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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사랑에 모양이 있다면, 그건 삐뚤빼뚤한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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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첫눈을 보았다. 몇몇은 첫눈은 그것보다 조금 전에 내렸다고도 하고, 또 몇몇은 첫눈은 2023년 1월에 내린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첫눈이라고 느낀 그 감상이 더욱 소중하기에 11월 17일의 눈을 첫눈이라고 하겠다.

 

3교시 3반 수업에 들어가서, ‘얘들아, 방금 눈이 오더라’라는 말을 건넸다. 커튼을 올려두고, 면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함박눈이 쏟아졌다. 창밖은 온통 하얀 눈방울이었다. 제각기 다른 결정의, 다른 크기의 눈방울을 보고 있자니 괜히 ‘사랑’이 떠올랐다. 단어가 아닌, 감정이 몽글몽글 끓어올랐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이라 했고, 시인 장수양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커다란 혼자’라 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사랑은 빠짐없는 문예의 소재이자 목적이었다. 그만큼 사랑은 모두의 교집합이자 이상과 파멸을 그리게 하는, 추상적인 관념이자 철학적인 고뇌인 것이다.

 

첫눈을 보며 사랑을 떠올린 데에는 약간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랑에 모양이 있다면, 저 눈처럼 삐뚤빼뚤한 동그라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차올랐다. 어떻게 그려도 삐뚤빼뚤한 동그라미, 그럼에도 더 완전하게 그리겠다며 몇 번이고 시도하게 되는 동그라미. 그러니까, 몇 번을 해보아도 삐뚤빼뚤한 사랑, 그러니까 더 온전하게 (가끔은 완벽하게, 이상적으로) 하겠다며 몇 번이고 시도해야만 하는 사랑.

 

사람과 사랑은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줄곧 여겨왔다. ‘사람-사람의 ㅁ-마음-마음의 ㅇ-사랑.’ 그저 이상하고, 지극히 의식의 흐름이지만 나의 생각이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내게 교사라는 직업은 낭만에 가깝게 느껴졌다.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다양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해야만 하니까.

 

교사로서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을까, 라고 물으면 응당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라고 물으면 답을 할 수가 없다. 분명 사랑을 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부터는 내가 하는 사랑을 설명하는 데에 지면을 할애할 것이고, 일종의 러브레터가 되겠다.

 

농구장에서 골을 넣는 SH1에게서 기특함을 느끼고, 축구공을 힘껏 차는 JK에게서 대견함을 느끼고, 종례 시간에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SH2에게서 성실함을 느끼고, 매일 핸드폰을 정리하는 KW에게서 대견함을 느끼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성과를 내는 JY에게서 훌륭함을 느끼고, 선생님들에게 최고의 선수로 친구를 추천하는 JH에게서 경외감을 느끼고, 친구들을 북돋우며 운동하는 SW에게서 어른스러움을 느끼는 것.

 

해맑게 웃으며 몸을 들썩이는 SH3에게서 귀여움을 보고, 매번 골대를 지키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TJ1에게서 멋짐을 보고, 거센 날씨를 뚫고 뚜벅뚜벅 걷는 KS에게서 정직을 보고, 매일 우유를 정리하는 NY에게서 정성을 보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KH에게서 배려를 보고, 저 끝에서부터 웃어 보이는 YC에게서 밝음을 보는 것.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는 DH에게서 끈기를 배우고, 필드를 누비는 DY에게서 강단을 배우고, 참고 견뎌내는 SH4에게서 인내를 배우고, 방울토마토에 물을 주고 햇빛을 쪼이는 TY에게서 진심을 배우고, 어떤 말에도 굴하지 않는 KY에게서 무던함을 배우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KH를, AI에 관심을 보이는 JH를,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JM을, 매사 진중한 GW를 부러워하는 것. 골을 넣은 YT보다 더 기뻐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DH를 걱정하는 것.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는 HY의 말을 믿고만 싶은 것, 올해가 가기까지 40일이 채 안 남아 아쉽다는 JW의 말에 공감하고만 싶은 것,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HH1의 말에 약속하고만 싶은 것.

 

JT와 DW에게 장난을 쳐주고 싶은 것. HN에게 비타민을 주고 싶은 것. GK의 꿈을 듣고, HH2의 꿈을 말하고 싶은 것. YJ의 글을 칭찬하고 싶고, UC의 글을 응원하고 싶고, WJ와 글을 쓰고 싶고, HS의 글을 보고 싶고, TJ2의 글을 기대하고 싶은 것.

 

무엇보다, 부족한 지면에다가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자랑하고만 싶은 것. 부끄럽지만 내 사랑의 모양이다. 삐뚤빼뚤한 동그라미여서, 분명 마음은 동글동글한데 부분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모가 나있다. 사랑을 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만큼 기대가 커진다는 변명을 두르고 혼냄과 화냄 사이를 횡단하곤 한다. 다음 눈을 함께 볼 때는, 조금 더 희고, 조금 더 동그란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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