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너 기억나니? 그 날도 학원을 마치고 밤 12시 가까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너에게 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니? 세상이 너희들에게 너무 가혹하구나.” 라고 했더니 네가 했던 말. “아니에요, 아빠, 고3은 우리시대의 성인의식인 걸요” 했던 말 말이다. 그래, 그때 네 말은 참 대견스러웠다.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것도 훌륭한 성인이 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겠니. 요즘도 너희들 사이에서 데미안을 얘기하면서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없이 성숙은 없다고 하는지들 모르겠다. 아마존 강의 어느 부족은 성인이 되려면 독개미들을 장갑 속에 넣어 손을 물게 하여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고 한다.또 어느 인디언 부락에서는 짐승과 뱀이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 혼자 들어가 몇 날을 보내고 돌아와야만 한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소년들이 성인이 되려면 양쪽 가슴팍을 쇠갈고리로 꿰어 나무에 매달린 채 온종일을 참아내야 했었다고 한다.그 고통을 견뎌낸 사내아이들만이 앞가슴에 독수리 발톱과 같은 흉터를 자랑하며 스스로가 성인임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그 성인임을 인정받는 시련이 있는 날, 어머니들은 곁에서 아이가 받을 그 쓰라린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며, 무
‘벽창호’라는 말이 있다.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만 움직이는 고집불통, 독불장군 같은 이미지가 있는 사람을 벽창호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여기서 벽창호라는 말은 딱딱한 벽에 붙어 있는 고정된 창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데 벽창호라는 말은 전혀 다른 어원에서 나왔다. 본래는 벽창우(碧昌牛)라는 단어였는데, 벽창호로 바뀐 것이라는 것이다. 벽창우의 벽창이란, 평안북도의 벽동군과 창성군을 의미하는데 이 두 지방의 소가 덩치가 크고 성질이 억세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벽동, 창성 지방의 소처럼 고집이 세고 우둔하며 고지식하여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벽창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벽창우가 참으로 많다. 자신의 고집과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고집과 신념을 다른 사람과 조화시킨다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변절자니 철새니 하며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공자는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동일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고 했다. 반면에 “소인은 동일함을 원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즉 소인배들은 자기와 똑같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나는 법률을 어길 수 없다.’고 하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재판관은 젊어서는 안 된다. 판사는 자기의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악의 본질을 오랫동안 관찰함으로써 그 악을 배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음을 진심으로 행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 없는 세상이나, 사람이 법을 대신해 나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를 ‘법치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세상에 법은 너무도 많다. 종류도 많고 내용도 많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나라가 부패해질수록 법률은 많아진다’고 했지만, 악법도 무법보다는 나을 것이다. 법에도 계급이 있다. 계급이 높은 법을 상위법이라 하고, 낮은 법을 하위법이라고 한다. 헌법, 법률, 명령등이라는 계급이 이런 것이지만, 법의 계급은 매우 엄격해서 하위법은 상위법을 절대 거역해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법은 만들어지는 것도 계급에 따라 질서가 있다. 명령은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이 만든다. 법률은 국회가 만든다.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지만, 8월15일 광복절에 거는 태극기는 특히 깊은 감회가 서린다. 태극기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죄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이다. 해방이 되던 날, 피에 절은 찢어진 태극기를 꺼내 들어 흔들며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첫 소절부터 감동적이다. 우리 조국의 땅을 ‘만져보자’고 했다. 바닷물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고 했다. 목숨을 바쳐 조국의 광복을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들. 태극기를 흔들며 이 나라를 길이길이 지킬 것을 다짐했다. 태극기를 누가 처음 만들었나는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두 가지 설이 있을 뿐이다. 1883년, 일본에 제3차 수신사 파견시 박영효가 처음 만들었다는 설과, 그보다 1년 전인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이응준이 김홍집내각 총리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는 설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정말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미국, 러시아, 청, 일본이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면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