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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계절을 타는 마음,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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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는 사계절을 ‘봄 한 송이, 여름 한 컵, 가을 한 장, 겨울 한 숨.’으로 표현했다.

 

박연준 산문집 ‘모월모일’의 <밤이 하도 깊어>에서는 사계절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름밤은 익어가기 좋고, 겨울밤은 깊어지기 좋다. 봄밤은 취하기 좋고 가을밤은 오롯해지기 좋다.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 익어가고 깊어지는지, 취하고 오롯해지는지 묻는다면? ‘무엇이든’이라 대답하겠다. 사랑, 미움, 한숨, 그리움, 희망, 불행. 진부하게 거론되지만 원래 그 의미가 무거운 말들은 밤에 한층 더 무거워진다.’

 

마음이 계절을 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계절마다 짙어지는 색도 향도 다른데, 어떻게 마음의 결이 매한가지일 수 있을까.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마음도 유영하는 것이지.

 

나의 마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봄에는 사랑을 헤매고, 여름에는 사랑에 잠기고, 가을에는 사랑을 그리고, 겨울에는 사랑에 묻힌다.

 

그리하여 이 봄, 사랑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헤매기를 반복했다.

 

사랑이란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나, 사랑이란 것으로 결국 세상을 품어내야 한다는 것이나, 사랑이란 것을 이상으로 되뇌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은 완벽한 사랑의 불가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세상이 온통 사랑, 사랑, 사랑인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삶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사랑마저 같을 수 없음을 뜻한다.

 

나에게 사랑은 영원을 함께하는 것이었다면, 너에게 사랑은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행복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너에게 사랑은 행복을 찾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비를 같이 맞는 것이었다면, 너에게 사랑은 비를 같이 피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면, 너에게 사랑은 편지를 고이 접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흩날리는 색종이 조각이었다면, 너에게 사랑은 반짝이는 불꽃놀이였다.

 

봄,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이 달라서, 그러니까 내가 품을 수 있는 사랑과 네가 받고자 하는 사랑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생기는 간극을 헤맸다.

 

서운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몰라.

 

속상했다. 내 사랑의 마음은 대체 어디로 흘러간 걸까.

 

후회했다. 왜 하필 내 사랑은 너에게 향했을까.

 

포기했다. 내 사랑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하물며 네 사랑을 내가 어쩌겠어.

 

그렇게 결코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결론을 마주하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랑을 하면 그만인 것, 내 사랑의 매무새로 너의 사랑을 재단하지 말자.

 

사랑은 그 자체로 사랑인 것이니, 통하든 통하지 않든 그저 사랑인 것이니,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포부라면, 다가오는 여름에는 분명 사랑을 만끽하고 사랑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봄밤, 깊이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너와의 순간을 한 움큼 떠낸다.

 

순간을 마주하자 열기는 모락모락 피어난다.

 

열기에 순간은 몇 번이나 데었고, 증류되었다.

 

봄밤 취하기 좋다는 그 말이 알맞다.

 

너도 봄밤에 취해가고 있을까.

 

네 사랑이 나와 같지 않다면, 또 네 사랑이 혹여 내가 아니라면, 또 네가 떠올리는 순간에 내가 없다면 아무렴 어떨까.

 

봄밤은 취하기 좋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고, 다분히 네가 행복하길 바라면 그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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