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2월 대선에서 이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 공(功)을 당내 국회의원과 당원들에게 돌렸다.
낡은 정치 청산을 구호로 정치개혁을 공약한 그는 구체적으로 ‘3김 정치청산’을 제시했던 터다.
이회창 대세론을 꺾고 당선 사실을 확인한 그가 달려간 곳은 한나라당에서 당을 옮겨 같은 당 비주류인 김원웅 의원( 3선·대전 대덕구)이었다.
대부분 언론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거라는 예측과 전망에도 이회창의 한나라당을 떠나 지지율이 반토막인 노무현을 택한 그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필자 등 몇몇 기자와 만나 차를 나눴을 때 “정치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는 정치 신인, 비주류들의 개혁 의지에 달렸다”라고 했다.
정치제도와 문화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 스스로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 묻지 않은 정치 신인들에게 올바른 정치문화와 의식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정치 선배들이 공천을 미끼로 정치신인들에게 거수기 노릇을 시키지 말라’거나, ‘초선의원들이 3김 시대처럼 때 묻은 선배들을 따라 하면 훗날 오욕의 역사에 남길 것’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가 이처럼 강했다.
그중에도 정치신인들, 초선의원들의 거수기 노릇이나 방패막이를 엄중하게 경계했다.
2004년 4월 탄핵정국에서 여대야소의 정국 구도가 이뤄졌을 때는 비슷한 얘기를 했다.
같은 당 당선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가질 때도 “설사 같은 여당 국회의원이라도, 대통령의 주장이나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는데도 무조건 옹호하지 말라”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싹수가 있는 정치가가 되려면, 초선 국회의원들이 거수기 노릇하지 말고, 야당(한나라당)과 정쟁 중에 싸움닭 노릇을 하지 말라. 옮고 그름은 상임위에서 대화하고 설득하라”라고 주문했다.
그 후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싹수 있는 정당의 미래를 초선의원의 ‘올곧음’으로 판단했다.
20년이 지난 오늘, 집권 여당의 원로이자, 보수진영의 쓴소리로 통하는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같은 당 초선의원들을 크게 나무랐다.
야단을 친 정도가 아니라 정치판에서, 총선 판에서 거세로 통하는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을 공천하지 말라고 매우 강하게 요구했다.
김태흠을 대신해 보궐선거로 입성해 이제 고작 6개월짜리 장동혁 의원(충남 서천·보령) 등이 참여한 전국의 50명 초선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지난 23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초선의원 50명이 17일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라는 성명 발표에 강하게 비판했다.
이 상임고문은 이들의 비판 성명서에 대해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을 흔들고, 대통령과 참모들을 갈라치기도 하고, 당내 갈등을 부추겨 이를 전당대회 출마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라며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 연명 성명서에 대해 “부끄럽다”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총선이 내년에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초선의원들이 우리 당 자산인 나경원 의원에게 줄지어 연서, 성명서를 낸다? 이는 정당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고문은 “아무리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그런 사람들은 잘 보여지지도 않는다. 일회용일 뿐”이라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비난했다.
이 고문은 “차라리 우리 당이 통합하자,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 당이 하나가 되자고 건강한 이야기를 해야지 특정인을 공격하고 린치를 가한다? 깡패들도 아니고 그게 뭐냐”라고 했다.
그는 “참 철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천해 주면 안 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상임고문 지적은 옳다. 이들 중에는 상당수는 국회의원의 자질이 부족하고, 실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게 국민의 생각이다.
이를 주도하는 일부 인사는 실력으로는 안 되니까, 특정 당권주자 편이나 친 윤석열계에 줄을 서서 거수기 노릇이라도 하여 공천받자는 심사가 있어 보인다.
충청권에서만도 10%대에서 40%대로 역대 정부 지지율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집권 여당의 현주소다.
여권 내에서는 내년 4월 10일 치르는 제22대 총선에서, 지금의 ‘이재명 리스크’, ‘쌍방울 리스크’를 기대하지만,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뒤집힐지는 미지수다.
왜냐면, 국민의힘이 이번처럼 전당대회에서 공정·중립이 깨지고, 사전에 친 윤계, 윤 핵관 등이 특정인에게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주려 든다면 역풍이 불게 뻔하다.
친 윤 인사에게 유리하도록 기존의 당헌 당규마저 고치고, 심판도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나대니, 국민의힘은 1960년대 이승만 시대와 1980년 전두환 시대를 잊었나.
지난 2017년 ‘친박-비박’ 싸움에 박근혜 현직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영어가 되는 수모를 겪을 때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우리가 잘못했다’라고 무릎 꿇은 것은 ‘쇼’였는지를 묻고 싶다.
정말 윤석열 정부를 위하는 것이었다면,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정의인지’를 먼저 따져 성명을 냈어야 했다.
이재오 상임고문의 이날 지적은 이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포용하고, 감싸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을 배워야 할 집권 여당 초선의원 50명, 모든 걸 다 가졌으니 평생 내 것이라는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그러니 자신에게 유·불리한지를 따져, 편을 갈라 사익을 취하는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의 초선의원들이 부끄럽다.
노골적인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나라 꼴은 어찌 되던 줄서기를 잘해서 고액 세비를 받는 금배지만 보이는 게 뻔하다.
정말 한방이면 ‘훅 가는 정치문화’ 그들은 뭐라 변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