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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환의 향토사] 구한말 丘秉大(구병대)의 漢詩로 보는 세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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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丘秉大(구병대1858〜1916)는 구한말 2차 홍주의병을 민종식과 함께 참가한 의병장으로 시초면 신곡리 태어났다. 최근 龜巖遺稿(구암유고)문집이 발굴되어 龜巖(구암)이 남겨놓은 한시를 연재하여 당시의 실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憂世(우세) -세상을 걱정하다

 

구암 丘秉大(구병대1858〜1916)선생은 서천군 시초면 신곡리(옛 龜亭里)에서 태어났다.

 

부친 구민제(丘民濟)와 모친 남포백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산면 은곡리(한실-大谷)에 선대 丘擎天(구경천 1783〜1854)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大谷書堂(대곡서당)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고종 28년(1891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과거시험 보다는 자신을 위한 학문에 힘을 쏟았으며, 연제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출입하여 문도들과 교유하였다.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 조정은 친일 세력에 의하여 일제와 1.2차 한일협약으로 국권을 뺏기는 등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 매일같이 통한하다가 참판 민종식(閔宗植)이 홍산 지티에서 2차 홍주의병 창의 때 대곡서당을 의병의 숙영지로 제공하고 민종식의 의병에 함께하기로 뜻을 같이하여 문도와 제자들을 포함하여 1천여 명을 규합 서천군을 접수하고 이종석 군수를 감금 무기와 식량 등을 확보 남포를 거쳐 홍주성을 점령하였으나 일본군대의 지원으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하며 살다가 광복을 보지 못하고 58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漢詩 世憂(세우)에서 나라가 기울어가는 상황을 걱정하면서 지은 것이다.

 

구암 선생은 살아가면서 어질고 밝은 임금을 만나길 원하였지만 국운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몸은 늙어 병들고 초췌한 모습이다.

 

의기를 쫒으려 술을 먹고 나니 용기가 일어나 호방한 마음이다.

 

마지막 희망인 꽃인 국모(민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었지만 그래도 광풍과 비바람을 견디며 백성이 먹고 살아갈 언덕에 자라고 있는 보리가 견디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나라가 무너지며 어둡고 즐거운 없는 암담한 세상을 통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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