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에서는 삼랑 구기순 작가를 만나봤다. 석 삼(三)자에 밝을 랑(朗)자를 쓴 그녀의 호 삼랑(三朗)은 항상 밝게 살라는 의미로 스승인 석정 윤병건 씨가 지어줬다고 한다. 구 작가는 지난 12~17일 충남 서천문화원에서 ‘내 숨이 있는 곳 서천’ 개인전을 열었는데, 모두 서천에 관련한 작품을 전시하며 주목받았다. ◇서예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대학 때 서예 동아리에서 시작했고, 졸업하고 동아리 강사로 나왔던 선생님의 서실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배웠다. 지금까지 계속해오며 여러 대회에서 상도 받았고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서예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동아리는 들어가야 되겠고, 마침 서예 동아리가 눈에 들어와 하게 됐다. 서예에 대한 첫 기억은 중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있었던 서예부다. 말이 서예부지 붓으로 써 본 기억은 없다. 연필로 획 모양을 그리는 정도였다. ◇서천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 이유는?=개인전 전시를 기획하며 무엇을 테마로 할까 생각했는데, ‘50년 동안 나를 품어준 내 땅에 대해 너무 모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서천에 대해 공부를 하고
008.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下) -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어지러운 시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곧은 마음의 길을 바로 보면서 숱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질곡 속을 헤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난스럽겠는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인류의 성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역사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난세를 부르고, 고난의 역사를 펼쳐놓은 파렴치한 치정(治政)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개울을 건너자 곧바로 이어지는 반듯한 길, 그 끝머리에 청절사가 초여름의 햇살 아래 찬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둘레가 환하다. 청절사(忠節祠) 위로 펼쳐진 하늘도 한결 맑아져 있다. 그러나 이마로 흐르는 땀방울은 어쩔 수 없다. 땀의 흘러내림을 손수건으로 달래고 있는데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 399호(2008년 4월 10일 지정). 연산군 때 연산군의 폭정을 극간하다가 교살당한 좌의정 성준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이곳에 은거했던 첨지중추부사 유기창(俞起昌)과 예조판서를 지낸 유여림(俞汝霖)과 선조때 좌의정으로 난을 저리하여 광국일등공신에 오른 유홍(俞泓)과 인조 때 배청파의 거목으로서 병자호란 때 척화
007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上)-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단 한 마디 허투로 침묵을 깨뜨리지 않은 채로 꼿꼿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의 올곧은 모습이야말로 거대한 침묵의 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찍이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우고, 침묵은 신(神)들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은행나무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임벽당은 그 허구한 세월 동안 말하는 것을 침묵으로 배우면서, 그 침묵으로 시를 써온 것은 아닐까.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초여름의 한낮은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여름의 더위는 그칠 줄 모른다. 너무 덥다. 초여름답지 않게 하는 것은 내리쪼이는 일찍 여름으로 찾아온 햇살 때문이다. 길거리나 산과 들에 햇살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산과 들의 초록은 아침보다 더 푸르게 짙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의 그늘마저도 열기를 가득 품고 있어서 좀처럼 더위를 피할 수 없다. 훅훅 솟아오르는 열기에 부지런히 땀을 흘려댄다. 너른 주차장이라 하지만 겨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주차해놓은 곳이라곤 뙤약볕 아래일 뿐이다. 차창을 열어젖히자 그동안 차속에서 가뜩이나 옹크리던 열기덩어리가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 위에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40년 전 미국으로 떠난 이민자가 가족을 찾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충남 서천경찰서 김창섭 부청문감사관과 김회준 경위를 만나봤다. ◇어떻게 이주여성의 가족을 찾아주게 됐는지? 김창섭 부청문감사관 = 지난 6월, 미국에 사는 60대 여성 A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A씨는 4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여성으로, “이민 왔는데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 살고 있던 곳으로 찾아가 가족을 찾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사실 A씨는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대상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어눌하고 건강도 좋지 않은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연세도 많아보였는데 살아생전 가족을 만나겠다는 A씨의 의지가 마음에 남아 그녀의 가족을 찾아보게 됐다. 먼저 A씨가 40년 전 거주했다고 하는 마산면 신장리를 찾아가 봤다. 다행히도 신장리 마을 이장님이 A씨를 기억하고 있었고, 수소문 끝에 한국에 있는 가족을 찾게 됐다. 김회준 경위 = 그렇게 부천에 거주하고 있는 A씨의 오빠 B씨를 찾게 됐다. 가족을 찾았으나 며칠 후 연락을 주겠다던 A씨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A씨가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舒川 城北里 五層石塔)각 부재의 치석(治石) 및 구조나 형식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백제계 석탑양식의 지방분포에 따라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2017년 4월 23일 오후의 봄 햇살은 더욱 따스하다. 멀리 바라보아도, 가까이를 굽어보아도 온통 봄기운으로 가득한 대지는 생명의 약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과 들에서 햇살을 온몸으로 가득 담고 있는 푸르름들이 한결 싱싱해 보이면서도 부드럽게 느껴진다. 국도 21번을 따라 비인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봄의 가슴 속으로 뛰어들어 동행하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점점 깊어져 가는 봄날 오후. 성내 사거리에서 잠시 머물다가 곧바로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舒川 城北里 五層石塔) 앞에 이른다. 오래인 지우(知友)라도 만난 듯이 반갑다. 그 동안 몇 번인가 지나치거나 만나왔던 터라 이제는 두 눈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탓이리라. 탑 앞에 이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천천히 기단부(基壇部)로부터 탑신부(塔身部)로 점차 시선을 옮기면서 마침내 상륜부(相輪部)에 이르자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다소 긴장된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충남 서천군 서면 월호리에서 도예체험관&카페(갯벌도예·갯벌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상덕 도예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도예 입문배경은? =1988년, 경기도 여주에서 도자기에 입문했다. 스승은 김흥천 도예가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장이자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2000년대 여주에서 작업장을 차렸다가, 고향의 신선한 생선과 아버지가 그리워 2003년 귀향했다. “내 고향에 가서 조그만 작업장 차리고 작업하면서 재밌게 살아보자”고 아내를 설득해 고향에 돌아왔지만, 생뚱맞게 어업생활을 몇 년 했다. 집 짓고 작업장을 짓고 난 후 빈 시간에 동네형님 작업장에서 김 작업을 했는데, 바다에 배를 타고나간 첫 순간 천국에 나간 것처럼 좋았다. 떠오르는 태양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어업생활을 3년 하다가 ‘이제 그만해야 되겠다’, ‘내 작업을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정도 걸려 도자기체험장과 작업장을 지었는데 ‘잘못 생각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마을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문과 과연 서천에 도자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다행히 근처에 서울시
005. 용당진사(龍堂津祠. 龍堂山. 서천군 장항읍 소재)를 찾아서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고장을 지켜왔던 옛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백대교의 개통에 따라 금강과 연계한 용당진사 재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용당진의 용왕굿이 장항의 여러 축제와 함께 장차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발전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2018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가뭄속의 여름 날씨는 온몸을 훅훅 달아오르게 한다. 몇 발자국 떼어놓기가 바쁘게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달랠 수가 없다. 그러나 발걸음은 가볍다. 장항으로 달리는 차창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밖으로부터 밀려서 들어오는 열기가 오히려 더 따갑다. 차창을 꼬옥 닫아버리고 에어컨을 켠다. 그러나 한창 더위가 가실 무렵 이미 핸들에서 손을 뗀다. 쉽사리 동백대교 교각 밑에 차를 세운다. 저만큼에서 한여름의 짙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모습을 두 눈 안으로 들어온다. 장항 용당산의 용당진사(龍堂津祠)가 자리했던 곳이란다. 차에서 내려 용당진사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동백대교의 인도를 따라 성큼 위로 올라간다. 연이어 질주하는 차량들의 바퀴소리가 두 귀에 가득 차오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본지에 ‘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를 연재중인 구재기 시인을 만나봤다. ◇고향 떠나 타지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충남 서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고 공주 사대부고에 진학했다. 이후 공주교대를 졸업한 후 1969년 서천 마산초등학교에 초임 발령받았다. 1979년까지 서천군에서 교편을 잡다 대전으로 가 한남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4년 8월 홍성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이후 홍성군에서 교감까지 근무하다가 2012년 퇴임했다. 문단활동은 1978년 현대시학에 전봉건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교편 잡으며 문단활동을 겸했다. ◇시인으로의 활동은? 충남문인협회회장, 충남시인협회회장을 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마음이 편하다.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내 작업 이외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 내려놓았으니, 그만큼 자유롭다. 내 생활에 내가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2012년 고향에 돌아오며 주민등록을 다시 서천군으로 옮기고, 아버지께서 짓고 물려주신 집에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였다. 내부수리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한지 벌써 10년이 지났
004. 동백정冬柏亭 동백꽃을 찾아서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313-4 아낌없이 절정의 순간을 버릴 줄 아는 동백나무 동백꽃. 수없이 많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돋보이며 향기를 내뿜으며 마냥 화냥기를 엿보이다가 그 자리에서 꽃잎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면서 추하게 고스라지거나 말라 붙어버리는데, 동백은 절정의 아름다움일 때 통째로 뚝, 떨어진다. 뇌성벽력이라도 몰아칠 듯이 뚝, 거친 바닷물결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 철썩, 붉은 꽃송이를 내던져놓는다. 2015년 4월 19일. 산애재蒜艾齋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외분이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 시인 두 분의 내외였다. 내가 퇴임 전 2007년도부터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고향집을 세칭 리모델링하고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인 다음 각종 야생화와 정원수룰 가꾼다는 소문에 격려차 오신 것이었다. 그러하거니와 어찌 반갑지 아니하겠는가? 서천 기차역 도착예정 시각에 맞추어 서천역으로 나가고, 반가운 악수를 나눈 다음 곧바로 찾아간 곳은 바로 동백정冬柏亭, 그 무리진 동백숲의 동백꽃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천을 출발하여 한국관광공사 100대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된 서천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지난달 24일, “아버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충남소방본부홈페이지에 게시됐다. 글의 주인공은 바로 충남 서천군 한산119안전센터의 구급대원들로, 이들은 가로수를 들이받고 의식을 잃은 중년남성을 30분간의 심폐소생술(CPR)을 통해 살려냈다.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30분간의 귀한 노력으로 한 생명을 살린 한산119안전센터 4명의 영웅을 만나봤다. ◇현장활동2팀 유승훈 소방사 우리 센터는 교통사고나 심정지로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살려야겠다’라는 각오로 출동하고 있다. 사고 당시 심정지 환자에게 신고자 B씨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 도착 즉시 환자에게 제세동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후착대와 함께 30분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했다. 환자를 살리는 걸 항상 보람으로 삼고 근무하고 있는데, 이번에 환자를 살릴 수 있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현장활동2팀 박유진 소방사 출동을 나갈 때마다 환자가 별일이 없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출동을 한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동안 ‘환자가 살아나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상을 입었음에도 환자가 정말 살아나고 나니 너
003. 기벌포 해전(伎伐浦 海戰) 전망대에 올라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산단로34번길 74-45(장항읍 송림리 산 58-48) 2019년 6월 6일 수요일. 초여름의 날씨는 오랜 가뭄에 굶주렸던 물줄기를 만난 메마른 땅처럼 온몸에 상큼함을 안겨준다. 가벼운 차림으로 문을 나선다. 해마다 음력 4월 20일 ‘모래의 날’이라고 해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수십 리 새벽길을 열어 가던 바로 장항송림백사장을 향한다. 밭이며 논이며, 집안 살림이며 지친 삭신을 모래로 찜질을 하면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송림백사장의 모래는 고려시대 정 2품 평장사 두영철이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 모래찜질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곳의 백사장 모래는 염분과 철분, 그리고 우라늄 성분이 많아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특히 한해 중 모래의 날에 모래찜질을 하면 만병에 좋다는 풍속이 있다. 송림백사장의 사구를 이루고 있는 곳은 곧바로 흑송의 숲길에 이른다. 수령 40~50년 된 흑송(일명 곰솔) 13만여 그루가 하늘로 치솟아 이룬 그림자 밑으로는 싱싱한 맥문동이 바닷바람에 쉬지 않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맥문동 밭이다. 그 흔들어대는 모습은 흑송의 상큼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지난 2일 충남 서천교육지원청 제32대 교육장으로 취임한 정태모 교육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임 정 교육장은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4년 부여 남성중 교사로 교직에 입문해 논산고 교감, 예산중 교장, 충남교육청 장학관, 충남교육청연구정보원 교육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제32대 교육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지난 8월 8일, 서천에 발령을 받고 바로 주소를 옮겨 군민이 됐다. 그때 ‘이제 군민으로서 서천을 살려야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지원청 직원들에게도 군민으로서 교육장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천이 인구수가 급감하고 있고, 교육적인 인프라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런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살려보고 싶는 생각에, 발령을 받자마자 비인부터 시작해 서천지역 18개 초등학교를 쭉 돌았다. 서천이 굉장히 아름답고 학교도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조금만 인프라가 있으면 서천의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많이 느꼈다. ◇교육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서천교육을 바로세우겠다는 것이다. 교육지원청 힘만으로는 서천교육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유관기관을
002. 서천 남산성(舒川 南山城)에서 - 충남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산22-1 2019년 5월 3일 금요일. 절정에 이른 봄의 햇살은 한낮으로 치달리면서 맑을 대로 맑아져 성숙함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관광객들로 북적스러운 서천 특화시장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서천 남산은 온통 연초록의 신록으로 뒤덮여 있어 싱그러움을 그대로 전한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보이는 족족 모든 풍경들이 홍모의 날개를 단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환한 웃음을 선뜻 앞세워 터뜨려놓는다. 절정의 봄은 하나의 커다란 웃음 속에 모든 산천을 끌어 안아주는가 보다. 문득 노천명의 <푸른 오월>이라는 싯구절이 떠오른다.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절정의 봄 날씨는 자못 때 이른 여름날씨에 빠진 듯 국도 4호선의 굴다리를 지나면서 서늘한 기운으로 이마를 찐득한 물기를 훔쳐내게 한다. 문득 두 눈 안으로 가득 차오르는 남산마을이 환하다. 분명 북향의 마을임에도 어찌 저리도 푸르고 밝고 맑을 수 있으랴. 과연 계절의 여왕의 나라처럼 보인다. 그렇다. 아마도 시인 노천명은 저리고 아름다운 봄을 앞자락에 가득 품고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충남 서천군지역자율방재단의 정병철 단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10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는 서천군지역자율방재단은 평소 재난피해우려지역 예찰활동과 안전문화운동을 실시한다. 기상특보 발령 시에는 현장에 투입돼 피해지역 순찰, 응급복구 지원, 인명구조 및 이재민 구호 등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어떻게 지역자율방재단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안전총괄과에서 서천군지역자율방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역자율방재단에 가입하게 됐다. 평상시에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활동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입을 해서 봉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예찰반장으로 시작했는데, 전 단장인 이수영 씨와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내부사정으로 부단장을 맡게 되고, 지난 7월 26일 단독 출마해 무투표로 단장 직에 오르게 됐다. ◇지역자율방재단의 역할은? 태풍, 폭우피해 방지 등 재해방지를 위한 예찰활동을 주로 실시한다. 쉽게 말하자면 피해를 미리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재난현장에 투입돼 복구 작업이나 의료지원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태풍 ‘링링’이 왔을 때도
- 연재를 시작하면서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79년 3월 구두끈을 졸라매고 대전으로 출발하여 주로 홍성에서 머물며 살아왔다. 그리고 2012년 11월 겨울바람이 조금씩 살아나는 날 고향의 집에 몸을 내려놓았다. 33년만의 일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고향의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다. 바람이 맛있었다. 그래, 이제 고향의 하늘 아래 펼쳐진 고향의 땅을 밟아보기로 하자. 고향을 빛낸 인물들, 조상이 남겨놓은 유물과 유적들,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의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고향의 품속에 푸욱 빠져들기로 하였다. 잦은 고향의 말씀을 소중하게 모실 것이다. • 충남 서천 시초 신곡리 출생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 『휘어진 가지』와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 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신석초문학상 등 수상 •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 •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시초면 신곡리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 Cafe : 산애재(蒜艾齋 http://cafe.daum.net/koo6699) 001. 천방루(千房樓)에 올라 - 충남 서천군 문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