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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신수용의 쓴소리】거대여당, '야당의 유일한 무기인 입을 막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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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이라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나와 같이 충남 서천이 고향이다. 그는 여성이면서 하이칼라에 기름을 바르고 늘 정장차림인 남장 정치인이다. 정치 활동 내내 골수 야당인이었다.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나 김대중(DJ),김영삼(YS),이철승이 이끄는 야당에 합류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남장 여성의원이라는 것 외에도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 떨어졌으나 부정선거 소송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재검표를 통해 당락을 뒤집었다.


그를 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저격수로 불렀다. 장기집권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1975년 10월 8일 국회 대정부 질의 사흘째인 사회분야 질의에김옥선 의원이 다섯 번째 질문자로 나섰다.


 “… 135억원이 들었다는 이 국회의사당의 첫 국회에서 발언대에 선 본 의원은 영광과 기쁨보다는 죄책감과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 웅장한 건물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게 오늘 우리 의회는 ―·―·― 한갓 장식물에 불과하게끔 되어버린 정치현실 때문입니다. …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만능이 된 행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물어보고 또 무엇을 시정(是正)을 촉구한다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이런 좌절감은 비단 본 의원만의 느낌은 아닐 줄 압니다”라며 발언을 계속했다.


그는 박정희를 '딕데이터 박 (독재자 박)'으로 부르며, 그해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화 이후의 안보데모를 관제데모라고 주장했다. 


그는 "딕데이터 박이 장기집권하려고, 3선개헌을 하더니 유신헌법을 만들어, 예비군을 조직하고, 고교생에게 교련을 가르치고, 내 고향 충청도의 일간지 OO일보를 공화당 원내총무의 말만 듣고 특별세무조사를 하고...이렇게하면 박정희정권 오래 못간다"라고 공격했다.


당시 신문사 사주는 1971년 대통령 선거때 박정희와 경쟁한 DJ를 도왔다. DJ가 교통편이 안좋은 충청도 유세를 오면 현지 호텔이나 여관에서 묵을 방을 내주지 않았다. 그 소식에 충청도 유세때는 자신의 집에 DJ일행이 묵도록 내줬다.


이를 빌미로 박정희 지시로 고OO청장이 이끄는 사세청(국세청 전신)석달 열흘간 특별세무조사를 했다.


김옥선은 유신헌법개정,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침투사건을 계기로 예비군조직, 학도호국단과 교련제도신설, 동아일보등도 대한 반정부언론이라고 낙인찍었다. 그는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 국민동정론이 일자 "야당 정치인의 유일한 무기는 입밖에 없다"고 말했다.


훗날 김종필(JP. 전국무총리) 자민련총재는 김옥선을 동정했다. JP는 "그때 김옥선을 공화당이 제명하려고 한 것 자제가 잘못한 일이야. 야당은 국회에서 무슨 말을 못하나. 그러려고 야당하는 거지...'라고 했다.


이후 제1호 국회의원 제명자가 나왔다. 바로 YS다. 신민당 총재였던 그는 1979년 10월 4일 당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가 화근이 됐다. 그는 이란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 팔레비왕정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던 사태를 언급했다.


그는 "이는 (팔레비왕정을 지지했던) 테헤란주재 미국대사관의 실책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미국대사관이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YS가 "국회의원으로서의 본분을 이탈했고, 반국가적 언동을 했다며 의원직 제명안을 제출했다.


이를 막기 위해 야당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그러자 여당은 국회 본청 146호실에 159명이 모여 전원이 찬성, 제명처리 했다. YS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남긴 것이 이때다.


여권의 무리수는 결국 김옥선이나 YS의 말대로 오래가지 못했다. YS의 정치텃밭인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의 '부마(釜馬)항쟁'을 불러왔다. 이는 곧 22일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까지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이 야당의 유일한 무기인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 쓴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함부로 한 대가였다. 모든 힘을 가진 박정희와 공화당, 힘없는 야당의 무기인 입마저 막으려다 더 큰 탈이 난 것이다.


그래선지 DJ나 YS, 그리고 말년에 야당을 이끈 JP는 이런 아픔을 겪었기에 야당의 입을 막지 않았다. 야당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곧 협치(協治)라고 믿어서다. DJ는 자신과 가족, 주변사람이 군사정권들로부터 숱한 세월 탄압과 고문 등을 당했으면서 '정치보복을 절대하지 않는다'고 공언할 정도다. DJ와 JP가 여당의원들에게 '야당 의원의 말을 경청하라'고 외친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달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제21대 국회가 절실한 태도는'입을 막지말라'는 것이다.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7석의 말 그대로 거대 공룡이다. 미래통합당 103석과 기타정당을 합처도 여당과 게임이 안된다.


177석의 여당은 초유의 일이다. 1987년 민주화이후 선거를 통해서 한 정당이 국회 의석 5분의 3을 차지한 건 처음이다. 그만큼 정부 여당에 힘이 실렸다. 민심이 여당이 꾀하는 국정 운영에 힘을 실어준 국회가 문을 열었다.


여당은 무한책임을 진 문재인정권의 개혁방향과 당면한 문제들을 수습할 책임이 그래서 있다. 오는 2022년 대통령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위한 법 규정을 제멋대로 고치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원만한 국회운영이나,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독자적인 힘'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어느 언론인 말마따나 잘 드는 칼일수록 손을 베기 쉬운 법이다. 거대여당, 민주당이 경계할 것은 야당의 힘이 필요 없다는 일방통행식 국회운영이다. 이는 오만을 넘어 교만해지기 쉽다.


교만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야당의 쓴 소리가 필요하다. 쓴 소리하는 야당의 입이 겸손을 만들고, 양보와 타협을 만든다. 양보는 곧 협치를 만들어 정치와 국회문화를 바꿀 수 있다.


걸핏하면, 고성, 야유에다 고소. 고발전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 국회는 이렇게 있는 자가 먼저 고쳐야한다. 물론 야당역시 애정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이거나 대중의 칭찬에만 매몰된 입은 곤란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겪어보지 못한 거대여당과 소수야당의 국회구도를 우려하는 이유다.


어찌됐던, 국회 177석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의 제약을 넘어 어떤 법안이든 여당 단독으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할 수 있다. 대다수 상임위에서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법안·예산 심사와 의결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려면 야당과 함께 가야한다. 그렇기에 야당의 유일한 무기인 입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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