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왝 더 독'(Wag the dog)이란 말이 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란 뜻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다. 주로 주식시장에서는 흔히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좌우할 때 '왝 더 독'이란 말을 쓴다.
이를 소재로 나온 영화가 있다. 제목도 ‘왝 더 독(배리 배빈슨감독)’이다. 미국 대통령선거과정에서의 공작정치, 꼼수정치를 다른 작품이다.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한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다. 백악관에 견학온 걸 스카우트 학생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백악관은 재선가도에 위기감을 느끼자, 정치 해결사 브린(로버트 드 니로)을 불러들인다. 그는 해결방안을 내놓는다. 백악관은 브린의 제안대로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포장한다.
그러면서 반(反) 알바니아 감정을 부추긴다. 꼼수를 알아채지 못한 언론들은 B-3 폭격기의 전진배치와 미군의 이동을 연일 보도한다,
그럴수록 전쟁발발 가능성은 높아간다. 브린의 꼼수는 한 수 더 뜬다. 급박하고 생생한 상황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헐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 모스(더스틴 호프만)에게 도움을 청한다.
모스는 할리우드의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총동원, 긴박한 현장을 재현한다. 이 가상 시나리오는 TV를 통해 방송된다. 언론보도는 백악관의 예상처럼 대통령의 성희롱 사건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상대 후보 진영에서 이를 알고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이 재이슈화 된다. 브린은 두 번째 가상 시나리오를 만든다. 전쟁 후 알바니아에 억류됐던 가상의 군인 슈만을 전쟁 영웅으로 만든다.
브린은 슈만에게 '헌 신발'이란 별명의 붙여주고 슈만과 관련된 각종 보도성 행사를 마련하여 국민들의 동정 여론을 들끓게 하는데 성공한다.
이 바람에 야당의 공세도 무력화됐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상승한다. 슈만을 구출하라는 국민들의 여론이 확산되고 브린은 슈만의 미국송환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환 도중, 사고로 슈만이 죽자 브린은 그의 사고를 국가적 영웅의 죽음으로 위장한다. 이 덕에 몹쓸 현직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된다.
월요일 아침, 갑자기 ‘왝 더 독’이 떠 오른 것은 정치권의 행태가 어이가 없어서다. 그것도 DJ의 ‘행동하는 양심’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계승했다는 여권의 실망 때문이다.
177석의 거대여당을 만들어 국회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가진 그들은 정말 정의로운 정파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올 곧고 반듯한 정당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서 인지 모른다.
왜냐면, 지난해부터 일어난 의혹덩어리에 대해 ‘뭐 잘못한 게 있느냐’식이니 말이다. 손으로 대충 짚어 봐도 별의별 의혹이 다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조국일가 비리 사건을 비롯하여 우리들병원 1400억 대출 사건, 주가 조작사건,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 5000억 차익 의혹 사건, 최강욱 전비서관의 조국자녀 인턴 허위증명서 발급 의혹 등이 있다.
물론, 의혹이지 사실여부는 아직 모른다 치자.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에 불리한 이 의혹덩어리는 유야무야로 덮어지는 느낌이다. 청와대는 침묵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니 지켜보자는게 전부다.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온갖 의혹덩어리도 그렇다.
이용수 할머니가 두 번이나 공식 기자회견을 했는 데도 ‘윤미향의 해명으로 모든 것이 다 해소됐다’는 이해찬식 해석도 ‘아니 뭔가 있다’는 의심만 가게 한다.
의혹의 보따리를 풀지 않은 채 갑자기 이런 저런 얘기로 우리의 관심을 흩어놓고 있다. 여순항쟁을 비롯하여 한명숙 전 총리의 사건을 규명하자고 나오지를 않나, 항일독립운동후 북한 공산당창당에 크게 기여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추대하자고 하질 않나, 금태섭 전의원의 징계를 화두에 올리지 않느냔 말이다.
이해찬 민주당 지도부는 정의와 양심, 평화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DJ와 노무현 정신을 이어갈 사람들이다. 두 분의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을 제대로 배웠다면 그러질 못한다.
얼마나 그리워한 그 짤막한 ‘행동하는 양심’이던가. 그런 그들이 두 전직 대통령의 뜻과 가치와 정의와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이전에 대선에서 이회창의 두 아들의 병역비리가 있다는 김 아무개의 거짓 기자회견과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의 G건설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는 것이 훗날 김 아무개 등의 양심고백으로 탄로 났다.
그래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물 쩍 넘어가는 것도 민주당답지 못했다. 숱한 세월이 흘렀기에, 모든 과거사이기에, 상처를 헤집는 일은 금기시 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 역시 DJ나 노전 대통령 본인 등을 당당한 경쟁이 아니라며 이 같은 마타도를 거부했다. DJ가 지도자임을 보여주는 것은 용금호사건등 죽을 고비와 시련을 다 덮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서도 볼수 있다.
이런 판에 금태섭 전의원이 당론과 배치되는 의사표시를 했다해서 당의 징계를 내렸다는 것에 더더욱 유감이다.
지난해 공수처법 처리 표결 과정에서 금 전의원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기권했다. 이를 놓고 공천에서 배제했다가 민심저항이 심하니까 마지못해 경선에 붙였던 일까지 보면 ‘왝더독’이 더 실감난다.
국회법을 한번만 읽었어도 이런 일은 없다. 지난 2002년 도입된 국회법 114조의 2항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돼 있다. 군사 독재 정권시절 관행처럼 돼있는 ‘각하의 한 말씀’에 우향우, 좌향좌에 따르던 구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의원의 자유투표 행위를 징계 사유로 삼는 발상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자유투표 조항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의 거수기 정도로 취급받던 비민주적 관행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정치를 원해서다.
이는 민주당만 이런 것은 아니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이 여당일 때도 당론에 배치된 의원에게 내린 징계도 수두룩했다. 공천배제나 불이익은 허다했다. 미래통합당의 처참한 오늘의 모습, 이는 자업자득이다.
결과는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정당이 될 수 없거니아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177석이나 되는 거대 여당은 국회를 압도했다고 어깨에 힘줄일이 아니다. 그들을 시대의 무한 책임을 쥔 집권당이라면 성숙한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또 초, 재선의원을 걸출한 정치인으로 키우려면, 무엇보다 ‘행동하는 양심’을 계승하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당대표의 한 말씀에 숨죽이고 따르는 거수기로 키워서는 안된다.
이해찬 대표부터 ‘행동하는 양심’의 DJ와, DJ의 행동하는 양심의 바다에서 자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기억하라.
여당의원들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의정에 임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