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어떤 주제로 첫 글을 열어야 하나 고민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나 골똘한 상념을 헤집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럴싸한 단어들을 수집하려다 말았습니다.
새로운 것이나 낯선 것 찾아 나서는 ‘발굴’의 의지보다는, 익숙한 것이나 낯익은 것을 들여다보는 ‘이입’의 노력이 ‘진솔한 글’에 가까운 듯했습니다.
누구나 표면은 번지르르하지만, 이면은 꾀죄죄합니다.
물론 그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꾀죄죄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꾀죄죄한 나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대우하는 것은 고단한 작업입니다.
며칠 전, 승은은 요즘의 우리는 이마에 “‘취급 주의’ 스티커를 붙여둔 유리병”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주변과 비교하며 스스로 갉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나 자체로 만족하기란 힘에 부치는 세상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는 건강한 나로 거듭나는 방법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스스로 인정하며 칭찬하는 것’, ‘감사 일기를 쓰는 것’ 등을 제안합니다.
밖에서부터 나를 채우려 하지 않고, 안에서부터 나를 채워가는 것이 ‘취급 주의’ 스티커를 떼어내는 단일한 방법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몇 번 도전은 해보았으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막간에는 ‘스스로 사랑해야 저런 것도 쉽지! 억지로 어떻게 해!’라는 극단적인 분노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꾸민 말로는 감정에 몰입을 잘하는 편인지라, 솔직한 말로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저의 오랜 습성입니다.
습성은 항상 ‘울분하기 – 통곡하기 – 비하하기 – 체념하기 - 이해하기’의 궤적을 밟습니다.
종종 체념은 달관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아주 운 좋을때나 그렇습니다.
나름 자라면서, 궤적을 이해하고 이를 우회하려는 노력을 덧붙이면서 태평한 자세를 취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습성은 습성이기에, 궤적에 들어서면 저 단계를 모조리 밟아야만 합니다.
습성을 파악하는 데에 모든 인생의 햇수가 들어갔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습성을 파악하여 글로 정돈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습성을 진작 간파한 완벽한 타인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진해서 이 궤적으로부터 저를 돌봐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의 방법은 ‘울분하기’ 이전 단계에서 감정을 토닥여 궤적에 들어설 일이 없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을 토닥이는 말과 행동은 ‘매운 닭발 먹을래?’와 ‘매운 닭발 시킬게.’였습니다.
매운 닭발을 먹으며, 완벽한 타인은 온전한 내 편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달달한 것 먹고 기분 풀어’, ‘오늘은 매콤한 것 먹을까?’라는 말은 우리에게 참 익숙합니다.
감정을 전환 시키는 최소한의 노력이 음식에 맞닿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안에서부터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른 것에 비하면 그래도) 손쉽게 나의 존재를 대접할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하였습니다.
‘정성스럽게 식사하는 것’이 그렇게 제 한 해 목표가 되었습니다.
실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취미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식사하는 경험이 드물었습니다.
나를 채워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인사를 할 때는 ‘밥 먹었어?’. 안부를 물을 때는 ‘밥은 먹고 다니냐?’. 고마울 때는 ‘밥 한 끼 살게.’. 헤어질 때는 ‘나중에 밥 한번 먹자.’. 격려할 때는 ‘밥은 먹고 해야지!’. 힘들 때는 ‘밥도 안 넘어가.’. 무언가가 싫을 때는 ‘밥맛 떨어진다.’. 무언가를 제대로 못 할 때는 ‘밥값을 못하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콩밥 먹고 싶어?’. 채근할 때는 ‘지금 밥이 넘어가니?’. 뭐라도 시도해야 할 때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 복에 겨운 소리를 들었을 때는 ‘배가 불렀구나, 아주!’. 얼토당토않은 고민을 들었을 때는 ‘그게 밥 먹여주니?’. (…) 이토록 밥에 진심은 우리입니다.
2025년 저의 첫 기록은, ‘먹는 것(식사) + 자는 것(수면) → 사는 것(삶)’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 자야 살아가는 것이니 말입니다.
‘식사’와 ‘수면’, 그중에서도 마음먹고 ‘수시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식사’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과장을 보태 ‘밥’으로 모든 소통을 해낼 수 있는 우리, 얼마나 잘 ‘식사’하고 있는지요.
올 한 해, 식사는 제때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모쪼록 봄이 올 때까지 따뜻한 끼니 드시길, 두꺼운 털옷을 두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