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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819년 서천군 마량진 조선 표류일기의 가치와 활용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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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 전에 우리 고장 서면 마량진에 25명이 탑승한 일본관공선 선박이 표류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조선과 일본 간에 통신사를 통해 수교가 이루어져 자국의 국민이 표류가 발생할 경우 상호 인도주의 입장에서 보호하다가 본국으로 무사히 귀환하도록 하였기에 조선에 표류한 자의 보호 과정 등을 표류일기를 몇 차례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문정 후 첫 보고(충청병영장계록)

 

이 표착에 관련된 <충청도병영장계등록> 순조(純祖)19년(1819년) 7월 초5일에, “이달 초5일 오시(午時)에 도부(到付)한 마량진 첨사(馬梁鎭僉使) 이동형(李東馨)의 첩정(牒呈)에, “이달 초3일 묘시(卯時)쯤 도부한 본진 갈곶(葛串-마량리) 후망군(候望軍) 방(方)과 김(金)의 치고(馳告-급보)에, ‘이양선(異樣船-다른나라배) 1척이 표도(漂到-표류)하여 연도(烟島)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므로, 첨사가 듣고 매우 놀라 장리(將吏)와 진졸(鎭卒)을 조발(調發-조사를 위하여 출발)하고 이양선이 표도한 곳에 달려가니 과연 이국선(異國船-다른나라배)이었습니다. 글로 물으니 답하기를, ‘일본(日本) 살마(薩摩) 선척이고 이죽선(二竹船-2개의돛배)이며 해인(海人)은 25명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해인은 바로 선인(船人)을 이르는 말이며, 동풍이 급하게 불어 배를 제어하여 끌어들일 길이 없어서 인선(人船)을 많이 징발하여 반드시 끌어당겨 들여와 정박시킬 계획입니다. 선상 집물 또한 허다하지만 창황한 중에 갑자기 수효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막중한 변경(邊警 국경에서 일어나는 적의 침입 따위의 사변(事變)에 대한 경계)을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기에 지방관인 비인현(庇仁縣)에 급히 공문을 보내는 한편 연유를 우선 첩보(牒報-보고)합니다. 들여와 정박시킨 다음에 하나하나 적간(摘奸-부정여부확인)하고 연속하여 치보(馳報-급보)할 계획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양선이 표도하였다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문정(問情-정황을 물음)에 관한 여러 가지를 각별히 신중하게 살피게 하고 방수(防守-지킴) 등의 일도 엄히 신칙하여 제송(題送)하였습니다. 문정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려 차례로 치계할 계획입니다. 연유를 잘 아뢰어 주소서”라고 하는 첫 보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비인현감과 첫 만남 교유

 

비인현 마량진 안파포에 표류선 야스다의 배가 들어온 저녁, 포구 쪽에서 무언가 음악이 들려왔다. 선상에서 내다보니 그것은 의장단을 거느린 행렬이었다.

 

파란 덮개가 있는 가마를 탄 사람을 중심으로 한 5, 60명으로 되어 있었다 이윽고 가마에 탄 사람이 배에 옮겨 타더니 총소리와 음악을 신호로 표류선박에 다가 왔다.

 

야스다는 여복을 단정히 하고 동자에게 패도(佩刀)를 들려 위의를 갖춰 선상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렸다.

 

찾아온 것은 비인현 태수(현감) 윤영규였다. 통통한 볼에 단정하고 또렷한 눈동자, 온화하고 신중하며 느긋하고 엄격한 느낌을 풍기는 인물이었다.

 

윤영규가 처음 꺼낸 말은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왜 여기에 표착하게 되었는가?” 첨사의 첫 질문과 같았다.

 

그러나 먼 바다에서 겪은 고초를 위로하고 표류자의 부상을 염려하며 정박지를 연안 근처의 더 편한 곳으로 옮길 것을 권하는 말투는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관리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그런 호감도 잠시, 윤영규의 질문과 지시가 야스다에게는 몹시 집요하게 느껴졌다.

 

표착 첫째 날인 이날 비인현감 윤형규의 문정이 끝나고 표류선을 떠난 것은 결국 밤 10시를 넘어서였다.

 

그 후 정박위치를 변경하기로 하고 만조가 되는 새벽을 기다려 포구 바깥의 앞바다로 배를 이동시켰다.

 

비인현 태수 윤영규와 마량진 첨사 이동형이 함께 나타났다.

 

야스다는 얼른 얕은 곳에 배를 대면 배가 손상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수심이 깊은 곳에 정박하기를 청하는 한편, 물과 식량도 요청했다.

 

비인현감 윤영규는 요구를 받아들인 뒤 자신들의 원칙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국과 본국은 이미 수호관계를 맺었으니, 귀국의 배가 해난사고를 만나 고초를 겪는 것을 그대로 좌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소이다.” 그리고 “국법에 따라, 선내의 화물을 하나하나 점검하고자 하오”라고 말하며 신중히 방문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야스다는 일본어 통역의 파견을 요구했다. 필담으로도 점검에는 응할 수 있지만, 통역이 있는 편이 아무래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인현감 윤영규는 통역 파견은 화물의 점검을 끝낸 뒤 중앙정부에 신청하겠다고 했다.

 

점검 후가 아니면 통역 파견은 불가능한 것이냐며 물고 늘어지는 야스다에게 윤영규는 표착선 내의 점검은 국법이며, 우선 이를 끝내지 않으면 관리는 처벌받는다며 응하지 않았다.

 

 

3) 수군우후(崔華男)의 도착

 

다음날인 5일도 태수 윤영규는 아침부터 왔다.

 

해안가에는 비인만내의 표류선을 볼 목적으로 모인 조선인이 시장처럼 붐비고 있었다.

 

이날도 점심시간을 두고 점검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해가 졌을 때 악대와 함께 관인의 행렬이 해안 위에 나타나 드디어 배에 올랐다.

 

매의 눈과 흰 수염, 갓끈에는 흰 구슬이 나란히 달려 있었다.

 

태수가 자리를 양보했기에 지위가 높은 인물로 보였다.

 

관인은 수영집사관(수군우후- 수군 부사령관)인 최화남이었다.

 

수군우후의 품계는 정4품, 비인현감이 종6품이니 윤영규가 상관인 최화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최화남이 근무하는 충청도 수영은 비인현에서 북쪽으로 30리를 사이에 둔 보령현 오천에 있었기에 표착 소식을 받고 나서 현지에 도착하는 데 조금 시간이 소요되었던 듯하다.

 

이 때문에 최화남은 이미 행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표류경과를 다시 질문했다.

 

 

Ⅱ. 체류기간 보호

 

1. 상호배려와 신뢰구축

 

밤새도록 필담을 끝낸 새벽, 야스다는 싸우는 목소리 때문에 잠들지 못한 채로 6일 아침을 맞이했다.

 

소란은 배의 침수였다. 전방에 설치된 창고가 물에 잠겼다는 것이다.

 

지쳐있었기 때문인지 배의 상태를 물어본 감시자인 김기방에게 야스다는 조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얕은 여울에서는 배가 손상을 입을 수 있기에 정박 위치를 바꿔달라 요구하였다.

 

옆에 있던 장천규는 불뚝거리며 얼굴색을 바꾸어 ‘가령 1,000일이 걸리더라도 점검이 끝나지 않으면 상사에게 보고할 수 없다’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책망하는 것 같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스다는 '필요하다면 가령 천만일이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따졌다 연이은 가시 돋친 말과 연상 작용은 망상을 불러일으켰다.

 

우선은 장천규를 단숨에 베어 쓰러뜨리고 잇따라서 조선인을 모조리 도륙해 버리자고.

 

순간 야스다는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3일 다 제대로 잔적이 없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느끼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 것 뿐이 아닐까. 딱히 조선 관리인 장천규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1) 의사와 술, 담배

 

점심을 지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의사가 왔다. 실은 어제 아침 비인현감이 침의와 함께 배를 찾아왔으나, 히다카도 가와카미도 침의에게 진찰을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와카미는 야스다가 한 꾸러미만 남겨둔 광동인삼을 아침저녁 얇게 잘라서 달여 복용하고, 가능한 한 안정을 취한 채로 약의를 계속 기다렸다.

 

가와카미는 10일 이상이나 설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의사는 가와카미의 맥을 짚어보더니 배 상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찰해주지 않는 거냐고 야스다가 묻자 약의는 맥을 짚으면 충분하다며 익원산과 지유탕을 처방했다.

 

야스다는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어서 의사와 현감에게 술을 권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비인현감은 품에서 천천히 담배주머니를 꺼내서 야스다에게 한 모금 권했다.

 

지난번보다 맛있고 향이 훨씬 향기롭다고 칭찬하자 현감은 그것보다 조금 떨어지는 물건인데 라며 고개를 기울이며 아마 연관의 기울기가 좋은 맛을 끌어내는 것이겠지 라고 보충했다.

 

야스다가 사례로 담배쌈지(다바코이레)를 보내자, 비인현감은 그 ‘다바코이레’라는 일본 이름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말했다.

 

 

필담은 담배쌈지 등의 신변관련 물품에서 활, 총까지 화제가 확대되었다.

 

 

2) 후의와 제도

 

10일 오후가 지나온 비인현감은 1인 1되 기준으로 매일 세 끼의 식량을 표류민에게 지급할 규정이라고 말했다.

 

선내의 쌀 상태는 꼭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다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햇볕에 말리거나, 찌거나 하면 계속 이어서 먹을 분량 정도는 있었다.

 

현감의 후의는 감사했으나 야스다는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식량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선내의 쌀을 다 먹고 나서 받을 수 없는지 물었다.

 

 

현감은 이는 ‘국조교린성덕의 의의’이며 받아주지 않으면 자신이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국법’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지나자 김달수가 작은 배에 실어 7월 6일부터 10일까지의 5일분으로 쌀 2석 7말 5되 외에 장 2말, 고수 3개, 조기 한 묶음을 가져왔다.

 

이날 야스다는 ‘이웃나라 수호의 후의’에 기대겠다고 말하고, 표류민에 대한 식량의 정액 지급을 ‘국법’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는 개인적인 선의를 넘은 조선국의 은혜였다.

 

 

3) 도둑질 범인 국법에 의한 처분

 

전날 어느 조선인이 일본의 빗을 담배쌈지에 숨겨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발각됐다.

 

야스다는 훔치려고 훔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빗이 드물어서 손에 가지고 있는 사이에 우연히 담배쌈지 안에 들어간 것이겠지, 처벌을 할 것까지는 없다고 원만하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빗의 주인 입장에서 보면 용인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범인’은 조선관사의 하인이었다.

 

이날, 표류인 세 명이 ‘범인’을 찾아 바닷가까지 쫓아가서 잡아왔다.

 

마량첨사 이동형이 봐 달라 청했으나 3명은 승낙하지 않고, 배에 데리고 돌아와서 수발을 묶어 결박한 후 배의 안팎을 끌어들인 분쟁이 되었다. ‘범인’은 야스다에게 머리를 때리며 도와 달라 빌었다.

 

조선하사 김기방이 해변과 표류선과의 사이를 문자 그대로 달려와 국법에 따라 범인’을 처벌한다고 전해왔다. 하인을 넘겨줬으면 한다고 한다.

 

 

야스다는 여전히 처분할 정도의 일도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으나, 선원들의 기분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김기방이 처분한다면, 굳이 그만두라고 할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범인’의 신병은 즉시 조선관사 손으로 넘어가, 첨사 이동형이 바닷가에 무릎을 꿇게 하고 따져 물었다.

 

좌우에 서 있는 형사가 ‘범인’의 옷을 벗겼다. 드러난 궁둥이를 오른쪽 남자가 장으로 치고, 왼쪽 남자가 채찍으로 때렸다.

 

세 번 네 번 때리자 ‘범인’은 도둑질을 자백했다. 또 세 번 네 번 때리자, 그밖에도 옷감 2, 3폭을 훔쳤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세 대 네 대 때리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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