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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수기 공모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작]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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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외로움에 기대 사는 독거 어르신들처럼 6월의 햇살이 그리움에 도탑다.

 

기후 변화로 일찍 찾아온 더위를 뒤로 하고 나는 산과 들을 지나 마서면 어리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 댁으로 들어선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일 먼저 나를 반겨 주는 할미꽃 한 무더기를 천천히 들어다 본다.

 

그 빛과 향기는 지금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과 가장 많이 닮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미꽃 설화보다 더 힘들었던 전쟁 세대 어르신들!

 

당신 몸은 아랑곳없이 해와 달을 따라 수천 번씩 허리를 굽혔다 폈다 결국, 기역 자로 등이 굽은 모습과 줄기의 솜털이 흰 머리카락처럼 변한 모습에 할미꽃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성글진 꽃망울에 눈인사를 건네며 어르신을 부르며 문을 열고 안부를 여쭙는다 “어르신 잘 지내셨지요?”

 

어르신께서는 기도하고 계셨다며 남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그저 잠자듯 데려가 달라고 기도 하셨다고 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마지막 소원은 까막눈인 당신이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꼭 편지로 남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간절함에 나도 모르게 도와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르신께서는 6.25를 겪으시면서 배움에 기회를 놓치신 것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나는 한글의 원리인 모음 11자 자음 17자부터 10칸 공책에 쓰면서 한글에 원리를 가르쳐 드렸고 방문할 때마다 낱말 카트와 받아쓰기 등 2년 동안 흰 종이가 깜지가 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했다.

 

어르신께서는 한글 공부가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들다며 빙그레 웃으신다.

 

그 노력의 결과 읍내에 나가시면 간판 읽은 재미와 버스 탈 때 당당함.

 

그리고 면사무소에 가시면 당신 이름을 떳떳하게 쓰는 것도 삶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감사해하셨다.

 

김 선생 드디어 내 손으로 아들에게 유서를 써 놓았다고 하시면서 두 세상을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어르신께서 쓰신 글에 이런 글이 있었다.

 

“아들아 잘 있자?”

 

“요즘 내가 미운 짓을 많이 하는 걸 보니 곧 니 아버지를 만나러 갈 것 같다”

 

“아버지가 심어 놓고 떠난 밤나무는 거름 한 줌 주지 않아도 철마다 토실 한 먹을 것을 주는디”

“엄마는 너희들한테 주고 갈 것이 없어 미안하구먼”

 

“가난한 집에 태어나 너희들 고생 고생만 시켰으니 못난 어미를 용서하거라”

 

“형제간에 우애 있게 잘 의지하고 살거라”

 

“내 아들아 사랑한다. 몸 성이 잘 지내거라”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쓰신 글을 보고 죽어서나 살아서나 자식 걱정인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다.

 

이렇듯 노인 맞춤 서비스는 어려움에 처한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작은 일부터 독거노인의 가족이 되어 주는 정서적인 일까지 하고 있다.

 

나는 마지막 어르신의 소원이자 한을 풀어 드렸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감사함에 가슴이 벅차다.

 

태양에 과녁을 두고 활시위에 인생을 걸고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실 줄만 아셨던 어르신들!

 

세월여류(歲月如流) 같은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삶은 숭고함이라는 단어 밖에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83세의 나이로 인내심을 깎듯 밤낮으로 연필을 깎아 마침내 소원을 이루셨던 청자 빛 맑은 이름에 김청자 어르신께 감사드리며 포기는 배추 세는 숫자라며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열정에 언제나 활짝 웃어 주시고 손을 잡아 주시는 어르신들께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을 위해 나는 이 길을 보람차게 걷고 있다.

 

낫 놓고 기역 자를 몰라 가뭄처럼 목이 마르셨던 어르신의 가슴을 씻어주듯 아침부터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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