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최고 의원으로 꼽히는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분이 1787년 영국 하원에 당선됐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복음주의자이기도 한 윌버포스는 하원의원에 출마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영국의 노예해방에 대한 사면 받았다’라고 유세했다. 그리고 당선된 뒤 영국 내 노예해방만을 위해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영국의 노예 무역산업은 국가 수입원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영국 식민지 산업의 기둥이자 근간이었다.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노예해방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노예제도 폐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왕족과 귀족, 재벌 등 기득권층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압박당하고 모욕당하고,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강제로 붙잡아온 사람들을 살기 띤 폭행과 탄압 등 인권을 짓밟힌 이른바 노예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노예를 둘러싼 왕족·귀족들의 뒷거래와 뇌물, 성적 유린이 횡행한 것을 윌버포스는 넘어가지 않았다.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뜻이 노예해방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었다. 왕족, 귀족, 재벌 등이 총합세해 공격해도 영국의 노예는 해방되어야 한다며 뜻이 있는 곳에
악기의 황제라는 피아노가 탄생한 것은 바로코시대다. 풀 네임은 ‘피아노포르테(약자 Pf)’이다. 이탈리아어로 피아노는 합성어다. ‘약하게(piano)’, 포르테는 ‘강하게’의 의미(forte)이다. 건반을 누르는 힘을 조절해서 이 2가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이름에서 위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악기 관리인 겸 악기 제작자였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의 원형을 발명했다. 크리스포토리가 1698~1700년경 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피아노의 건반은 54개였다. 이후 1780년대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접하고는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작곡에 사용하게 된다. 연주자가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려 건반 밑바닥에 댐으로써 오늘날의 페달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100년 후가 지나서 스타인 웨이에 의해 54개의 건반이 88개로 늘었다. 그래서 지금의 피아노 건반은 88개다. 흰 건반(백건) 52개와 흰 건반의 사이음을 내는 검은 건반(흑건) 36개로 구성됐다. 피아노의 초창기에는 검은 건반은 흑단(ebony)으로 만들었고 흰 건반은 상아를 쪼개 덧대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Ebo
사사건건 부딪치며, 생사를 걸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 대화와 타협은 고사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죽기살기식 민생을 분탕질 치는 작자들이다. 가족 간식비까지 1년에 수억 원씩 세비를 받아 챙기는 국회의원들이다. 목에 힘이 가득 들어가, 거드름을 피우는 꼴이라는 부끄럽고 불쌍하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붙들고 앉아서, 말로만 민생이란 이름을 거들먹대는 저 오만과 교만이 똘똘 뭉친 그들이 국민의 혈세로 공짜거나 특혜로 군림한다. 다행히 이들을 싹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넉 달 앞으로 다가와, 오만과 교만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문제는 4년 전 기울어진 운동장의 분위기 속에 이들에게 표를 던진 우리가 지금 이 꼴을 보고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시도 교육청 등이 한시가 급한 내년 예산안 처리도 법정시한을 넘긴 채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국회, 특히 여야는 ‘이동관 탄핵’을 놓고 날을 세우더니 이제는 민생예산은 뒷전인 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본회의에서 쌍 특검(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 처리를 공언한 상태다. ‘탄핵 정국’에 이은 ‘쌍 특검 정국’을 예
미국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잃기 전에는 가지고 있던 게 뭔지 모른다.’ 즉, 우리의 옛말 중에도 구관이 명관(名官)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정치지도자 클레망소도 이를 이처럼 말했다. ‘나쁜 정치인 X을 바꾸려고, 새로 뽑았더니 그보다 더 나쁜 정치인 X이 뽑히더라’ 지난 20대 국회에 진저리가 나, 이를 바꾸자며 치른 게 지난 2020년 4.15 제21대 총선이다. 무려 55% 이상의 초선, 새 얼굴로 바뀌어 정치 문화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처럼 초선의 구태정치 청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21대 국회 개회부터 초선의원들이 싸움닭이 되어 분탕질과 온갖 편 가르기에 떼쓰기, 보이콧으로 얼룩지게 했다. 터지는 사건마다 들춰보면 국회의원이 개입되지 않은 곳이 없고, 이권과 유착된 금배지들이 수두룩하게 연루되어있다.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 코인 투자를 하지 않나, 자신의 사무실 여성 보좌관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나, 지방 선거때 공천헌금을 받지 않나, 특정사안에 후원을 가장해 금품을 받고 검찰 수사를 받지 않나, 거짓 루머를 제보로 포장해 해당 장관에게 의혹을 제기하지 않나. 이는 이전 20대 국회보다도 더 저질이다. 심지어 지난해 5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25일 같은 당 김상희 의원의 라임펀드 환매 중단 전 특혜성 환급수수 의혹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금감원이 1조 5,000억 원대 펀드 환매 사태를 부른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 3개 사 재검사 결과와 김 의원의 연루설에 선을 긋기 위해서다. 그는 브리핑에서 “야당 중진 의원에 대한 악의적 흠집 내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이 투자한 라임마티니 4호 펀드는 자유로운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로, 환매 중단 펀드와는 관계가 없다”라고 했다. 그는 “특수부 출신 검사가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장으로 파견됐다더니, 겨우 한다는 게 야당에 대한 공작질인가”라고 맹비난했다. 금감원의 발표 결과 대로라면 매우 충격적이다. 내용을 보면 국회의원 상장사 등 특정 수익자를 위한 특혜성 환매, 수천억원대 횡령과 배임, 임직원의 사적이익 취득 등이다. 이는 금융. 자본시장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라임사태와 관련한 특혜성 환매와 대규모 횡령, 그리고 정·관계 로비 정황이다. 라임펀드가 투자한 5개 사에서 발생한 2,000억 원대 횡령은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니 개탄스럽다
국민의힘 소속 일부 시도 지사들의 잇따른 수해 관련 언행에 ‘오만함의 극치’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충청권·영남권에 많게는 1주일 넘는 이번 집중 폭우 때, 일부 지사의 언행은 여러 날이 지났으나 비판받기에 충분해서다. 사과도 했고, 유감도 표명했지만, 수재민과 국민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집중 폭우 수재민 위로차, 현장을 찾은 국민의힘 김모 국회의원이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라고 했다가 중징계받았다. 올봄 잇단 대형산불 때도, 일부 지사들의 골프 연습이나 골프 회식설로 구설수에 이어 이번 역시 공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구실을 둘러대고 사과하고 변명하지만,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물난리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과 생계를 하루아침에 씻겨버린 수재민의 망연자실한 눈물과 한숨을 생각해 보라. 그 수재민이 내 형제요, 이웃인데 내 가족이 아니라고 그런 언행을 할 수 있나. 김영환 충북지사 발언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일 충북 도청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에게 사과는 했으나, “거기(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내가)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김영환이 우리 유족을
정치 이해관계를 떠나 이회창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때 얘기를 해야겠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1987년 6.29 선언으로 3김( 김대중·김영삼·김종필)씨가 풀려나 그해 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결과는 여당 후보인 노태우 씨가 당선됐고, 이듬해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그해 4월 제13대 총선을 치렀다.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법관 중 한 명이 겸임했다. 선관위원장에 재임용된 이회창 대법관이 맡게 됐다. 알다시피 이회창 대법관은 전두환 정권에서 큰 미움을 산 대표적인 법조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그가 주심을 맡은 16건의 전체 합의 판결 중 10건에 소수의견을 내는 등 서슬이 퍼런 독재정권에서 보란 듯이 약자의 편에서 소신 있는 판결을 했다. 이를 계기로 대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신망받았으나, 전두환 정부의 눈 밖에 나면서 1986년 대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런 그가 1988년 대법관에 임용됐고, 겸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선관위원장을 맡자마자 선관위원회의 역할 폭을 기존 개표관리 중심에서 선거운동 감시로까지 넓혔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명언과 함께 6.29 민주화된 지 얼
네 분의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로 그분들의 공사를 가까이서 봐왔고, 기사로 옮겼던 터라, 알려지지 않은 일이 적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10억 달러 수출을 기적으로 여겼다. 당시 야당은 바닥까지 다 긁어다 판다며 박 전 대통령의 10억 달러 수출을 맹비난했다. 그럴 즈음, 중동에서 손짓했다. 사우디, 리비아 등에서 한국 건설회사를 불렀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건설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국내 건설사의 중동진출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사흘 뒤 두 장관은 차례로 독대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중동진출 불가함’을 설명했다. 이유는 중동은 열사의 나라로 모래뿐이고, 모레 위에 튼튼한 건물을 짓기가 어려운데다 한낮 온도가 섭씨 60도까지 올라가 낮 노동이 쉽지 않다고 보고했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은 ‘경제를 키워 국민을 배불리 먹이자’라고 약속했던 정주영 전 현대건설 회장을 불러 이를 물었다. 정 전 회장은 다른 의견을 냈다. “각하, 이런 좋은 찬스가 어딨습니까. 사방이 모레라서 모레 걱정은 안 해도 되고, 한국 인부들이 막걸리를 달라고 할 테지만 이슬람국가라서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좋고요. 밤에는 선선해서 좋으니
지난 2009년 10월 말 미군 도버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가 비행기에서 내렸다. 새벽 4시, 날이 쌀쌀했지만, 유해를 싣고 온 비행기가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자, 모두 숙연했다. 모인 미국 시민들 중앙에는 미군 통수권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부인과 국무위원, 상·하원 의장, 의원 등과 함께 거수경례로 영접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 미국을 지켜 주신다. 위대한 미국인의 품으로 돌아온 이 자랑스런 고인은 미국의 영웅”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강하고 부강된 나라로 만든 분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이 나라를 지켜 주신 고인의 희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빌클린 턴 대통령도 미군 전사자의 유해를 맞는 공항에 나가 ‘미국 영웅’이라며 넋을 달랬다. 몇몇 매체 외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재임 시 마찬가지였다. 몇 해 전 항일 애국지사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최강 전투기의 호위를 받고 국내로 모셔 올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인천 공항에서 직접 영접했다. 당연히 국무총리와 국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