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다급하기는 한 모양이다. 선거때만 되면, 여지없이 쏟아지는 얘기가 국회에서 나왔다.
청와대와 국회, 정부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제안이다. 이를 기대해온 충청인들, 특히 세종시민들에게 다시 이 꿈이 완성되기를 희망을 갖게 한다.
모쪼록 정치권에서 화두에 올렸으니, 청와대 집무실이나 국회 세종분원(세종의사당)이 아닌 청와대와 국회, 서울에 있는 정부부처 모두 통째로 세종으로 이전되길 기대한다.
더욱이 무려 177석의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제21대 국회공식일정, 첫날인 20일 교섭단체연설에서 이를 들고 나왔다.
때문에 당사자인 청와대, 국회는 ‘여야 논의를 살펴볼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지 추진할 것인지, 아닌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예상대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이미 위헌판결이 난 것인데 왜 이 상황에 여당이 청와대·국회 정부부처 세종시이전 카드를 들고 나왔는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말로는 의아하다지만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 제안이 나오자 마자 기자들은 통합당 지도부의 입장표명에 귀를 기울였다.
청와대·국회 이전을 통한 신행정수도건설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날 때 헌재 대법정에서 이를 생생하게 취재했던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지난 2004년 10월 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 인구과밀화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충남 연기·공주일대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 마치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충청도에 신행정수도가 건설된다는 그 큰 꿈이 ‘관습헌법’이란 잣대에 눌려 물거품이 되는 순간였기 때문이다.
그때 헌재소장이 낭독한 결정문 속에 '수도 이전은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래서 김태년 원내대표의 주장이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부터 하게됐다.
그가 '개헌'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관습헌법의 지위를 갖는 수도를 변경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개헌 논의 개시에 대한 희망을 포함한 제안였을 것이다.
이에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행정수도를 옮기자는 건, 지난번 헌법재판소 판결문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결정됐다. 이제와서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더 신중하게 논의해봐야 할 사항"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그렇다면 통합당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하다.
4.15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했지만, 개헌가능 의석(300명의 의원정수중 200명)을 확보하지 못했다. 때문에 통합당은 절묘하게 103석을 얻어 개헌저지선을 유지하게 됐다.
김태년 원내대표의 제안에 야당이 시쿤둥한 것은 바로은 '수도=서울'이란 관습헌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즉, 수도를 옮기기 위해선 헌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헌재 결정이 살아있다.
헌재는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결정당시 결정문에서이런 내용을 공개했다.
헌재는 "수도이전을 확정하고 이전절차를 정하는 법률은 '우리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 사항을 헌법개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라며 "국민의 헌법개정 국민투표권을 침해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즉,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 등 사법부가 함께 신행정수도로 이전을 하려면 법률이 아닌 헌법개정 절차를 거치라는 취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개헌은 4·15 총선결과 '여대야소' 국회라지만 제1야당의 협조 없인 불가능한 것이다.
헌법 개정할 경우, 재적의원 2/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 뒤 국민투표를 통해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결국 현재로선 103석(전체 300석의 34.3%)을 가진 통합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헌법개정안은 국회의 문턱도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권 일각에서는 개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도의 핵심적 요소인 청와대는 서울에 그대로 두되, 입법부인 국회와 사법부인 대법원·헌법재판소만이라도 세종시로 옮기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헌법개정 대신 여당 단독으로 가능한 입법 절차를 추진하자는 뜻임이 분명하다.
여권 내 몇몇 인사는 "수도를 본격적으로 옮기는 대신 청와대는 서울에 남고 국회와 대법원만이라도 세종시로 옮겨 개헌 논란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행정부가 있는 곳이 수도이니 입법부와 사법부만 옮기면 개헌 없이 법률만으로 가능하다" 등의 주장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수도이전은 국회 의결후 국민투표결과가 부담되니 국회와 대법원 등 일부 국가기관만 세종시로 옮기자는 생각이다.
가능한 발상인 지 모르겠다.
하지만, 꼼수라는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데다, 청와대·국회·대법원이 떠날 경우 서울·경기·인천 등의 수도권 시민들을 여권이 설득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김 원내 대표가 청와대, 국회와 정부 부처 모두를 세종시로 옮기자는 제안의 속 뜻은 무엇일까?
그의 연설 내용 중에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조치로 이같은 주장이 나왔다면 더더욱 야당과 수도권 시민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국회이전부터 따져보면 이는 당시 헌재 결정문에 이런 대목이 있어서다.
당시 헌법재판관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수도를 옮기는 것에 해당해 '개헌 필요 사안'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헌재는 2004년 결정당시 "수도란 최소한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를 뜻하는 것이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는 곧 국회를 청와대와 더불어 '수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평가하고 있다.
헌재는 "입법기관의 '직무 소재지'라는 것은 수도로서의 성격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며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수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특히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를 옮기는 것은 수도를 옮기는 것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이전은 야당의 협조와 수도권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다.
꼼꼼히 살펴보면 16년 전 신행정수도 건설추진당시 헌재의 해석이 부처가 옮긴 지금 상황과는 다르다.
그때 결정은 국회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행정부처 등 모든 국가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것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국회만 옮기는 것도 개헌을 요하는 '천도'에 해당하는지는 헌재의 구체적인 판단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이를 의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개헌없이 법률개정으로 가능한 것은 사법부다.
헌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를 옮기는 것에 대해 행정부·입법부와 달리 수도성립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고 했다.
헌재는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사법권이 행사되는 장소와 도시의 경제적 능력 등은 수도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국가의 중요기관의 이전은 복잡한 과제가 많다.
이를 김 원내대표가 충분한 검토를 통해 제안했을 것으로 본다.
만의하나 충분한 전문가 검토나 내부 논의 없이 ‘세종시로 모두 옮기자’고 제안했다면 또다시 국론분열만 야기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이미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시작으로, 그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 16번의 선거에서 여야 각당이 공약으로 울궈먹었기 때문이다.
세종시민들은 그런 허언(虛言)과 공약(空約) 때문에 청와대 세종집무실이라도 만들자거나, 국회세종의사당을 건립하자고 나선 것이다.
법과 제도가 따라주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찬반 논란과 정쟁의 시발이 될수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 헌법부터 따져보고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