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스마트 축산단지 조성 추진에 따른 부지 선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되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 18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보령·서천 부사간척지에 스마트 축산단지 조성 추진에 따른 ‘축산단지 조성을 통한 산업 융복합 방안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설명회는 충남형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스마트 축산 시범단지 조성 계획의 올바른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축산단지 조성 대상지는 도내 보령·서천 부사간척지와 당진 석문간척지다. 설명회에는 김태흠 지사와 도·시군 및 농식품부 관계자, 한돈협회, 기업, 용역사 등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스마트 축사와 분뇨에너지화 시설, 도축장, 가공장 등을 구축하는 등의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하지만, 보령·서천 부사간척지에 축산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한 각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벌써 ‘웅천이냐’, ‘서면이냐’ 등의 부지 선정을 놓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는 서천군이 지난 2019년 가축분뇨와 음식 잔재물 등으로 발생한 가스로 전기를 생산하고, 처리된 액비와 퇴비가 비료로 재활용되는 사업인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사업’을 추진하다 서면 지역주민들의 찬성과 반대의 견해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일으키는 등 논쟁으로 현재까지 사업 자체가 표류 중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면 지역 한 주민은 “관광지에 분뇨 차량이 들락거리는 자체가 환경 오염이 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라며 “현재까지도 기업형 축사에서 발생한 악취가 인근 마을은 물론 춘장대 해수욕장까지 풍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축산단지 조성지 선정을 두고 웅천지역 주민들도 반대 뜻을 표하며 반발하는 등 지역 간 갈등이 우려되고 있어 지역별 주민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세밀한 설명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충남도는 충남형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스마트 축산 시범단지 조성은 지역별 산재한 양돈농가를 스마트 축산단지로 이동시켜 축산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축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북대·공주대·세민환경기술 컨소시엄을 통해 ‘간척지를 활용한 스마트 축산 복합단지 조성 연구용역’으로 간척지 활용 사업계획을 수립한 것이며 현재 축산단지 조성 대상지에 관한 결정은 내린 바가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역 간 주민들이 도출한 의견과 자문 내용을 검토해 현재 추진 중인 용역에 반영하고 내년 상반기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축산단지 조성을 위한 설명회·공청회 등을 거쳐 다시 한번 의견을 수렴한 뒤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태흠 지사는 “산업단지처럼 소규모 농가들을 모아 규모를 키우고 그 안에서 도축-육가공-브랜드화-분뇨처리-방역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게 미래 축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도는 스마트 축산단지를 바탕으로 축산농가의 생존권과 국민의 환경권을 모두 보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법에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지방의원 의무를 명문화했다. 우선 지방의원의 본령을 되돌아보자. 선출직 지방의원은 벼슬이 아니다. 자신을 뽑아 준 군민들을 대신해 군정이 잘 운영되도록 견제와 감시를 하는 군민의 대리인이다. 따라서 선출된 군의원들은 조례를 제·개정과 함께 예산을 심의·결정해야 하고 공무원과 집행부의 예산집행에 따른 업무를 감시할 수 있도록 도덕성과 전문성의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서천군의회가 변하지 않았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자질 부족 탓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도 높은 쇄신으로 군의회 역할과 위상을 강화할 방도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비판에 대해 억울해할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임을 반성하고 이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 군민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친다는 이율배반적인 사안은 이제 접어두고 군의원들의 의정활동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자숙을 통한 결정과 역량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 선거 기간은 물론 평소 지역구 활동 시 붙임성 좋고 깨끗한 인물임을 내세웠던 그 얼굴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선거 때만 군민을 위한다고 허언한다면 정치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명심하기를 바란다. 군의원 그대들은 군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되새기며 군의원이 벼슬이 아닌 군민의 대리인이라는 본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서천군의회를 보자. 마구잡이식 집행부 정책의 질타와 행정 집행에 대한 간섭은 기본이다. 게다가 군민은 지역 상권이 몰락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군민의 안위는 뒷전에 둔 채 잿밥에 눈이 멀어 제 역할을 못 하는 군의원들의 활동에 답답함을 보태고 있다. 일부 군의원의 경우 화합과 협치는 오간 데 없고 오직 정쟁에만 눈이 어두워 중앙정치의 꼭두각시 역할과 특정 정치인 줄서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지적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정치가 깨어나야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정치의 격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군의회나 내년 총선을 겨냥한 특정 정치인 띄우기라는 양면의 칼날을 겨냥한 정치놀음보다는 민생현장에서 군민의 소리를 수렴하여 의정에 반영해야 한다. 앞으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군민이 정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의 품격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모름지기 정치란 군민을 걱정해 주는 것이라 했거늘 도리어 군민이 정치를 걱정해 주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으니 군의회에 대한 자성 촉구의 목소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기초의회마저 중앙정치의 줄서기 정치에 혈안이 되어 특정 정당 출신 의원들은 지역 유력정치인의 ‘병풍’ 노릇을 하기에 바쁜 모양새를 보여 안타깝다. 지역 현안에 대한 협치나 화합은 오간 데 없이 따로국밥 군의회로 변질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군의원들은 애써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 군의원이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대신해 뽑아 준 군민에게 막말하는 사실로 결국 사과하는 추태를 보였다. 게다가 군민의 대의기관인 군의회의 수장인 의장은 비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이 제기되어 부정부패 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피소되는 사태까지 다다랐다. 이로 인해 이것이 무슨 대의정치의 장인 군의회냐는 푸념 섞인 조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기초의회 무용론과 기초의회 폐지론까지 주장이 나오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선거 기간 군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목이 터지라 외친지 1년여 만에 숙였던 허리는 뻣뻣해진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군정 발전보다는 개인의 자존심과 권위를 앞세우려 한다는 군민의 지적을 군의원 모두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까지 군민이 군의원을 걱정해줘야 하는가.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진정 국면에 들어섰던 충남 서천군의회 이강선 의원의 갑질 의혹과 막말 파문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또한, 김경제 서천군의회 의장의 부정부패 방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이 의원으로부터 시작된 불이 김 의장까지 옮겨붙었다. 나라 사랑 애국연대 시민단체는 지난 23일 서천군청 신청사 앞 집회를 통해 ‘이강선 의원의 공개 사과’와 ‘김경제 의장의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 등을 촉구했다. 이 시민단체는 이날 ‘내가 하면 의정활동, 남이 하면 갑질?’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민간 영업장을 무단으로 사진 촬영한 것과 과도한 자료 요구한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 의원의 의정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비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김경제 의장의 부정부패 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등 건물을 임대주고 예산으로 임대료를 챙긴 점을 비판했다. 성철 나라 사랑 애국연대 대표는 이날 sbn서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강선 의원이 주민에게 ‘싸가지 없다’고 막말한 것에 대해 이해 당사자에게 사과했듯이 군민에게 공개로 사과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는 ‘그런 일 없다’라고 했던 이 의원이 지난 15일 이해 당사자인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에게 사과한 것은 결국, 이 의원이 ‘싸가지 없다’라고 막말한 것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성 대표는 “그동안 공무원·시민 단체장·동료 의원 등을 향한 갑질한 행위도 의심되는 만큼 군민을 대신하는 자로서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김 의장의 비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이 있다”라며 “김 의장의 부정부패 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성역 없는 경찰의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군민을 대신해 군 집행부를 감시·견제하라고 했더니 군청 예산으로 본인 건물의 임대료를 챙겼다”라며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라고 토로했다. 이는 최근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김 의장이 2022년도 예산심의 과정에서 알게 된 비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의혹이 있다며 부정부패 방지법 위반에 따른 고발장을 경찰에 접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성철 대표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려워 주민을 대신해 감시·견제하라는 뽑아 줬더니 막중한 책무는 고사하고 군민을 무시하고 배신한 이들 모습을 보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라고 일갈했다.
올봄 한일 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일 때였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일본 여행을 다시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예전에 일본에서 렌터카를 빌려 직접 운전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수십 년간 운전하던 습관을 반대로 해야 일본에서 운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일본에서는 왼쪽으로 회전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합니다. 저는 우선 왜 어느 나라는 운전대가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있고 일본이나 영국은 오른쪽에 있는지 궁금하여 Chat GPT에 물어보았습니다. 영국은 자동차 운전대가 일본처럼 오른쪽에 있고 좌측 통행합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기사들의 기마 전투 풍습에서 기인하였다는 설입니다. 기사의 대부분은 오른손잡이이므로 길의 왼쪽을 타면 기사의 오른팔이 반대 방향에서 오는 적과 자유롭게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으로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나오기 이전부터 말과 마차는 좌측통행이 관습으로 자리 잡았고 자동차가 출현한 이후 자연스럽게 법제화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자동차 운전하는 것이 모두 오른쪽에 있습니다. 영연방국가들과 일본이 그렇습니다. 반면 프랑스의 우측 통행 전통은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혁명 이전에는 말이나 마차가 좌측 통행, 우측 통행 구분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영국처럼 기사들이 오른쪽 손을 편하게 쓰기 위해 좌측 통행을 하는 경향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옛 귀족 전통과의 차별화를 위한 방안으로 우측 통행을 규칙화하고 나폴레옹이 이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킵니다. 혁명의 한 징표가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많은 나라에서 우측 통행을 법제화하였습니다.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 전통의 반대를 취하게 되어 우측 통행하게 되었고, 마차 시대가 자동차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측 통행으로 법제화되었습니다. 아무튼 전 세계는 오른쪽 운전석(Right-hand drive/RHD)과 왼쪽 운전석(Left-hand drive/LHD)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영국과 같은 RHD가 30~35%이고, 프랑스 같은 LHD가 65~70%입니다. 영국과 같은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과 인도, 인도네시아가 있고,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미국과 중국, 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영향을 받아 오른쪽 운전석이다가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왼쪽 운전석으로 바뀐 경우입니다. 이처럼 통행 방향이 바뀐 나라들이 더러 있습니다. 1967년 스웨덴, 1968년 아이슬란드가 영국처럼 좌측 통행하다가 우측 통행으로 바뀌었습니다. 드디어 저는 일본에서 렌터카 운전에 도전하였습니다. 처음 핸들을 잡고 주차장에서 길로 나설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작은 길에서 T자형 큰길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좌회전하여야 하는데 신호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냥 가도 된다고 해서 그제야 좌회전하였습니다. 30분을 운전하니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오른쪽 운전석 운전이 어렵다고 한 것은 대부분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상상에 따른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몇 가지 어색한 점도 있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도 있지만 아예 너무 어려워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도전했는데 저보다 쉽게 적응하였습니다. 며칠을 운전하고도 여전히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일본 자동차는 방향 조정 레버가 운전대 오른쪽에 있고 윈도 브러시 조정 레버가 운전대 왼쪽에 있어 우리나라와 정반대입니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왼쪽 레버를 올리던 습관대로 왼쪽 레버를 올려 윈도 브러시가 작동한 것이 수십 차례입니다. 둘째, 일본의 차선은 차량이 작아서 그런지 매우 좁습니다. 편도 1차선 시골길은 교행하다가 부딪힐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차량을 왼쪽으로 치우쳐 운전하게 되고 번번이 아내가 ‘차가 너무 왼쪽으로 붙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셋째, 고속도로에서 추월차선은 맨 오른쪽에 있는 차선입니다. 오른쪽 운전석 운전이 서툴러 천천히 주행하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처럼 오른쪽으로 달리면 금방 추월하려는 차량이 따라붙습니다. 서행 차선은 왼쪽 차선인 것입니다. 그래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적응하였습니다. 이제 일본에서 렌터카를 빌려 전국 어디나 여행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동경 시내에서도 운전하였으니까요.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경찰서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흉기 난동 등 이상 동기 범죄예방에 대한 발 빠른 대처로 군민의 안전을 지키는 등 군민을 위한 치안 서비스가 빛을 발했다. 언론매체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 사건, 서울시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까지 흉악범죄가 잇달아 터졌다. 이로 인해 경찰청은 지난 7일 국민의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비상한 각오로 흉기 난동과 그에 대한 모방범죄 등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했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흉기 난동 등 이상 동기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전 경찰관의 비상근무에 돌입하고 다중 밀집 장소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순찰을 강화하는 등 특별치안 활동에 들어갔다. 또한, 학교 주변 등 범죄 발생 위험지역을 대상으로 경찰관을 추가로 배치하고 서천군 CCTV 통합 관제센터에도 다중 밀집 장소에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한 CCTV 화상 순찰 강화를 요청했다. 군과 경찰서에 따르면 CCTV 통합 관제센터는 지역 내 중요 범인 검거·청소년 비위·주취자·교통사고 현장 등 지난해 72건, 올 7월까지 27건 등을 112에 신고하는 등 주민 안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제센터 A 직원은 지난 9일 오후 2시 56분경 서천초등학교 인근 도로변 인근에 있는 주민 B씨가 비틀거리고 배회하며 주민·학생들에게 다가가 불안감을 조성하는 모습을 목격, 112에 신고했다. 신고받은 경찰은 신속히 현장에 출동해 학교 주변에 있는 B씨를 발견, 우선 안정을 취하게 한 후 귀가 조처했다. 경찰서에 따르면 B씨는 미미한 심신 미약 증세가 있어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었고 당시 복용하던 약이 모두 소진된 상태로 약 효능이 떨어져 비틀거리고 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복용하던 약이 없었던 것은 B씨가 먹는 약이 처방전 없이 지역 약국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지난 21일 관제센터를 방문, 혹시 일어났을지 모르는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고, 안전한 지역사회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한 A 직원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구슬환 경찰서장은 “세심한 관찰로 최근 사회적 이슈인 흉기 난동 등 이상 동기 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고해준 것에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작은 신고일지라도 안정적인 치안을 만드는 밑거름이라며 안전한 서천을 위해 24시간 밤낮없이 CCTV 모니터링으로 경찰의 눈이 되어준 근무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천군 CCTV 통합 관제센터는 지역 내 490개소에 설치된 1,015대의 CCTV로 취약 지점 등을 화상 순찰을 꾸준히 하고 있다.
우리 고장 건암서원에 풍옥헌 조수륜과 그의 아들 창강 조속이 배향되어 있다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된 후 복설되지 않고 있다. 풍옥헌과 창강 선생의 서원배향과정과 광해군의 폭정으로 희생된 풍옥헌 선생에 대한 훗날 인조반정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서원창건과 사액 우리 고장 문산면 지원리(鳴谷-명곡)에 명곡서원(鳴谷書院)이 있었다. 건암리로 이전하기 전에는 사액되지 못한 명곡서원은 현종 3년(1662년)에 사당의 형태로 창건되어 명곡 이산보(李山甫1539~1594)와 중봉 조헌(趙憲1544~1592)을 배향면서 1709년에 풍옥헌 조수륜과 창강 조속 부자를 추가 배향하였다. 그 후 문산면 건암리로 이건하고 1713년 10월 24일 사액서원(賜額書院-조정의 인가서원)인 건암서원(建巖書院)이 되었다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된 후 현재까지 복설되지 못하였다. 2. 풍옥헌의 낙향의 생활 풍옥헌 조수륜(趙守倫)은 경기도 과천(果川)에서 태어났고 서천 문조향(文照鄕-서지골 현 문장교회 옆 서쪽 마을) 즉 문장리(화리) 마을에 낙향하여 5~6년간 살았다. 그곳에서 창강 조속(趙涑)을 낳았다. 풍옥헌 사후에 옛집에 후학을 강학하였던 곳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문산면 은곡리(한실)에서 대곡서당(大谷서당 훗날 雲圃堂)에서 강학하였던 평해구씨 구암(龜巖) 구병대(丘秉大1858~1916) 선생께서 일찍이 순국지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 선생께서 우리 고장 풍옥헌 조수륜 선생께 사시던 구택(舊宅)에서 뵙고 가르침을 청하여 송병선의 문하생이 되었다고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찬(撰)한 구병대(丘秉大)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풍옥헌 구택(舊宅)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문산면 건암리에 있던 건암서원이 훼철된 후 이곳으로 강학의 장소로 이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3. 풍옥헌 구택은 홍주의병의 숙영지 홍주의병실록을 보면, 1906년 4월 19일 의병이 문산면 구변동(九邊洞)과 문장리(文章里)에서 숙영하면서 구변동에서 300여 명, 문장리(文章里)에서 300명을 더하여 다음날 1,000여 명의 의병이 서천읍성(舒川邑城)을 함락하고 서천군수 이종석(李種奭)을 감금하고 인장과 관청의 돈, 모슬포총, 탄환 등 무기를 탈취하고 여세를 몰아 비인, 판교, 남포를 거처 홍주성을 함락한 사실을 홍주의병록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풍옥헌 구택(舊宅)은 강학(講學)과 홍주의병의 숙영지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둔덕리(용학동) 풍옥헌 별장의 은거와 관직 생활 풍옥헌은 서쪽으로 서천읍 둔덕리(용학동)에 풍옥헌(風玉軒) 별장(別莊)을 짓고 3년간을 거처하였다. 조수륜은 선조 38년(1605년) 50세에 대흥 현감(大興 縣監)으로 제수되었다가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광해 3년(1611년) 56세에 평택 현감으로 제수되었다가 다음 해 1612년 김직재(金直哉 1554~1612) 옥사(獄事)의 무고로 형신(刑訊-죄를 심문하며 고문의 형벌)을 받다가 감옥에서 57세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622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여 복권되고 좌승지(左承旨)에 추증하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사제(賜祭)하였다. 또한 아들 창강 조속(趙涑)은 인조반정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인조반정 참여 공신)에 올랐으나 억울하게 죽은 부친의 원한을 갚기 위해 참여하였기에 공신등록을 거절하였으며, 또한 병조참판(兵曹參判) 추증되었다. 5. 김직재(金直哉)의 옥(獄)사건 풍옥헌 조수륜(趙守倫)의 억울한 죽음은 광해군 때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소북파(小北派)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옥사(獄事)로 광해군 4년(1612년) 2월 황해도 봉산군수 신율(申慄)이 어보(御寶)와 관인을 위조해 군역을 피하려고 했던 김경립(金景立, 일명 濟世)을 체포한 뒤, 유팽석(柳彭錫)을 시켜 무옥(誣獄-무고한 죄목)을 꾸미게 한 데서 발단이 되었다. 신율(申慄)은 체포된 김경립의 동생 김익진(金翼辰)에게는 8도(八道)에 각각 대장(大將), 별장(別將)을 정해 불시에 서울을 함락시키고자 하였으며, 김경립 자신도 여기에 가담하였다고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또, 김경립의 동생 김익진(金翼辰)에게는 8도도대장(八道都大將)이 김백함(金白緘)이며, 김백함은 아버지 김직재(金直哉)의 실직(失職-직업을 잃음)에 대한 불만을 품고 모역하였다고 진술하게 하였다. 봉산군수 신률(申慄1572∽1613))은 김직재와 그의 아들 김백함을 역모의 주모자로 몰았다. 황해병사 유공량(柳公亮)과 감사 윤훤(尹暄)은 이 사실을 조정에 아뢰고 김직재를 체포하여 조정으로 보냈다. 김직재를 국문하였고, 아들 김백함, 김직재의 사위 황보신(皇甫信) 등이 모진 고문을 받고, 김백함은 자기가 역모의 주모자이며 그들이 왕으로 추대한 인물은 진릉군(晉陵君)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이들은 고문에 못 이겨 황혁(黃赫 1551~1612) 등과 함께 음모를 꾸며 왕의 형인 순화군(順和君-선조의 6남)의 양자인 진릉군(晉陵君)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라고 진술했다. 황혁(黃赫-순화군의 장인)은 곤장을 맞고 옥사하였다. 광해군의 형 임해군(臨海君)과 조카인 진릉군(晉陵君)도 역모죄를 가하여 죽였다. 황혁(黃赫)은 당시 신천(信川-황해도)에 유배되어 있었기에 진릉군이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의심했다. 풍옥헌 조수륜은 황혁(黃赫)의 처남이기도 하다. 6. 궁류시와 권필의 죽음 권필(權韠-지족당 權讓의 종조부)은 광해군의 비 유씨의 동생 등 외척들의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宮柳詩)를 남겼다. “宮柳靑靑 花亂飛 /궁궐의 버들푸릇푸릇하고 꾀꼬리는 요란하게 나는구나/滿城冠蓋 媚春暉/성에 가득찬 벼슬아치들은 봄볕에 상긋기리네/朝家共賀 昇平樂/조정에서는 함께 태평의 즐거움을 하례하는 차에/誰遣危言 出布衣/누가 시켜 위태한 말이 선비의 입에서 나오게 하였나.”라고 지었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에 연루된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가 지었음이 발각되어 친국 받을 때 백사 이항복(李恒福)은 울며 임금 광해에게 말했다. “경솔한 선비의 한 때 망년된 시로서 어찌 형장(刑杖)질 하는데 이를 것이며, 이 일이 역옥(逆獄)과 관계가 없는데, 만약 중한 형을 시행하여 죽음에 이르면, 어찌 성상의 덕에 누(累)가 되지 않겠습니까. 대개 이 시(詩)가 무심하게 지은 것은 아니고 비록 지적한 뜻이 있으나 또한 어찌 중형을 할 정도에 이르겠습니까?”하고 재삼 울면서 간청하였으나 광해가 듣지 않았다. 뒤 해남으로 유배되는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다다랐을 때 행인들이 주는 동정의 술을 폭음한 다음 날 장독으로 죽었다. 그 뒤 이 사건이 무고임이 밝혀져서 최유해, 정호선, 정경세, 등 26명은 석방되었다. 권필(權韠)은 1623년 인조반정 뒤, 복권되어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다. 7. 김직재의 옥사(獄事)의 배경 조수륜의 매형인 황혁(黃赫)은 봉산군수 신률(申慄)과의 과거 집안 간에 다툼으로 원한을 갖고 있었다. 광해군 일기를 보면, 광해 4년(1612) 신률의 집안과 황혁의 집안 간의 원한을 논한 기사가 보인다. “살펴보건대 신률의 조부 신점(申點)이 황혁의 부친 황정욱(黃廷彧)과 집이 서로 이웃해 있었는데 기축년 여름 황정욱(黃廷彧)이 퇴근하는 길에 화살이 그의 수레에 맞았다. 도졸(導卒-하인)이 달려 따라가서 화살을 쏜 사람과 따지다가 그와 싸움하여 상처를 입었다. 화살을 쏜 사람은 신률(申慄)의 형 신열(申悅)이었다. 그 소행을 형조에 보고하여 잡아다 다스리려 했으나 숨어버려 잡지 못하였다. 그 뒤 황정욱(黃廷彧)의 집에서 고용 노비 한 사람을 얻어 집에서 일을 시켰는데 그 노비가 몰래 황정욱의 침실에다 뼈를 묻어놓고 저주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신문하니, 노비가 말하길 본래 신열(申悅)의 부친의 노비인데 형 신순일(申純一)이 전의 일로 원망을 품고 저로 하여금 거짓 고용 노비 노릇을 하면서 흉측한 짓을 행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정욱은 그 노비를 형조에 송치하였는데, 옥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임진왜란을 만나 풀어주었다. 이와 같은 집안의 원한으로 인하여 황혁(黃赫)을 역모를 가담하였다는 무옥을 논하고 있다. 8. 권필의 형 권도 귀양 권필의 형 권도(權導)도 죄를 입고 해남(海南)으로 귀양 갔는데 떠날 때에 시를 짓기를, “신의 죄 산 같으니 죽음도 달게 받겠는데/ 임금의 은혜 너그럽게 용사하여 강남으로 귀양가오/갈림길 이르러 특별히 무궁한 한(恨)이 있음은/ 자애로운 부모님의 연세가 여든셋이기 때문이라네.”라 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이 듣고 슬퍼하였다는 <속잡록>에 실려 있다. <공사문건>의 기록에 권필이 일찍이 족인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누웠을 때 광해군(임금)의 처남인 유희분(柳希奮)이 마침 왔다. 주인이 권필을 발로 차면서 말하기를, “문창(文昌)대감이 왔소” 하니, 권필이 눈을 부릅뜨고 한참 보다가, “네가 유희분인가? 네가 부귀를 누리면서 국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냐? 나라가 망하면 네 집도 망할 것이니 도끼가 네 목에는 이르지 않겠느냐.?” 하였다. 유희분은 말을 못하고 기가 막혀서 가벼렸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권필(權韠)의 화는 순전히 궁류 시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다. 9. 풍옥헌 사위 이덕수(李德洙) 연좌죄에서 구해 주다. 조수륜의 사위 이덕수(李德洙 1577〜1645)도 역모로 형신을 하려 하자, 이덕형(李德泂-어성 신담 사위), 이항복(李恒福), 최유원 등이 적극 변호하여 사위 이덕수를 구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조수륜은 신원이 되었다. 인조가 즉위하여 조수륜을 좌승지에 추증하고 예관(禮官)을 보내 사제(賜祭:임금이 죽은 신하에 대한 제사)하였다. 또 귀양 가 있었던 사위 이덕수(李德洙)가 조정에 돌아와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이덕형(李德泂)의 장인 어성 신담(申湛) 선생은 고향이 화양면 활동리(은골)이다 10. 창강 조속(趙涑)의 인조반정 참여와 공신녹권 사양 인조반정이 일어난 해에 인조는 권필, 조수륜, 황혁(黃赫 : 조수륜의 매형)등에게 치제(致祭)하고 그 자손을 녹용(錄用-관직에 임용)하도록 명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수륜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다. “조수륜은 풍양인으로 응교 조정기(趙廷機)의 아들인데, 기묘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 성혼(成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문에 힘쓰고 절조를 굳게 지켰으며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가난을 낙으로 삼다)하였으며 후생을 가르쳤다. 일찍이 대신의 천거를 받아 늦게야 음관(蔭官)으로 벼슬에 나아가 두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는데 모두 그가 떠난 뒤에까지 고을 백성들이 그를 흠모하였다. 그러다가 임자년 김직재 옥사 때 서찰 문제로 체포되어 죽었다.”라고 하였다. 조수륜의 셋째 아들 창강 조속(趙涑)이 인조반정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올랐으나 극구 사양하여 제외되었다. 조수륜의 첫째 아들 조척(趙滌)은 부친이 옥사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자 땅을 두드리며 통곡하고 호소하였는데, 열 손가락 손톱이 모두 빠졌다. 조수륜이 죽자 3년을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탈상 뒤에도 묘 옆에 기거하면서 애통해 하다가 사망하였다. 이에 인조반정으로 조척도 증직하고 정려(旌閭)하였다. 11. 인조반정 후 고향에서 청빈하게 삶을 마감 창강 조속(趙涑)은 장령과 김제군수, 임피현감 등을 지냈다. 인조반정이 이루어진 뒤 즉시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가 서울에 발길을 끊었다. 만년에는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는데도 운명에 편안하여서 애당초 병을 앓지 않았던 사람 같았으므로 사람들이 혹 병을 칭탁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조속이 74세로 사망하자 왕조실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장령 조속(趙涑)이 죽었다. 아비는 현감 조수륜(趙守倫)인데, 광해군 때에 억울하게 죽었다. 조속이 아비가 비명에 죽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여, 인조반정할 때 참여한 공이 많았는데, 일이 이루어진 뒤에 단연코 공훈록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것으로 그의 뜻을 고결하게 여겼다. 효종 때에 사헌부 사간원에 발탁되었는데, 끝내 부임하지 않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끼니를 잇기 어려웠는데도 태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솜씨가 있어 필법이 세상에 전해진다.”하였다. 조수륜의 동생 조수익(趙守翼)의 7대 후손 영의정을 지낸 조만영(趙萬永)의 딸인 익종(翼宗)의 대왕대비(신정왕후) 조대비(헌종 모친)로 한때 수령첨정도 하였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산림욕장에서 오는 25일 개막할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의 막바지 공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축제장이 주변 정리 미흡 등으로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군에 따르면 올해 첫 회를 맞는 ‘맥문동꽃 축제’는 오는 2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5일간 장항읍 송림산림욕장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에 김기웅 군수는 지난 7일 8월 중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오는 25일 개최될 ‘맥문동꽃 축제’와 관련, 안전하고 볼거리 풍성한 축제를 위해 철저한 준비에 유기적으로 대응해달라”라며 주문했다. 그러면서 “축제장을 찾는 군민과 관광객들이 교통·주차의 편리성과 불편이 없도록 부서별 유기적인 협조와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는 공연, 경연, 체험 등 크게 3가지 테마와 사진전, 특산물, 전시·판매 및 소곡주·맥주가 있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15일 sbn서해신문이 축제가 열릴 송림산림욕장 일원을 점검한 결과, 일주일 가까이 다가온 축제장의 준비상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날 군은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가설 주차장 조성과 함께 축제장 주 무대가 설치될 공간의 용지에 건설장비를 투입해 공사가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또 조성된 주차장 부지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물러 자갈을 투입하는 등 단단한 기반을 조성하는 공사로 여념이 없었다. 자칫 축제가 끝나기 전에 비라도 내린다면 주차장은 물론 축제장 주 무대 일원이 진흙탕으로 변할 수 있는 우려를 낳고 있었다. 게다가 축제장 인근 해안가에는 폭우로 밀려온 해안 쓰레기가 수십 톤이나 쌓여 있는 등 축제 개최에 따른 준비에 미숙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해안 쓰레기에는 폐타이어를 포함한 플라스틱 재질의 생활용품 등 각종 쓰레기가 뒤섞어 쌓여 있어 마치 쓰레기장을 연상케 하는 등 지나가는방문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갈대와 억새 등과 생활 쓰레기가 뒤섞인 채 뜨거운 태양 아래 썩고 있어 악취 등을 풍겼으며 일부 맥문동꽃 길과 해안가를 연결한 백사장 길 역시 고인 물로 질퍽거리는 등 안전사고에 노출된 형태를 보였다. 이날 축제장 인근에 만난 한 군민은 “현재 축제장을 보면, 제2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개막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또 한 군민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해양쓰레기며 질퍽거리는 백사장 인도 등의 정비가이뤄지지 않으면 방문객들의 불편이 속출할 것은 물론 안전사고에 노출되는 등의 위험성으로 성공적 개최는 물 건너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축제 방문객을 위한 가설 주차장과 주 무대 부지에 대한 공사는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이면 마무리된다”라며 “송림산림욕장 인근 조성된 주차장과 주 무대 부지는 그나마 물 빠짐이 수월해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인근에 조성되는 가설 주차장은 물 빠짐이 수월하지 못해 우천 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인근에 확보된 대체 주차장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백사장에 야적된 해양쓰레기 역시 금일 내 마무리할 예정이며 지속해서 백사장에 밀려오는 잡다한 쓰레기도 가용 인원을 투입해 정리하는 등으로 축제장 주변을 쾌적하게 조성하겠다”라고 말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강경모 신임 서천사랑장학회 이사장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장학사업을 개발해 추진하는 등 새롭게 변신하는 장학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강 신임 이사장은 지난 14일 sbn서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장학생 선발은 물론 관내 학생들이 원하는 사업을 개발하는 등 혁신을 통해 서천 발전의 초석이 되는 인재 육성에 나서겠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군민이 참여하는 군민을 위한 군민이 중심이 되는 더 큰 장학회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역대 이사장님들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야심 찬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 성공 체험의 신화를 이루겠다”라고 약속했다. 또한, 강 신임 이사장은 지역 학생을 위한 맞춤형 장학사업 추진에 대한 세부 계획도 내놓았다. 그는 “각 학교 학생 대표·학부모 대표·교사 대표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진정 학생들이 원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의견 등을 토대로 다양한 장학사업의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기존의 획일적인 장학금 지급에서 벗어나 취약계층 학생, 다자녀 가정 학생, 조손가정 학생 등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장학생을 선발하는 장학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적순으로 선정하는 장학생 선발뿐만 아니라 예체능 학생들을 포함한 지역 기여도가 높은 학생들을 위한 신규 선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혁신적인 장학사업을 펼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림학당 원장 및 교사들과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 관내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학습 방법과 이에 따른 애로사항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강 신임 이사장은 지난달 28일 문예의 전당 소강당에서 가진 서천사랑장학회 이사장이·취임식을 통해 이사장 직무에 돌입, 4년간 책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는 이날 취임사를 통해 “오늘의 시간이 조금은 두렵고 어설프지만, 회원 여러분의 열렬한 호응과 서천 군민의 지지만 있다면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서천사랑장학회는 군민이 참여하는 군민을 위한 군민이 중심이 되는 장학회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저의 힘을 합쳐 새로운 내일을 여는 행복한 서천을 만들어 보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은 물론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장학사업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마지막으로 “그동안 장학회를 잘 이끌어 주신 구창환 이사장께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충남 서천군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가 개막일까지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주 김기웅 군수는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맥문동꽃 축제’ 관련해 각 부서장에게 안전하고 볼거리 풍성한 축제를 위한 준비에 유기적인 대응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 군수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맥문동꽃 축제장을 찾아 축제 담당 부서장에게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축제는 김 군수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탓도 있지만, 아마도 김 군수의 지역발전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 때문일까. 지난주부터 군은 축제장에 필요한 주차장을 비롯해 주 무대가 들어설 용지에 대한 막바지 공사에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등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문화를 상품화한 축제는 군민의 자신감을 키우고 지역 경제발전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 것으로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사실상 축제 의미는 나름 지역의 문화를 창달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고전적 기능에서 시작되는 것은 물론 나름의 돈벌이가 되는 지역발전의 수단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김 군수가 각별한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 군수의 애정 어린 행보에도 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최우선이 안전이라는 생각아래 많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축제장의 일부 가설 주차장이 들어설 용지가 그동안 내린 폭우로 인해 젖어 있는 데다가 매립토마저 메마른 토질이 아니어서 현재 매립된 가설 주차장 일원의 부지 상태는 스펀지 같은 형국이다. 여기에다 자칫 많은 비가 내린다면 축제장의 주차장과 주 무대 일원은 말 그대로 진흙탕으로 변해 안전사고에 고스란히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축제 담당 부서 직원들도 이를 아는지 축제가 끝날 때까지 많은 비가 내리지 말기를 빌며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말 그대로 축제의 성공 여부를 하늘에 맡겨야 하는 모양새다. 혹여 제2의 새만금 잼버리 대회 사태가 벌어질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송림산림욕장 인근 용지는 폭우로 인해 아직 젖어 있는 상태인데다 이곳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이 물이 고여 있는 곳을 피해 뛰어다니며 맥문동꽃을 관람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맘때면 맥문동꽃을 보기 위해 평상시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시점에서 볼 때 젖은 용지에 발을 디뎠다 미끄러져 넘어져 자칫 대형 사고까지 불러올 수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주차장 역시 이런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갈을 이용해 주차장 겉 용지를 덮고 다졌다지만, 이 역시 많은 비가 내리면 결국, 무용지물로 변해 차량 바퀴가 빠지는 등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양쓰레기로 인한 축제장 경관 이미지 개선도 급선무다. 올해 잦은 폭우로 인해 금강에서 떠밀려 내려온 해양쓰레기는 대다수 수거해 한 곳에 모은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은 축제장의 경관을 매우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을 먹은 갈대, 억새 등과 함께 생활 쓰레기까지 뒤섞여 썩는 냄새가 진동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여기에 선택과 집중이 아닌 백화점식 축제로 변할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는 개성을 살려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발굴, 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하고 지역주민의 절대적인 참여가 관건이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과감히 선택했다고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인근 지자체와 비슷한 축제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전략으로 행사성을 줄이고 방문객들의 참여가 많은 축제로 방향을 잡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핵심 사항이다. 어쨌든 야심 차게 준비한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와 군민과의 약속이고, 우리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싸가지 없다”라는 막말 파문 논란에 “그런 일 없다”라고 하던 이강선 서천군의회 의원이 결국 이해당사자에게 사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은 지난 15일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오늘 오후 3시 춘장대해수욕장에서 만난 이강선 의원으로부터 ‘싸가지 없다’ 말한 부분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저 역시 이 의원에게 이번 사태로 인해 소란을 피워 미안하다고 화답했다”라고 전했다. 앞서 이 대장은 지난 14일 서천군청 앞에 집회 신고를 내고 이 의원의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 진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지난 16일 서면지역 청년들과 함께 김경제 서천군의회 의장 면담 요구하는 등 이 의원의 사과를 받기 위한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설 방침이었다. 이와 관련 이희 대장은 “이 의원의 사과로 인해 준비한 모든 집회와 의장 면담 등을 철회한다”라며 “이번 일로 인해 군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이 의원의 막말 파문이 일단락된 배경에는 서면지역 내 일부 주민들이 나선 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11일 이 의원을 만나 이 대장에게 사과할 것을 권유하는 등 이해 당사 간의 화해를 주선했으며 특히 서면 지역의 현안 해결방안 논의 등으로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부사호의 태양광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이 의원과 주민들 간의 소통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겠냐는 것이 일각의 해석이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의 막말 파문 사태는 이 대장이 정식적인 사과를 받음으로써 종지부를 찍게 됐다. 앞서 지난 5일 이희 대장은 이강선 의원이 지난 8일 춘장대해수욕장 특정 인명구조 안전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는 욕설로 보이는 막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반면 이 의원은 “그런 일 없다. 정당한 의정활동을 폄훼하다면 법적 조치하겠다” 등으로 이 대장의 주장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무분별하게 게시되는 정치인·정당 현수막에 대한 철퇴가 내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가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하면서 정치인이나 정당의 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정당 현수막들이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에 국회가 에둘러 법령개정에 나선다고는 했지만, 법령개정이 만사는 아니고, 정치인들이나 정당의 특권의식이 더욱더 문제다. 법령에서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홍보목적 현수막으로 제한하고 있고, 표시기간도 15일로 정해져 있지만,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정책보다는 낯 뜨거운 비방 문구로 현수막을 도배하고, 규정된 표시기간을 준수하지도 않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년 총선에 출마가 예정된 특정 정치인이 정당 현수막임을 빙자하여 도배하다시피 현수막을 내붙여 놓고, 표시기간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치인들의 특권의식 발로이다. 최근에는 모 정당 출신 정치인이 커피숍을 개점하면서 인도 한가운데 광고물을 설치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인도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예민하게 대응했던 같은 당 소속 정치인은 ‘나 몰라라’하며 방치하고 있는 가운데, 힘 있는 정치인의 특권이 아니냐는 군민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군청 신청사의 지하 주차장은 군의회 주차장이라고 표시해 놓고, 정작 서천군의 주인인 군민은 주차장 사용이 꺼림직하게 해놓고 있다.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정치인들의 특권의식 발로이다. 공공청사의 가장 편리한 주차 공간은 민원인 주차장이어야 한다. 그것이 주인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군사정부의 못된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을 스스로 답습하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을 향해 90도로 폴더인사를 하며 주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부르짖던 사람들이 막상 당선만 되고 나면 완장의 힘을 발휘하려 한다. 남이 하면 안 되고 내가 하면 어쩌랴? 하는 식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을 서슴없이 자행하며 온갖 불법을 특권 안에 포장하려 하는 태도가 대한민국 정치를 2류로 만들어 가고 있다. 정치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가 과연 민주주의인지 묻고 싶다. 인도 한가운데 불법 광고물을 설치하는 배짱은 어디서 온 것인지 묻고 싶다.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표시기간은 현수막에만 표기하면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발상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천군청 신청사의 지하 주차장은 의전용 필수차량을 제외하고 모두 민원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평등한 가운데 정치인들만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찌는듯한 삼복더위에 시원한 신청사 지하 주차장에 의회 주차라며 텅 비어 있는 주차장을 보는 군민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대한민국 어느 관공서에 아직도 군사독재정권의 잔해가 남아 있는 곳이 있는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의회 전용 주차장인지 돌이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질해도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졌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모두 자중해야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정치인들의 특권의식을 매려 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정치는 영원히 2류를 벗어나기 힘들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이 안심하고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에 따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군에 따르면 춘장대해수욕장은 지난달 8일부터 지난 13일까지 37일간 운영에 들어가 개장 기간에 안전관리통합지원센터를 가동, 바가지요금 단속 등 물가안정을 위한 대책과 피서객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장 기간 누적 방문객 수는 약 20만 명으로 일일 평균 5,000여 명이 방문해 피서를 즐겼으며 다행히 이 기간에 주요 강력범죄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8일부터 지난 2일까지 112신고는 총 48건으로 일일 평균 1.6건이 발생했으며 사망사고 및 폭력 등 강력범죄 발생은 없었다. 하지만, 화장실 불법 촬영 등 여성 범죄 발생에는 여전히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경찰서 생활안전계와 여성청소년계는 지난 3일 춘장대해수욕장 내 남·여 공중화장실 18개소, 공중샤워장 1개소에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및 비상벨 작동 여부를 점검했다. 그 결과, 남·여 화장실 18개소에 불법 촬영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성 화장실 1개소에는 비상벨이 고장 난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여성 화장실 대변기 양옆 칸막이의 빈 곳을 차단해 불법 촬영 방지하는 시설물인 안심 가림막(스크린)은 여성 화장실 7개소에 설치되지 않아 여성 범죄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서천군청 관련 부서에 이날 점검 결과를 통보하고 여성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서천군은 올해 여성 화장실 비상벨 고장 수리, 안심 가림막 설치 등의 사업비 집행은 예산 부족으로 어렵다며 내년도 사업비 확보로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사계절 동안 방문하는 이용객들의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화장실이 범죄 피해에 노출된 채 운영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다. 춘장대해수욕장 운영협의회 한 관계자는 “여름 피서철 이외에도 춘장대에 힐링을 위한 방문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예산이 없어 내년에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닌 여성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내년까지 미루는 것이 과연 옳은 행정 처리인지 되묻고 싶다”라고 꼬집으면서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도 없이 어찌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 개발을 이루겠냐”라고 지적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천여객지회가 서천여객이 계약직 노조 인원을 늘려 정규직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는 등 정규직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임채순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장은 지난 15일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서천여객이 계약직 기사를 지속해서 채용하고 노조를 결성해 인원수를 늘리는 등으로 정규직 노조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서천여객 사무실 직원은 전문직이라는 핑계로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정규직 기사들의 각종 수당을 폐지하는 등 부당한 처우로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계약직 노조 위원장은 영업소장으로 발령을 내는 인사로 정규직 노조 기사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지속해서 정규직 노조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 측은 지난 8일부터 서천버스정류장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을 탈퇴한 정년 퇴직자에게 계약직 채용을 보장해주는 반면 탈퇴하지 않은 퇴직자는 계약직 채용을 거부하는 등 차별을 일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서천여객이 서천군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익사업체에서 3개월, 6개월 등의 단기 계약서로 갑질하고 있다며 서천군은 보조금 지급 시 운전기사에 대해 관·항·목을 변경해 사용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서천여객 측은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의 주장과 달리 상반된 입장이다. 서천여객 측은 “민주노총 지회를 와해시킨다는 주장은 노동법에 위법한 사항이 아닌 합법적 사항이며 수당 및 임금 지급에 대한 건은 민주노총 지회 이외의 다른 노조와 합의된 사항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도·군비 보조금 집행에 따른 감사는 충남도에서 외부 회계전문가를 통해 매년 시행되고 있어 범법 행위가 발견됐다면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며 “보조금 관련한 민주노총 지회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계약직 고용도 회사 경영에 따른 운영 방침에 따라 시행하고 있는 점으로 오히려 민주노총 지회가 월권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만약 범법행위가 있다면 마땅히 그에 따르는 법의 심판을 받겠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한실)에 400여 년 전에 대곡서당을 설치, 지역인재를 육성하였고 구한말 민종식이 홍주의병 창의로 봉기하였을 때 구암 구병대 선생께서 의병에 참여하고 군수품 조달에 앞장서며, 대곡서당을 제공하여 의병의 숙영지로서 역할을 제공하였던 대곡서당에 대하여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 마을회관에서 대곡(大谷-한실)마을 뒷산 450m 지점 원통산(遠通山) 중턱에 옛 대곡서당 자리에 1954년에 복원된 운포서당(雲圃書堂)이 자리하고 있다. 은곡리(한실)은 평해구씨 구맹전(丘孟傳)이 1506년 중종사화를 피해 서천으로 낙향 세거하면서 살았던 서천 평해구씨의 입향조의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당시 어지러운 시기에 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정착하여 세거하여 하면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이곳에 400여 년 전부터 설치 운영되었던 대곡서당(大谷書堂)이 각종 역사 자료에 기록이 없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곡서당의 설치와 운영과정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창건역사(創建歷史) 가. 창건자(創建者) : 양촌(陽村) 구희로(丘希魯1514~1574) 대곡서당(大谷書堂)의 최초 창건은 평해구씨(平海丘氏) 안장공 구종직(丘從直1404〜1477) 후손 양촌(陽村) 구희로(丘希魯1514〜1574) 선생의 강학장소로 사용하였다. 구희로 선생이 졸한 지 300여 년이 지난 1939년도 양주조씨(楊州趙氏) 송암(松庵) 조익순(趙翊淳)이 찬(撰)한 구희로 선생의 묘지명에 대곡서당에 인근 사방에서 배움을 청하는 자가 참으로 많았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선생의 서재뿐만 아니라 후학들에게도 학문을 강학하였던 서당으로 것으로 여겨진다. 57세의 나이로 졸한 후에는 강학서당으로써의 기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 중수자(重修者) : 운포(雲圃) 구경천(丘擎天1783~1854) 구경천은 약관의 나이(20세) 1803년 낙향 당시의 혼탁한 세상을 개탄하고 세상을 등지고 고향 집에서 두문불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왕래하는 것을 하지 않고, 병풍을 두르고 학문에 전념하며 뜻을 두고 구경천은 을해년(乙亥年 1815년) 봄에 대곡서당을 건축하고 후학을 가르쳐 온 지 50년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1875년 장태현(張台鉉)의 대곡서당기(大谷書堂記)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후 학자 장태현의 대곡서당기의 기록을 보면 본인도 본 대곡서당을 왕래하면서 운포(雲圃) 구경천 선생으로부터 수년간의 학업을 받아 다소 학문을 익힐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대곡서당이 운영된 지도 50년이 지난 을해년(1875년)에 훼손되어 대곡서당을 운영할 수 없어서 운포 구경천 선생의 뜻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당초의 서당 규모보다 더 확장하여 다시 세웠다고 기술하였다. 그 후 운포(雲圃) 선생께서 서당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호(號)를 따서 운포서당(雲圃書堂)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 구한말 대곡서당은 민종식 홍주의병 숙영지로 제공 의병장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1860〜1924)이 1917년 찬(撰)한 구암(龜巖) 구병대(丘秉大 1858~1916) 선생 묘지명의 기록과 조선환여승람(朝鮮寰與勝覽)에 조부(祖父)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구석붕(丘錫朋)이고, 구병대는 진사에 합격하였다. 1906년 민종식이 창의한 제2차 홍주의병 군사(軍師)책임을 맡았던 위관(韋觀) 김상덕(金商悳 1852~1924)의 찬장(撰狀)에서 말하길, 구병대의 행실을 보면 근면하고 부모에 대한 효(孝)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에게도 자애로우며 의로운 일을 위하여 일어나는 용기가 있는 자이며, 또한 후학을 강학(講學)하는 교사(敎師)로 활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병대(丘秉大) 선생은 일찍이 순국지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선생이 우리 고장 풍옥헌 조수륜 선생이 사시던 구택(舊宅)에서 뵙고 가르침을 청하여 송병선의 문하생이 되었고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찬(撰)한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묘비명에 1906년 4월 19일 민종식(閔宗植) 의병대장이 봉기한 홍주의병 창의 때 민종식이 이끄는 의병에 들어가 군수품을 모집하는 일을 앞장섰다. 100명의 의병이 홍산현을 함락한 후 문산면 구변동(九邊洞)에서 숙영할 때 대곡서당(大谷書堂)의 강학교사로 있었기에 대곡서당을 숙영지로 제공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것들은 구병대가 민종식의 의병에 가담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가능하다. 대곡서당에서 야숙하면서 스승인 구병대를 따르는 백성을 규합하였을 것이다. 홍주의병실록을 보면 구변동에서 300여 명, 그리고 문장리(文章里)에서 1박 하면서 300명을 더하여 다음날 1,000여 명의 의병이 서천읍성을 함락하고 서천군수 이종석(李種奭)을 감금하고 인장과 관청의 돈, 모슬포총, 탄환 등 무기를 탈취하고 여세를 몰아 비인, 판교, 남포를 거처 홍주성을 함락한 사실을 홍주의병록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대곡서당(大谷書堂)은 민종식이 이끄는 제2차 홍주의병의 숙영지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학교사(講學敎師)를 비롯하여 주변의 백성들이 의병에 가담하는 용기를 일으키게 할 수 있도록 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대곡서당이 아닐 수 없다. 구암 구병대 묘지는 시초면 신곡리에 있고 묘지명은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짓고, 윤용구(尹用求) 썼다. 3. 일제 강점기 대곡서당(大谷書堂) 1910년 일제가 강제 병합하고 강점기 이후에는 대곡서당(大谷書堂)에서 지역선각자들이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청년들에 대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문산면 은곡리 평해구씨 종중에서 간직하고 있던 대곡서당(大谷書堂)에서 소화 17년(1942) 9월 26일 문산면 대곡부락(大谷部落) 국어강습회(國語講習會)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강습대상자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 청년들이 함께 기념 촬영하였다. 강습 대상 조직은 영흥회(永興會) 조직 단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영흥회(永興會)는 동아일보 1927년 10월 4일 자 기사에, 신간영흥지회설치대회(新幹永興設置大會)를 개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1927년 11월 1일에 설치한 신간회 소속으로 신간영흥회(新幹永興會)가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운영하였던 계몽단체일 것이라 생각된다.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15일에 서울YMCA 회관에서 창립한 단체로 초대 회장에 조선일보 사장 우리 고장 한산 출신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선출되었다. 신간회는 1931년 5월 15일 전국대회를 끝으로 해산되었다. 대곡부락에 영흥회(永興會) 단체가 조직된 것은 아마 월남 이상재 선생이 신간 회장으로 연관성도 있지 아니할까 여겨진다. 4. 현재의 건물 운포당(雲圃堂) 현재의 건축물(운포당)은 1875년에 확장하여 중수한 대곡서당이 70년이 지난 1954년 2월 7일에 재건축하여(현 건물 상량문 甲午년 2월 7일) 현손(玄孫) 구병도(丘秉度1883〜1958) 선생께서 정해년(丁亥年 1947) 11월에 대곡서당기(大谷書堂記) 현판의 글씨를 썼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향후 문화유산 보존관리 현재의 건물은 당시 대곡서당의 위치에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운영 내지는 관리가 되지 않고 무성한 잡초만 자라고 있어 옛 선각자들이 뜻을 두고 설치하여 인재를 길러냈고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났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대곡서당의 문화유적이 방치되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늦게나마 다시 역사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이강선 서천군의회 의원(사진)이 춘장대해수욕장 특정 인명구조 안전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는 욕설로 보이는 막말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특히 이로 인해 상처받은 인명구조 안전요원들이 집단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의 거센 항의와 함께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막말 파문이 쉽게 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 상반기 공무원·시민단체·동료 의원에게 갑질했다는 의혹 제기에 ‘그런 일 없다’라고 일관한 이 의원이 또다시 막말 파문을 일으키는 등 도가 지나친 직관적 의정활동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막말을 했다’라는 주장과 달리 ‘그런 일 없다’라는 상반된 입장이 나오면서 이번 사태가 쉽게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희 의용소방대장과 복수의 제보자는 이 의원이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의 바나나보트 사업장과 해상안전요원 근무지를 대상으로 근무상태 등을 확인한다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이 의원이 바나나보트 운영자를 향해 “바나나 보트 영업허가권이 있느냐. 불법 영업을 하는 것 아니냐”라며 따져 묻는 등 운영자 및 안전요원들과 적잖은 언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이 특정 안전관리 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며 욕설로 보이는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인명구조 안전요원들을 향해서는 “망루에 서 있지 않고 왜 앉아서 다리를 펴고 있냐”라며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에 춘장대해수욕장 종합안내소에서 이 의원을 만난 이희 대장은 이 의원을 향해 특정 안전관리 요원에게 ‘싸가지 없다’라 한 사실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이 의원에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특정 안전관리 요원을 향해 “안전요원 티셔츠를 벗어라. 이런 소리까지 들으며 안전요원을 할 이유가 있는냐”라며 사직을 주문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인명구조 안전요원 20여 명도 “이런 대접을 받고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며 “군의회가 안전요원을 다시 뽑아 운영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라며 집단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춘장대해수욕장 운영관계자들이 안전요원들을 상대로 이해를 구하고 간곡히 설득하는 등으로 간신히 집단 사직 사태는 진정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이 의원의 무조건적 사과가 남아 있어 막말 파문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와 관련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은 “폭염에 고생하는 안전요원들에게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욕설로 보이는 막말로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 의원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이 군민의 대변자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군의원이라는 직책을 이용, 본인의 직관적인 판단으로 의정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객관적이지 못한 마치 본인이 윗사람인 양 아랫사람을 부리듯이 고압적인 자세로 군민을 대하고 있다”라고 격분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도 하지 않고 불법을 운운하는가 하면 인명구조 근무자에게 욕설로 치부되는 막말을 하는 등의 갑질 행위는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사과해야 할 것이다”라며 집단 사직의 여지를 남겼다. 반면 이강선 의원은 이희 의용소방대장이 주장하는 사실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서면질의를 통해 “지난 5~6일 해안 쓰레기 관련해 현장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군 해당 부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정당한 의정활동을 한 것뿐이다”라며 “바나나보트 사업장 근무자와 안전요원을 상대로 일절 언쟁은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문제가 있는 해안을 상대로 지속해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는 가운데 누구냐는 질문에 ‘이강선 의원’의 신분을 밝혔고 특정 안전요원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한 그런 일은 없었다”라며 “다만 ‘예의가 없다’라고 한 적은 있고 다른 안전요원에게 업무적으로 지시나 지적을 한 것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희 씨가 SNS(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대부분 허위사실이고 이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게시해 정당한 의정활동을 폄훼한다면 법적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