔다. 큰 딸도 신랑과 비슷한 나이였다. 신행 온 사위를 장인과 장모가 맞이하는 모습을 12곡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옛날이나 오늘날의 신행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보인다. <1곡> : 신랑은 열다섯 살, 신부도 그 또래/ 양가에서 귀하게 자라,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2곡> : 왼쪽 신랑은 문만큼 늠늠하고,/ 오른쪽 신부는 신랑 어깨만큼/ 늙은 장인은 너무 좋아서, 장모 사랑보다 훨씬 더하지/ <3곡> : 푸른 도포에 녹색 허리띠, 가늘게 짠 노란 삿갓 쓴 신랑/ 문밖으로 들랑들랑 정신 없이, 장모는 좋아서 죽는가 보네/ <4곡> : 서쪽 밭에 묻어둔 동치미, 서해 바다에서 가져온 청어/ 가난한 집 늙은 장모는, “접대가 소홀하다”며 미안을 연발 하네/ <5곡> : 장인은 매사에 물정을 몰라, 자잘한 일은 아랑곳 않지/ 밥상 놓고 부끄럼 없이, 시 지어 사위에게 써보라 하지/ ---이하 생략-- 1〜5곡에서 사위를 맞이하는 모습이 정겹다. 듬직한 신랑의 어깨만큼 자란 딸의 모습이다. 장모는 분주하게 오가며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대접할 음식 장만이 분주하고 푸짐하다. 그러나 가난한 살림에 딹 잡아 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작 밭에 묻어준 동침이와 생선 몇 마리이다. 그러나 장인과 장모의 마음은 풍족하게 보인다. 6〜12곡은 사위가 살고 있는 해남을 모습을 그리고 사위가 살고 있는 그곳 해남 동강(東江) 백제(白濟)마을로 사위 집 찾기는 식은 죽 먹기라며 그 대 마당 앞 작다란 복사꽃도 사위를 기다려 피어날 테지, 집에 가서 그 꽃이 피었거든 한 가지 꺾어 내게 보내 달라 하고 있다. 기록 신광연의 고향 <숭문북동>집 주변에도 복사꽃을 심었다 석북 형의 시인<詩人>란 시(詩)에 집주변에 복사꽃 피어난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위집과 자신의 집을 연상한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 내 젊은 날, 그대 조부(윤치민)의 사위였고, 그리고 그대가 이제 우리 집 사위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7. 기록 신광연은 4남매를 묶어주는 중심인물 기록 신광연은 문학사에 명성을 날린 인물은 아니지만,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을 지키면서 형제들과 애틋한 정을 나누며, 조카들을 가르치며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간 시인 이였다. 기록 신광연은 고령신씨 숭문동8문장가를 배출할 수 있도록 무대 뒤에서 조연을 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1778년 향년64세로 생을 마감했다. 전북 군산시 임피에 장사 지냈다가 화양면 활동리 남쪽 산에 이장하였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민의 우려 속에 치러진 제1회 장항 맥문동 꽃 축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대한민국 대표 축제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 군은 지난 29일 폐막식을 끝으로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5일간의 축제 일정을 마무리했다. 군은 ‘보랏빛 물결, 기쁨의 연속’이란 주제로 열린 맥문동 꽃 축제 기간에 20여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말 휴일이 시작된 지난 26일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맥문동 군락지’인 송림산림욕장에 마련된 축제장에 수만 명에 인파가 몰려 말 그대로 축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때문에 축제장에 입주한 대다수 판매업체가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는 등 대박을 냈다. 이날 일부 업체는 준비한 재료가 소진돼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 즐거운 비명을 내는가 하면 일부 입주 업체들은 이원화된 축제장으로 다소 아쉬운 판매 결과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서천지역 예술인들과 지역 출신 가수들이 ‘서천’ 알리기에 앞장을 서는 등 축제 흥행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5일 지역 출신 배우 김응수를 시작으로 가수 우연이 등이 출연해 고향인 서천의 자랑거리를 방문객들에게 홍보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주말에는 지역 출신 가수 나태양과 성철이 MC를 자처해 각종 공연의 출연진 소개와 함께 지역 특산물 홍보에 나섰으며 나예원, 강유진 등도 온 힘을 다해 흥을 돋우기도 했다. 또한, 지난 26일에는 한국예총 서천지회가 주관하는 ‘유(YOU) 문화애(愛)유’의 세 번째 무대인 ‘맥문동 꽃밭에서’가 선보여 관객들의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서천예총 산하 및 지역 예술동호회들이 다수 출연해 축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주말 휴일 흥겨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축제 개막 앞둔 10일 전만 해도 가설 주차장 및 주변 정리가 미흡해 축제의 성공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이에 군은 기존 주차장 4곳을 비롯해 축제장 인근에 가설 주차장 3곳을 마련해 대형버스 등 차량 약 2,300대를 수용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동식 화장실을 각 주차장에 설치하는 등 방문객 맞이에 나섰다. 또한, 주차장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경호경비 전문인력을 투입해 송림 마을 도로, 해양생물자원관 앞 4차선 도로 등 중점 교통구역을 통제하고 주차장 만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차량통제에도 나섰다. 이밖에 농촌 체험교육 농장, 농·특산품 홍보 판매전, 맥문동을 활용한 먹거리와 체험 부스 등 풍성한 체험 거리를 제공해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추억을 선사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했다. 특히, 장항 송림산림욕장 사이로 펼쳐진 맥문동 꽃밭은 발길 닿는 모든 곳에 자연 포토존으로 활용하고 곳곳에 맥문동 포토존을 설치하는 등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도했다. 김기웅 군수는 “처음 열리는 맥문동꽃 축제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 주셔서 감사드린다”라며, “장항 송림산림욕장이 전국적인 명소로 발돋움하고 군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키워나가겠다”라고 밝혔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김건희 여사가 충남 서천군 한산모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여사가 김기웅 서천군수에게 한산모시문화제의 성공적 개최에 따른 감사함을 표하는 서한문을 보내는가 하면 광복절을 맞아 생존해 계신 애국지사에게 한산모시 적삼을 선물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군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 23일 김기웅 군수에게 보낸 서한문에서 제33회 한산모시문화제가 국민적 감동과 성원 속에서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김 여사는 서한문을 통해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 서천에서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라며 “한산모시문화제가 국민적 감동과 성원 속에서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애쓰신 김기웅 군수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라고 전했다. 이어 “5만 서천군민과 서천군을 찾아 주신 관광객들과 함께 1500년 역사와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한산모시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서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산모시문화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고 서천이 세계 인류 무형유산을 품은 도시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잠자리 날개보다 아름다운 모시천을 엮어 내는 전승자 여러분들의 열정이 세계인의 가슴에 닿을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여사는 “한국방문의 해 명예위원장으로 한산모시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며 “김기웅 서천군수님과 5만 서천군민 여러분, 자랑스러운 전승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전했다. 앞서 김 여사는 지난 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과 생존 애국지사인 오성규 지사에게 앞으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무궁화 자수 한산모시 적삼’을 선물하기도 했다. 제공된 한산모시 적삼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인 방연옥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기웅 군수는 “지난 6월 방문 이후에도 한산모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내 준 김 여사님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라며 “한산모시가 서천군민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천군 또한 전통 섬유 엑스포 개최 및 가공산업 연구를 통한 현대 모시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 상태로 모시 산업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보랏빛 물결, 기쁨의 연속’이라는 주제로 5일간 충남 서천군 장항 송림산림욕장 일원에서 열린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가 주최 측 추산 20여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등 기대 이상의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기대 반 우려 반속에 개최된 이번 축제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힐링 꽃축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내보이기도 하였다. 매년 이맘때면 보랏빛 향연이 펼쳐져 수많은 관광객이 몰렸던 전국 최대 맥문동 군락지인 장항 송림 삼림욕장은 바다와 해송 그리고 맥문동꽃이 어울리는 자연 친화적 힐링 관광지라는 천혜의 관광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이번 제1회 장항 맥문동 꽃축제를 준비하면서 서천군은 기존 주차장 4곳을 비롯해 축제장 인근에 임시주차장 3곳을 더 마련해 대형버스 등 약 2,3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을 확보하여 축제장 주차 공간 부족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특히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장항산단로와 장항신항 도로는 향후 2,000여 대의 가용 주차 여력을 보였다. 유튜브 및 개인 SNS 등 새로운 관광 정보 채널이 장항 송림 맥문동꽃 축제의 홍보에 일조했다. 축제장을 찾은 대부분 관광객은 외지에서 찾아온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다양한 연령대였다. 외국인들의 방문도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이번 축제는 수제 맥주와 재즈(JAZZ) 음악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많은 초청 가수들의 흥겨운 공연이 관광객들에게 여름밤의 추억을 선사했다. 더더욱 맥문동을 이용한 지역의 특색 있고 다양한 먹거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다양한 먹는 즐거움까지 제공함으로써 관광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축제장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기 위하여 이번 축제는 주최 측에서 철저한 음식 가격 표시제를 시행한 것도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처음 개최되는 축제이다 보니 물론 여러 가지 미숙한 부분들도 지적되었다. 광활한 송림과 맥문동 단지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벤치 등 휴게시설과 포토존 등 사진 촬영 공간이 부족했던 점이 지적되었다. 전기, 수도, 가스 등 축제장의 기본 인프라가 미비했던 점도 지적되었다. 특히 공용 와이파이 서비스 등 첨단 서비스의 미비가 지적된 것은 옥에 티였다. 인접한 바다를 관광코스에 포함 시켜 다양한 갯벌 체험을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지적이 되었다. 대부분 관광객이 가족 단위이다 보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천갯벌에서 다양한 갯벌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면 하는 관광객 바람이 있었다. 내년에 다시 열릴 제2회 맥문동꽃 축제는 이를 보완하여 축제의 규모를 넓히고, 바다와 송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욱 개발하여 전국적인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장항 송림 맥문동 단지는 바다와 갯벌, 송림과 맥문동꽃 그리고 힐링이라는 독특한 관광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이들 관광인프라를 제대로 접목해 축제프로그램을 다양화한다면 세계적인 관광 축제로 장항 송림 맥문동꽃 축제가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축제가 충분히 보여주었다. 숙박시설의 부재와 전문식당의 부족이라는 부담감이 이번 축제에서도 여실히 지적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맥문동꽃 축제가 전국 최대의 꽃축제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제 축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축제는 준비되고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제1회 축제에서 지적된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송림 맥문동꽃 축제가 전국 최대의 지역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장항 송림 일원은 이미 전국 최대의 맥문동 군락지로 8월이면 보랏빛 몽롱한 향연이 펼쳐진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충분히 알려져 있다. 축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마음을 힐링하고 추억을 새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축제는 없다. 장항 송림 맥문동꽃 축제는 바다와 갯벌, 송림과 맥문동꽃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천혜의 축제장으로서의 호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제 장항 송림 맥문동꽃 축제를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키워나가야 하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번 축제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서천군 서천읍 소재 서천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 다사랑치킨 서천점 앞에 지난 6월부터 운영 중인 신호등에 대한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그간 신호등 체계의 문제점을 수차례에 걸쳐 수정을 거듭해 오다 운영되고 있지만, 교차로의 기형적 구조로 기존 점멸등으로 운영할 때보다 교통사고 위험에 더 노출되고 있다는 여론이 무게감을 더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서천읍 군사리 이장단은 지난 29일 좁은 시가지 도로의 폭을 넓히지도 않은 곳에 신호등이 설치하는 한편 좌회전과 직진 등을 동시에 신호하게 하는 등으로 운전자들의 불편을 가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평일과 휴일을 포함한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운영으로 차량이 정체됨은 물론 보행자와 신호등이 신호가 맞지 않아 사고 발생 위험성에 더욱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신호등 체계를 설치, 운영하기 전 주민공청회나 설명회 등은 사전에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호등에 설치된 인근 상인들 역시 예전 점멸등으로 운영할 때보다 오히려 보행자와 통행 차량과의 접촉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출퇴근 차량이 줄지은 대기 신호에 마치 병목현상마저 연상케 하는 차량정체와 혼잡함이 지속되고 있어 어린이를 포함한 주변 상인들 은 물론, 차량 운행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군사리 이장단은 현재 운영 중인 신호등 체계를 이전 점멸등으로 되돌리고, 다사랑치킨 서천점 앞 건널목을 다른 곳(새빛 안경컨텍트 앞)으로 이전해 원활한 차량 운행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청원서를 서천초등학교와 학교운영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9월 5일 공청회를 열고 지난 6월부터 운영 중인 신호등에 대한 실효성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해 그 결과를 군청 해당 부서와 서천경찰서에 전달할 계획이라고도 전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25일 같은 당 김상희 의원의 라임펀드 환매 중단 전 특혜성 환급수수 의혹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금감원이 1조 5,000억 원대 펀드 환매 사태를 부른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 3개 사 재검사 결과와 김 의원의 연루설에 선을 긋기 위해서다. 그는 브리핑에서 “야당 중진 의원에 대한 악의적 흠집 내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이 투자한 라임마티니 4호 펀드는 자유로운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로, 환매 중단 펀드와는 관계가 없다”라고 했다. 그는 “특수부 출신 검사가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장으로 파견됐다더니, 겨우 한다는 게 야당에 대한 공작질인가”라고 맹비난했다. 금감원의 발표 결과 대로라면 매우 충격적이다. 내용을 보면 국회의원 상장사 등 특정 수익자를 위한 특혜성 환매, 수천억원대 횡령과 배임, 임직원의 사적이익 취득 등이다. 이는 금융. 자본시장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라임사태와 관련한 특혜성 환매와 대규모 횡령, 그리고 정·관계 로비 정황이다. 라임펀드가 투자한 5개 사에서 발생한 2,000억 원대 횡령은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니 개탄스럽다. 더구나 그 대상이 정치권 등이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감원은 횡령 자금의 상당액이 비정상적인 곳으로 흘러간 정황을 발견해 검찰에 통보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그 용처를 밝히는 일이 남았다. 라임뿐 아니라 옵티머스와 디스커버리 펀드에서도 횡령, 펀드 돌려막기, 관련자들의 부정거래 등 범죄 혐의가 속속 드러났다. 그중에도 라임자산운용은 지난 2019년 10월 대규모 환매 중단 선언 직전에 다른 펀드 자금과 운용사 고유 자금으로 일부 유력 인사들에게 환매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특정인들에게 투자금의 손실이 없게 되돌려줬다는 점이다. A중앙회는 여기서 200억 원을 비슷한 방식으로 돌려받았다. 이에 반해 선량한 투자자들만 막대한 피해를 떠안게 됐으니, ‘이게 제정신인 나라인가’ 싶다. 아다시피 1조 5,000억 원대 환매 중단을 일으킨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는 수많은 피해자만 생겼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당시 정권 및 일부 여권 인사들의 연루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 당시 금감원 검사와 검찰 수사에선 어떤 이유인지 의혹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지켜보는 피해자나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검찰을 주시하는 것이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 눈이 쏠리는 이유다. 온갖 루머와 유언비어가 떠돌고 의혹들이 제기되는 만큼 철저한 수사로 범죄자들을 엄벌해야 옳다. 그것이 곧 한탕주의나 돈에 눈이 멀어 온갖 추태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또 불신의 바다가 된 자본시장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기회인 것이다. 온갖 횡행하는 다단계 사기, 자본투기, 보이스피싱 등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의 자본시장의 허술함도 이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여하간 김상희 의원 연루설도 명쾌하게 가려야 할뿐더러, 자본시장의 신뢰만큼은 분명히 세워야 한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예술인들과 지역 출신 가수들이 ‘서천’ 알리기에 앞장을 서는 등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의 흥행에 힘을 보태는 열정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5일 지역 출신 배우 김응수를 시작으로 가수 우연이 등이 출연해 고향인 서천의 자랑거리를 방문객들에게 홍보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주말에는 지역 출신 가수 나태양과 성철이 MC를 자처해 각종 공연의 출연진 소개와 함께 지역 특산물 홍보에 나섰으며 나예원, 강유진 등도 온 힘을 다해 흥을 돋우면서 서천 알리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지난 26일에는 한국예총 서천지회가 주관하는 ‘유(YOU) 문화애(愛)유’의 세 번째 무대인 ‘맥문동 꽃밭에서’가 선보였다. 이날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전통예술단 혼’의 수준 높은 공연에 이어 생태학박사들이 함께하는 가족체험프로그램 ‘에코히어로즈’ 운영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영화배우 겸 국악인 오정혜와 협연을 통해 ‘아리랑’을 불러 방문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으며 ‘전통예술단 혼’과의 콜라보 공연을 펼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울러 사진작가지부와 미술지부의 ‘꽃길 전시회’를 비롯해서 캘리그라피, 서양화, 맥문동 사진찍기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또 두레풍물연구회, 다섯손가락 기타동아리, 서면 색소폰동아리, 고고장구 서천지점 썬크루팀, 생활음악협회, 뷰티파워, 서천통기타, 서천 색소폰봉사단, 여정태악단 등이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이어 서천 아코디언동호회, 난타깡, 금빛소리 색소폰동호회, 아름다운선무용단, 밴드 동백, 서천 통기타&하모니카 봉사단 등이 출연해 공연하는 등 지역 알리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하던 한 관광객은 “서천지역 예술인과 지역 출신 연예인들이 보여준 남다른 지역 사랑을 보니 당연히 축제가 흥행한 것 아니냐”라며 “맥문동꽃 축제, 계속해서 대박 나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장에 입주한 대다수 판매업체가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는 등 대박을 냈다. 특히 일부 업체는 주말 휴일에 준비한 재료가 소진돼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 즐거운 비명을 내는가 하면 일부 입주 업체들은 이원화된 축제장으로 다소 아쉬운 판매 결과를 올리기도 했다. 군에 따르면 맥문동꽃 축제장 지역 먹거리 판매장에는 11개 업체가 참여했으며 수제 맥주 판매장은 4개 업체, 농·특산물 판매장은 16개 업체, 체험장은 10개 업체 등이 참여했다. 지난 26일 주말 휴일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축제장에 몰리면서 지역 먹거리 판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뤘으며 한때 일부 업체는 먹거리를 구매하려는 관광객들의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도 연출되기도 했다. 이 업체 운영자는 sbn서해신문 취재진의 판매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산모시문화제보다 몇 배 더 나은 판매량을 보인다”라며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한 업체 운영자는 “대박이에요. 대박”이라면서 “업체들 모두 이번 축제 기간에 대박 났어요”라며 “저는 준비한 재료가 소진돼 판매를 중단해야 해 아쉽다”라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보였다. 이는 주 무대에 마련된 탁자를 겸비한 의자 배치가 한몫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날 가족 단위로 축제장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주 무대에 준비된 탁자가 있는 의자에 앉아 펼쳐지는 공연을 보며 저마다 먹거리 판매장에서 구매한 음식을 시식했다. 또 한쪽 탁자에서는 지인들과 함께 서천지역에서 생산되는 수제 맥주를 구매해 맥문동 치킨과 더불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방문했다는 일부 관광객들은 옛 생각이 나는 맥문동 막걸리에다 맥문동 파전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은 축제장의 이원화로 주 무대 인근에서 운영하는 업체들보다 다소 아쉬운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축제장 입구에서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한 업체 운영자는 “한산모시문화제와 별반 차이가 없다”라며 “맥문동꽃을 보고 관광객들의 약 40%만 이곳을 찾아 판매량이 기대 이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올 축제장 동선이 이원화돼 일부 업체들의 판매량이 크게 상승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러울 따름”이라며 “내년 축제에는 판매장에 입주한 모든 업체가 높은 판매량을 보일 수 있도록 동선을 일원화하는 등 입주 업체의 판매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우리 고장 화양면 활동리와 대등리(숭문동)에 8 문장가 중 시인 진택 신광하와 그 형제들이 살았다. 당대에 문장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관계의 진출이 너무 늦어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삶을 살아갔다 숭문동 시인 진택 신광하의 삶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숭문동(崇文洞)은 우리고장 화양면 활동리와 대등리의 옛 마을이름의 별칭이다. 고령신씨(高靈申氏) 석북 신광수(申光洙)의 가계는 6대조 참판공 신영원(申永源1496∽1572)께서 한산이씨 목은 이색(李穡1328∽1396)선생의 후손인 이윤수(李允秀)공의 따님과 결혼하여 처가인 활동리(은골, 어은동)에 정착 세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장남 신담(申湛-호 어성-1519∽1595)은 충청도관찰사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을 역임했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첨추공 신호(申澔1687∽1767)의 첫째부인 성산이씨는 석북신광수(申光洙1712-1775)와 기록 신광연(신광연1715∽1778)을 낳으시고, 둘째부인 전주이씨는 진택 신광하(申光河1729-1796)와부용당신씨(申氏1732-1791)를부용당신씨(申氏1732-1791)를 낳으셨다. 석북 신광수는 아들5명을 두었으나, 동생 신광연과 신광하는 후사가 없어 신광수 아둘 중 4째 신석상(申奭相1737-1816)은 신광연(申光淵)에게, 5째 신보상(申甫相1743-1806)은 신광하(申光河)에게 각각 출계하여 후사를 이었다. 진택 신광하(申光河)는 영조5년(1729년)7월4일 한산군 남하면 활동리(숭문동)에서 태어났다. 그 후 석북 신광수(申光洙)와 3명의 동생 아들과 함께 숭문북동(현 대등리)에 새로운 집터를 마련 신축 세거하면서 숭문동 8문장가를 배출하였다. 1, 숭문북동에 새집 마련 1749년도2월15일자 숭문동에 신광수의 새집을 짓는 토지축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의 위치와 방향 주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때는 1749년2월15일에 고령 신광하(申光河)는 감히 토지의 신령께 고하나이다. 집터는 뒤로 큰 산이 등지고 동북방향입니다. 집터의 자리는 신비스럽게 빛나며, 드높고 충만합니다,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자리하고 그 원기는 극에 달았습니다. 실로 이러함에 나의집터로 열고자하나니 새로 짓는 집이 후손들로 하여금 선조(석북 신광수)의 집이라 하게 하소서”--이하생략--【維太歲己巳二月己卯朔十五日癸巳。高靈申光河。敢昭告于土地之神。維嶽艮位。赫靈磅礴。爲虎爲龍。元氣所極。實開我基。先祖是宅--】집의 방향은 뒷산 어성산(漁城山)의 높은 산을 동북방향을 등지고 남서쪽을 향하고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을 갖춘 명당임을 밝히고 있다. 토지신축문은 석북 신광수가 짓고 동생 광하가 고하였다. 토지축문을 볼 때 진택 신광수의 형님들과 조카들이 함께 이웃 숭문북동(대등리)로 새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2. 시 창작에 몰두하며 산천 유람 진택 신광하는 시인으로 주목받던 1756년 사마시(司馬試-생원지사 과시)에 응시하여 합격했지만,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진택 신광하의 집안은 남인으로 노론이 집권하던 정치 상황에서 형님 석북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후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택 신광하는 과거시험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시(詩)창작에 몰두하며 시인으로 자처하기도 하였다. 자연히 과거장(科擧場)나가는 것은 일종의 요식행위로 여기고 과거로 출세하는 것을 접었다. 보령 청라 외사촌 이우경(1724∽1813)와 과거장에서 보여준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1778년 음력8월20일 과거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진택 신광하는 과시장을 뒤로하고 56일간 2천여리의 금강산여행을 떠나버렸다. 그날 조카 신위상, 신석상과 이별의 시를 지었다. “동쪽 성문 시냇물 우는 다리 지나/남녁 나그네가 이제 막 성문을 나서네/ 맑은 새벽, 안개와 서리는 축축하고/가을하늘, 나뭇잎과 풀은 성글어졌네./창공은 막힌 데 없어 전신이 홀로 활개치고/들판이 펼쳐지니 마음이 점차 가뿐해지네./떠나자!, 내가 좋아하는 것 쫒아서/아련하구나! 내 가고 싶은 데로 가리라./” 이렇듯 진택 신광하는 산수를 유람하며 즐겼다. 시인 진택 신광하는 세상과 천지가 가두지 못한 진정한 유랑자였다. 백두산 대택(大澤, 곧 천지)를 진동시킨다는 호를 가진 진택(震澤)은 몸과 영혼의 거리가 끝이 없는 긴 사람이다. 진택 자신도 기꺼이 청광(淸狂:마음은 깨끗하지만, 상식과 맞지 않음)을 주체할 수 없어 진정한 노님을 꿈꾸는 사람이라 자처했다. 18세기 조선이 허락한 국토의 끝과 끝인 남쪽 강진과 해남으로부터 북쪽 백두산 절정까지 평생을 걸어 다닌 사람인 진택 신광하의 새로운 인간 탄생을 알림이 아닌가? “동방에 기이한 선비가 있어, 스스로를 진택(震澤)이라 불렀네(東方有奇士, 自號曰震澤)/세상 바깥에서 노닐었으나 마음은 담박(淡泊:욕심이 없고 깨끗한 마음)한 데 두었네/필마로 삼천리를 돌아다니고,/ 바람처럼 백두산에 올랐네/천지(天池)에서 갓끈을 씻고/대각봉(大角峰)에 기대 휘파람을 불었네/세상을 굽어보며 개미굴로 여겼고/하늘의 별들을 손으로 만졌네/ 바람에 맞서 호쾌하게 노래 부르니/ 그 소리가 산과 골짝을 진동시켰네/ --대제학 홍량호(洪良浩)는 만사(輓詞)로 진택 신광하를 애도하였다. 3. 생애 시 작품 2천수 남김 진택 신광하는 진택집(震澤集)에 2,000여수의 시를 남겼다. 진택집의 구성은시(詩)ㆍ서(書)ㆍ제문(祭文)ㆍ묘지(墓誌)ㆍ묘지명(墓誌銘)ㆍ잡저(雜著)ㆍ부록(附綠) 등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이 중에서 시는 저자가 옮겨 다닌 고장을 중심(中心)으로 엮어져 있는데, 남유록(南遊錄)ㆍ월중록(越中錄)ㆍ동해록(東海錄)ㆍ사군록(四郡錄)ㆍ동유록(東遊錄)ㆍ북유록(北遊錄)ㆍ백두록(白頭錄)ㆍ풍악록(楓岳錄)ㆍ서유록(西遊錄) 등의 편명(篇名)이 붙어 있다. 진택집(震澤集)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진택 큰형 석북 신광수 서거 200주년을 맞아 한국한문학연구원에서 1906년 석북 신광수 후손 신관휴(申觀休1838〜1908)가 간행한 활자본 창사본(滄蓑本)과 자료를 보충하여 신광수, 신광연, 신광하, 신부용당 신씨의 문집을 모아 【숭문연방집(崇文聯芳集)】을 1975년도 간행하게 됨에 따라 알려졌다. 숭문연방집의 해제는 당시 1975년 한국한문학연구회 회장 이가원(李家源1917∽2000) 선생께서 해제를 썼다. 특히 진택집(震澤集)은 진택공의 종7대손 신완식(申完植)과 이가원 회장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 필사본으로 영인발간 하였다. 진택 신광하는 영조32년(1756)진사(進士)에 합격하고 남쪽으로 지방을 유람하며 남긴 시가 진택집(震澤集) 남유록(南遊錄)에 잘 나타나 있다. 남유록에 대한 설명을 보면, “【公得司馬 南遊威鳳金山 仍爲踰嶺 轉至康海而歸】” 진택공께서 진사과시에 합격하고 남쪽으로 유람하셨는데 남쪽지방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威鳳마을)과 김제시 금산사(金山寺)을 유람하고 이어서 노령(蘆嶺)고개를 넘고 전남 강진(康津)과 해남(海南)을 돌아서 집에 도착하였다고 설명하였다. 4. 고향을 떠나며 빈곤한 생활의 연속 신광하의 형제들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해 빈곤한 생활을 하며 살았다.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695∽1728)의 반란 사건에 관련하여 충청도 청주에 사는 먼 친족 신천영(申天永)이 반란군에 가담하였던 까닭(석북17세 때)에 한때 고령신씨 전체가 정거(停擧-과거시험 금지)처분으로 과거응시 자체가 정지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한산지역 고령신씨들은 격쟁과 상소를 통해 한산지역 고령신씨 가문에 한하여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기도 하였다. 1752년 신광하는 궁핍한 생활을 해소하기 위해 외가댁 남포 청라(도화동)를 찾아가 의탁하기도 하였다. 큰형 석북 신광수는당시 24세 신광하에게 써준 시를 보면 당시의 궁핍한 생활의 내면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아우가 어머님을 따라/보령외가에 가서 나그네 되는 일이 많구나/흰 구름은 외로이 제 절로 떠나가는데/꽃다운 봄풀이 시들면 또 어찌 하랴!/헤어지자니 시 쓰려는 마음이 문득 줄어들고/병든 탓에 봄철이 지나가는 것도 안타깝구나/너도 또한 나를 그리워할 줄 알겠으니/꿈속에서 쑥 자라는 언덕으로 나를 찾아오겠지/” 신광수 나이 41세 때 신광하 외삼촌인 이제암(李齊嵒1690∽1778)과 외사촌 이우경(李羽慶1724∽1813)의 근거지로 신광수 가족이 자주 찾아 의탁하기도 하였다. 5. 다시 찾은 고향의 삶 그 뒤 7년 후인 1759년 신광하는 보령 외가에서 돌아와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계산-당뫼) 송강(松江-현 솔리천)으로 이사 해 해안가 방풍(防風) 약초를 캐어 생활하였다. 석북 신광수 큰 형이 그 소식을 듣고, “한 세상 살아가기 어렵고 어렵나니, 동생의 그런 삶은 실로 곤궁하기 때문이다”라고 탄식하며 아우 진택 신광하가 살고 있는 바닷가에 찾아가 심정을 시 남겼다. “온 산에 눈바람이 몰아치는 밤/형제가 등잔불 앞에 앉았네/옷과 음식은 추운 세밑이 걱정스럽고/공명을 이루기에는 흐르는 세월이 서글퍼지네/좋은 세상에 감히 바닷가에서 떠돌랴만/궁벽한 곳에서 밭가는 땅이나 얻고 싶네./살아가는 일일랑 우리 서로 힘써 보자/문장이란 것이 동전 한 푼 되질 못하니./” 바닷가에 동생 신광연(申光淵)과 신광하(申光河)가 방풍의 약초를 캐고 또한 바닷물을 길어다 소금을 굽는 자염(煮鹽)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광하의 진택집 채방풍(採防風)의 시(詩)에 “약초 캐서 생활하며 나의 오두막집 바닷가에 있다—중략—영험스런 방풍뿌리는 오래된 것은 속이 비어있다. 옛 의약서적에 꽃은 약제로 쓰지 않고 뿌리만 약제로 쓰니 둘째 형(申光淵)께 채취해 약으로 드려야 하였지 하며 형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생애(生涯)라는 시(詩)에도 송강(松江)의 강위에 삼간집에 살고 있다고 하고 있다. 해교잡영(海僑雜咏) 시 에도 ---장항 송강(松江-솔리천)의 계산(鷄山-당뫼)에 바닷물 끓여 자염하는 12개의 솥이 있다. 내일 해가 뜨면 하얀 소금 꽃이 피어나겠지 내일 아침에는 강경에 올라가 소금시장의 가격을 문의해봐야겠다”.---이하 생략— 라며 한때 광연 형님과 함께 방풍의 약초를 깨고 소금을 만드는 자염업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신광수는 20세부터 20여 년 동안 출입하던 과거 시험장은 씁씁한 낙방과 낭패감을 안겨주었으니 생활의 궁핍함을 말이 아니었다. 과거를 단념하고 1757년에 고향 숭문동으로 돌아온 후의 생활 모습이다. 1757년 19세 나이로 해남 석북 신광수의 장인 윤두서(尹斗緖) 손자 윤운(尹惲)에게 시집간 여동생 부용당 신씨(芙蓉堂 申氏)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인 숭문동으로 이사를 온 여동생이 1759년 보령 외가의 농토를 얻어 떠나가는 뒷모습을 시로 담아두었다. “5월 신성 가는 길에서 너를 이별하자니/총총히 떠나는 네 모습이 가련 하구나/ 가을걷이 끝나면 다시 만날 줄 알지만 /병중이라 만사가 쉬 서글퍼지는 구나/가난하면 골육도 흩어지는 일이 많고/먼 길이라 편지도 때에 맞추기 어려우리/문까지 따라가 제일 우는 녀석은 누군가?/어미 없이 줄줄 따랐던 내 셋째 아이놈 일세/” 이렇듯 석북 형제들이 생활의 궁핍 때문에 헤어져 살아갔다. 6. 채제공의 천거로 늦은 관직 생활 시작 신광하는 번암 채제공의 도움으로 1786년 조경묘참봉(肇慶廟參奉)에 제수되고 그 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형조좌랑·정조14년(1790)에 강원도 인제현감(麟蹄縣監)·우승지·공조참의를 거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좌승지로 승차 되었다. 1791년 63세에 대과 어제(御題) 어고(御考)에 급제한 후 재시험 어고에서도 급제 장원했으며 이듬해 정조 16년(1792년) 4월 24일 형조좌랑 때 정조가 시제를 낸 성시전도(城市全圖)에서도 장원의 영예를 얻었다. 정조의 고과 평을 보면 1등은 병조정랑 진택 신광하(申光河), 2등은 검서관 박제가, 3등은 검교직각 이만수이며, 승지 윤필병, 겸검서관 이덕무·유득공은 삼상(三上)으로 공동 4등을 하였다. 그리고 정조는 1등에서 4등까지 6편의 시에 대해서는 직접 평을 하였는데 1등을 한 신광하(申光河)의 시권에 대해서는 ‘소리가 있는 그림 같다 유성화(有聲畵), 2등 박제가의 시권은 ‘말을 알아듣는 그림 같다 해어화(解語畵). 3등 이만수 시권에 대해서는 ’시권이 좋다 시권가(試券哿), 4등 윤필병의 시권에 대해서는 ‘넉넉하다 담(贍)’, 이덕무의 시권에 대해서는 ‘아취가 있다 아(雅)’, 유득공의 시권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림 같다 도시화(都是畵)’라고 평가하였다. 1796년(정조 20)에는 휴직을 청하고 호서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질손 헌동(憲東)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산에 갔다가 6월 16일 나라의 경사를 맞아 하례하는 대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고된 일정으로 병이 났고 6월 30일에 성 서쪽 구교(臼橋)의 우거하던 집에서 향년68세로 세상을 떴다. 묘지는 파주시 검산동98-1 월롱산 남록 선영에 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매년 이맘때면 보랏빛 향연이 펼쳐져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전국 최대 맥문동 군락지 충남 서천군 장항 송림산림욕장 일원에서 25일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의 화려한 막이 오른다. ‘보랏빛 물결, 기쁨의 연속’이라는 주제로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열리는 이번 축제는 전국적 명소인 맥문동꽃을 비롯한 자연환경과 풍부한 먹거리 등의 제공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이를 위해 군은 기존 주차장 4곳을 비롯해 축제장 인근에 가설 주차장 3곳을 마련해 대형버스 등 차량 약 2,300대를 수용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동식 화장실을 각 주차장에 설치하는 등 방문객 맞이에 나섰다. 또한, 주차장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경호경비 전문인력을 투입해 송림 마을 도로, 해양생물자원관 앞 4차선 도로 등 중점 교통구역을 통제하고 주차장 만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차량통제에도 나선다. 축제는 개·폐막식, 축하공연, 예술단체공연 등과 함께 비주얼포토존, 힐링테라피, 맥문동꽃 팝업스토어, 꽃길 야행 등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또 국립생태원·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 기관홍보 부스가 운영되며 농·수·특산물 판매전, 수제 맥주 시음&체험 등이 선보인다. 일자별로 살펴보면 축제 개막 당일인 25일에는 주 무대에서 ‘김차동의 FM모닝쇼’ DJ 김차동이 사회를 맡아 진행하는 개막식이 오후 7시에 개최된다. 개막 공식행사 기념사·축사·퍼포먼스 등이 끝난 후 축하공연에는 서천지역 출신 김응수 배우와 우연이 가수의 축하공연과 함께 부활 등 초청 가수들의 특색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토요일인 26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서천군·한국예총 서천지회가 주관하고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각종 문화예술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맥문동 꽃밭에서’ 음악회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열린다. 27~28일에는 서천지역 출신 강유진, 나예원 등을 비롯해 초청 가수들의 7080 밴드공연과 지역 예술인, 청소년, 지역단체 동아리 등이 참여하는 공연이 선보인다. 아울러 맥문동을 활용한 농촌체험교육농장 등 체험행사와 먹거리 등을 선보이는 향토 업체의 다양한 프로그램 등도 운영된다. 김기웅 맥문동꽃 축제추진위원장은 “이번 축제를 통해 장항 송림산림욕장이 전국적인 명소로 발돋움하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라며,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서천군의 대표 축제로 운영돼 장항읍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분이 찾아 주시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한편, 축제가 열리는 장항 송림산림욕장에는 약 18만㎡ 소나무 숲에 600만 본인 전국 최대 규모의 맥문동 꽃밭이 조성돼 있어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