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서산 3.5℃
  • 대전 3.3℃
  • 홍성(예) 3.6℃
  • 흐림천안 2.7℃
  • 흐림보령 3.0℃
  • 흐림부여 3.0℃
  • 흐림금산 4.4℃
기상청 제공

[강소산의 좋은 생각] 서천을 되새길 수 있도록… 서천의 장소화

URL복사

누구든 고향을 떠올리면, 가슴이 애틋해질 것이다.

 

자랑스러운 애틋함인지, 안타까운 애틋함인지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말이다.

 

서천에서 나고 자라며 교사라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있어, 서천이란 고향은 정서적 안정감의 토대이다.

 

서천의 교육 현장에 오기 직전까지도, 자랑스러운 애틋함이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서천의 교육 현장에 와, 나와 같이 서천이 고향인 아이들을 만나보니 안타까운 애틋함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천을 과연 자랑스러운 고향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서천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천에 터를 잡고 살고 싶은 마음을 선물할 수 있을까. 현재도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 있다.

 

다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동료 지역민과 연대하기 위하여 부족하게나마 칼럼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공간은 물리적인 실체를 의미한다면, 장소는 물리적인 실체를 넘어 정서가 반영된, 의미를 지니는 곳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와 장소 상실’이라는 저서를 통해 ‘장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세계이자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토대’임을 밝혔다.

 

그렇기에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자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임을 말했다.

 

현대 산업사회의 직격탄 속에서 장소는 잃어지고 있다.

 

하지만, 서천은 여전히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는 이를 시골의 정취라고 할 것이며, 또 누구는 여전히 발전되지 못했다고 평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장소성을 지닐 수 있는 공간으로 파악했다.

 

‘자연경관’과 ‘서천을 서천답게 했던 것’(미곡창고, 장항선 등)들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어떨까. 자연과 서천다움을 유지하되, 아이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물리적 공간에 정서를 한껏 투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1학기 자유학기제 수업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서천이란 공간에 매력을 느낄까’를 주제로 숱한 논의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매력적인 서천의 공간은 무엇인지, 서천다움을 살리면서도 현대인(정확히는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상상하고, 말하고, 글로 쓰기를 반복했다.

 

물론 상상이 실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 과정 자체에 지역에 대한, 구체적으로 지역의 한 공간에 대한 학습적 경험과 그에 깃든 정서만으로도 장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서천 출신의 교사가 서천의 공간에 대한 자신의 장소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번에 서해신문에서 아이들의 서천 공간의 장소화하는 방식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 덕분에 아이들의 서천이란 공간을 장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천 지역민들은 분명, 다양한 공간을 장소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천을 걱정하고, 여전히 서천에 발을 붙이고 삶을 영위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하면 서천의 아이들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장소로서 서천을 기억하게 될까. 고향을 생각하고, 자랑스러운 애틋함을 느낄 수 있게 될까.

 

서천의 공간들로 하여금 나는 얻은 것이 많아, 서천이라는 지역 자체가 내게는 장소화되었다.

 

얼굴을 알든 모르든 어른들께 인사하면 칭찬으로 화답받던 신부락 시장, 친구들과 짧은 보폭으로 몇 시간을 우왕좌왕 걸어 도착하여 나름의 뿌듯함을 느낀 송림욕장, 언니와 함께 배를 타고 군산을 오가며 독립심을 장착해가던 도선장, 주말 아침이면 가족과 함께 들러 깨죽을 먹으며 안락함을 느낀 닐다방!

 

벌써 9월의 중순이다. 가을의 초입이라고 말하기엔 여전히 날이 더워, 끝 여름이란 호칭을 붙이고 싶다.

 

끝 여름을 배웅하기에 이 서천이 얼마나 다정다감한가.

 

짠 내 나는 바다에서 뛰놀다 보면, 끈질기게 달라붙는 옷자락들과 그 사이로 소록 바람이 들어와 바다 향을 묻히는! 낮은 건물과 그 위로 차곡히 널어둔 빨래에 일몰의 노을로 색을 입히는!

 

환경에 대한 감상을 내뱉고는, 역시 서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또, 그 생각으로 하여금 서천의 삶을 영위하려 마음먹는 이들이 생겨나길 소망한다.

 

나의 고민과 감상, 소망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만날 아이들이 많고, 어떤 깨달음을 줘야만 하는 사명이 있고, 무엇보다 서천을 잊히는 고향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포토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