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조용히 오가는 골짜기에
딱따구리 부지런히 죽은 나무를 오가며
입춘대길을 새겨 넣는 아침
저수지 가에 겅쩡거리는 왜가리와 고고한 백로도
반가 사유상의 자세로
버들가지에 눈이 부풀어지는 때 맞추어
경전을 독송하고
기다림은 모든 것을 마모시키듯
응시하는 수면 위에
무뎌진 칼날을 쓰윽 쓰윽 갈아 날을 세운다
본능에 목말라하던 자존심도 버리고
자신을 세우는 신성함에 목을 매어야
무더지지 않는 세월을 만난다
늙은 스님은 매어 있는 닻을 끊어
망망대해로 떠가는 허름한 목선에 올라
심연에 가라앉아서도 가부좌 틀고
주인 잃는 빈 목선은
아제 아재 바라어제 바라승아제 주문을 외운다
모두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