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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움직임과 마음의 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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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 교장 선생님과의 차담회가 있었다. 그 시간, 교장 선생님의 ‘마음의 근육’과 관련된 문장들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누구나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고민은 갯벌과도 비슷해서, 방심하면 어느새 무릎까지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전시된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음과 정신은 개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련해서 얻어진다면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마음의 근육’이었다.

 

보름 넘게 괴로움을 삼키고 있었다. 분노와 우울을 넘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괴로움은 결국 나를 향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 시기에 맞물리게 차담회를 갖게 되었고, 그때 들은 ‘마음의 근육’이라는 말이 판도를 뒤집었다.

 

근육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둥실 떠올랐다.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은, 정확히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무엇이든 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을 끊어내는 것이나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그 힘을 걱정 따위에 쏟아서 괴로웠지만, 거두절미하고 긍정적인 것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발상의 전환이 시작됐다. 움직임에 몰두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지. 무작정 움직여야겠다는 다짐으로 6월을 열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버거웠던 호흡이 차차 정리되고, 경직되던 근육이 차츰 풀려갔다. 흐르는 땀과 함께 암울한 감정 상태도 옅어지거나 흘러내렸다. 어쩌면 암울한 감정 상태라는 이 표현도 가히 과분한 것일지도. 번뇌가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과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것들이었으니까. 이토록 작은 움직임들이 내 감정의 판도를 뒤집다니.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움직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울퍼트(Daniel Wolpert)는 뇌가 존재하는 이유는 움직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뇌의 존재 이유를 보통 사고와 판단 정도로 여기지만, 그는 뇌의 활동이 미래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뇌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퇴화할 것임을 말했다. 멍게는 움직이지 않음을 선택하여 뇌를 소화시킨다. 코알라는 큰 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덜 움직임과 동시에 뇌를 척수액으로 채우기에 이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인지 능력이다. 이러한 인지 능력은 실은 잘 움직이기 위함에 딸려온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움직임으로써 생존해야 했고, 그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용이하게 하고자 다양한 인지 능력이 개발된 것이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에디터인 캐럴라인 윌리엄스(Caroline Williams)의 저서 《Move: How the New Science of Body Movement Can Set Your Mind Free》에서는 움직임을 통한 건강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1년 11월 《움직임의 뇌과학(움직임은 어떻게 스트레스, 우울, 불안의 해답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조선일보·매일경제 등의 주요 일간지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해당 책에서는 수년간의 추적 연구 결과를 가리키며, “근육의 약화는 지방의 양과 유산소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사망의 원인이 된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맥과 같이, 요즘 EBS에서는 ‘근육’을 핵심으로 하는 다양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하고 있다.

움직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활동인가. 움직임으로부터 파생되는 신체의 근육은 결국 마음의 근육으로까지 확장된다. 단련된 마음의 근육은 나를 나로 만족하게 한다.

 

스스로 만족한 사람은 타인으로써 자신의 미진한 부분을 채우려 하지 않고, 타인을 시샘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근육은 나의 안전지대로 완충 작용을 톡톡히 해낸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는 얼마나 단단한, 아니 든든한 사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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