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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옥의 캔버스] 칸트, 취미(翠微)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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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두 남자가 장미꽃을 보고 있다.

 

한 남자는 장미 향에 들숨 날숨의 가벼운 걸음이고, 다른 한 남자는 급한 마음이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장미꽃은 똑같이 아름다울까?

 

같은 꽃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가슴속을 채워 새로워져 커지는 감탄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체에 대하여 개념을 깨치지 못하는 좁은 마음으로 장미를 본다.

 

아름다움이란 그냥 각자의 취향이기에 그렇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지로데의 <엔디미온의 잠> 그림을 본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고 한다.

 

이것을 칸트는 ‘취미(翠微)판단’(순수이성비판)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이란 조화와 비례를 보고 “나는 느낀다.” 혹은 “나는 생각한다.” 쾌와 불쾌에 관한 판단을 의미한다.

 

칸트는 위대한 철학자이며 언어와 문학에 뛰어난 사려깊은 실천가이자 성실한 성품의 인물로 평가한다.

 

저서로는 ‘자연사와 천재 이론’ 놀랄만한 저술이다.

 

토아 철학에서 칸트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 무한한가, 결합하여 있는가, 자연의 법칙인가, 필연적 존재인가, 우연인가를 고민한다. 그는 진정한 예술은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미꽃의 객관적 속성은 달걀모양의 잎이 7장이 어긋나며 잎 가장자리가 톱날처럼 들쑥날쑥하고 줄기 끝에서부터 꽃이 피고 홑꽃과 겹꽃이며 색이 다양하고 향기가 좋다.

 

화가가 정원에 핀 장미꽃 그림을 그려놓고 좋은가?

 

묻는다면 생각이 깊어진다. 개인의 감정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이미 정해진 규칙을 기술자처럼 정밀하게 기준에 딱 맞는 예술품을 그리기도 하고 조각도 하였다.

 

황금비율로 제작된 밀로의 비너스가 그렇다. 당시의 예술은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규칙을 칼같이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으로 여겼다. 심지어 다빈치는 예술을 과학이라고까지 말한다.

 

르네상스 이후의 고전주의 작가들도 다를 바 없다. 자유롭게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자유나 감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한 예술이란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고전주의 칸트의 미학이다.

 

낭만주의 화가들이 자기만의 표현을 화폭에 담는 것처럼 칸트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를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는 기술자와 다르다.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숭고미를 말한다.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 해낼 수 있다.

 

가치판단이 내려지지 않는 객관적 대상을 먼저 인식한 후 주관적으로 ‘좋다.’ ‘싫다‘ 는 판단을 내린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취미판단이다. 아름다운 기준은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연필로 대충 나비를 그려 놓고 나비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동의 할까? 어느 사람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구도와 조화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한 공통의 감정이 있어 오월에 피는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공통부분이다.

 

그러니 장미축제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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