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빌딩, 그 가장 높은 끝에서 여름을 떠나보내는 매미의 울음이 바람 속에 가늘게 흩어진다 저 매미는 외로움을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토해내고 있다 이 여름 끝자락을 붙잡으려는 아니,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깊어서일 것이다 제 짝을 찾지 못한 채 못내 아쉬움 품은 목청이 오늘따라 더 절절하다 구애의 소리 속에 스며 있는 노총각 매미의 처량한 생을 보라 그 울음의 마지막 고개를 넘을 즈음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도시의 유리창을 타고 스며들고 햇살은 빛을 덜어내어 하늘을 한층 멀게 한다 구름 그림자는 골목을 길게 끌며 발끝에까지 내려와 머물고 가을은 아직 문턱에 있으나 그 그림자는 이미 내 마음 깊숙이 내려와 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지우고 있었다
제 몸을 뒤집는 강물은 완강했다 찰랑거렸거나 차갑거나 단단했던 밀어를 계곡 밑으로 흘러보낸 지난여름 숲은 초록빛 뿌리의 연서를 바람에 실려 보냈으나 강물은 마침표도 없이 깊어졌다 행과 연의 문장들이 물결을 일으켜 연서는 젤리처럼 부드러워졌고 누군가 던진 돌에 파문의 집을 짓기도 하는 하류의 강물은 짐긴 지퍼의 견고함을 기억하고 싶어 세상에 연서를 뚸워 보내는 것이다 흘러야하고 쓰여 져야 하는 시대의 무성한 물줄기의 물음을 강은 펼쳐 놓았으므로 어둠에 구멍을 뚫은 별들이 쏟아질 때 밤의 시간은 휴식으로 유폐됐을 것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익어갈 것이라고 온 몸으로 다독이는 아침은 윤슬로 수천(水川)의 귀를 열어 강물의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기억해야할 시대의 낮은 소리를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려오면 부지런한 아낙네들 바쁜 손을 움직이며 들썩인다 여리여리하니 작은 모종들 두 개, 세 개씩 나뉘어 고랑 밭에 심어지고, 하늘이 심술부릴세라 굽어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밭고랑에 입맞춤을 한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바구니에 모종들은 얼굴을 내밀고 어서 나를 데려가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넓은 밭이 조금씩 조금씩 초록의 물결로 들어차면 시원한 빗줄기 한 바가지 힘차게 뿌려 주기 기다리며 하늘 한 번, 땅 한번 병아리 고개짓이 남사당패 상모 돌리듯 한다 여린 잎들이 가득한 밭에는 고라니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뛰어다니고 고라니를 쫓는 강아지 소리 비 내리는 고랑 밭은 어느새 새싹들의 아우성에 나뒹굴며 아낙네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설날 아침, 갓 지은 밥 냄새 사이로 묵은 기침처럼 침묵이 흘렀지요 어머니는 조용히 나물을 무치고 나는 옆에서 국을 데우며 서로의 손등만 바라보아죠 하고픈 말은 어느새 젖가락 끝에 걸려버리고 웃음은 익은 나물처럼 간을 맞추다 사라졌습니다 아이의 한마디, "할머니랑 엄마는 왜 말 안 해 ?" 그 순간, 깊게 쌓인 눈 위에 햇살이 스며들듯 오래된 울타리 하나가 스르르 무너졌습니다 가족이란 마음에 둘러친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참 많은 계절을 견뎌야 한다는 걸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서로 다르되 함께인 것, 그게 가족이라면 울타리란 언젠가 조용히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의 언덕이겠지요
소리 없이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조그마한 생명이 숨을 쉬며 허리를 편다 기차타고 내린 서천역에서 버스타고 달려온 송석 바닷가 질펀한 갯벌에서는 갈매리떼 끼룩끼룩 즐겁게 노래부르고 숨구멍을 내밀며 올라오는 동죽사이 무지개 되어 내려오는 물총들 밀려가는 썰물과 함께 바구니에 갈고리를 손에 든 아낙네들 질펀한 갯벌에 한 자리씩 자리하고 연신 움직이는 눈동자와 손들 한 손엔 갈고리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뻘 속에 보이는 동죽을 줍고 조금씩 쌓여가는 바구니를 물길에 흔들흔들 흔들어서 망태기에 넣어 넓은 갯벌 한자리 내어준다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에 저마다 흥얼거리며 힘든 한숨을 내뱉고 외지에서 온 객을 쳐다보는 눈에서는 서천의 보물 동죽을 자랑한다 한번 캐보라고 권유하는 손에 이끌려 들어간 갯벌에는 생명이 숨쉬고 우주가 빛나고 내 삶이 평온하다 하나씩, 둘씩 손에 들어오는 쾌감에 나그네도 아낙네도 갯내음에 힘듬도 노랫소리 되어 서천갯벌에 살포시 자리 잡고 내려앉는다
허공을 밟고 선 바오밥 나무를 보았다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잎 대신 줄기로, 줄기 대신 텅 빈 몸으로 중심을 잡고 선 나무 겹겹이 쌓인 모래바람으로도 제 속을 채우지 못해 죽은 자의 의식을 꽉 물고 무덤처럼 능선을 잡고 있었다 모래바람으로 휘어지는 허공은 능선과 나무사이 산 자의 족적을 찍듯 넓힌 숨을 한 줄씩 띄우면 말 없는 말들은 걷는 자리마다 푸르게 쟁여지는 생 그늘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모래바람으로 걷는 법을 아는 나무들 햇빛을 등뼈에 새긴 잎들은 칼날처럼 번득였고 어느덧 모래바람은 바오밥 나뭇가지에 죽은 자의 노래처럼 걸려있었다 맨발로 바오밥 나무의 그늘을 옮기는 허공은 한 음도 놓칠 수 없는 가지런한 모래바람의 리듬을 조율하며 먼 길을 걷는 중이었다
여명의 탯줄을 자르고 새벽잠에 빠진 귀뚜라미를 깨워 여행을 하고 싶다 목에 개줄 달아 앞세우고 어느 사막의 능선을 올라 장엄한 사막이 아침에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막여우는 귀뚜라미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내 뒤에 붙어 물이 없이 죽을 시간을 재겠지 방울뱀과 전갈이 우릴 기다린 댓가를 요구할 거야 그러면 지금껏 살아온 듯 돈이 없다 말 할거야 치렁치렁 일곱을 온몸에 달고 팔십 육년 막걸리 하나로 사막을 걸어가신 아버지 그리고 그 짐을 놓고 능선에서 가쁜 숨을 쉬며 말했지 없다 굽히지 말고 깡으로 살라고 방울뱀과 전갈 그리고 사막여우를 가까이하지 말라 하셨는데 정작 막걸리는 이렇다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주막 없는 사막을 어이 건너 갔을까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막걸리를 마시지 않아야 하다가 막걸리를 마시다가 사막을 본다 아버지가 걸어가신 황량한 사막을 보고싶다
밭고랑에는 아랫집 할머니 쪼그려앉아 무성한 잡초 쁩기에 구슬땀 아랑곳없다 느티나무 아래 그늘 옆집 할어니 손짓이 애탄다 돗자리끼고 물주전자 손에 든 채 녹음이 더 짙어가라 재촉하는 풀벌레소리는 농부의 일손에도 힘내라 응원한다 파랗게 솟아나는 들녁 보리베고 늦은 모내기 하는 윗집 아저씨의 농심에 희망이 넘친다
대나무처럼 곧은 절개를 자랑하며 하늘로 올라가더니 머리에 커다란 수술 달고 팔다리에 수염 나기 시작 한다 연노랑 수염이 검붉은 수염으로 자라나고 알알이 굵어져 몸집을 키우더니 살랑이는 바람에 춤을 추는 잎사귀 바스락 바스락 합창소리 아름답다 길게 늘어진 수염이 이제는 나를 데려가라 손짓하고 두툼한 가녀린 손끝에서 툭 끊어지는 소리 한겹 한겹 푸르름을 벗어내면 알록달록 아름다운 점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커다란 아궁이에 시뻘건 불을 친구삼아 바글바글 삶아주는 솥단지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사우나에 몸을 맡기며 맛있게도 익어간다 옥수수 수염차 사이에 찐득 쫀득 옥수수 수염차 한잔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신선이다 투박한 손들 사이에 영농한 아름다운 옥수수가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알알이 탐스러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그 작은 빛 보려 만고풍상 겼었다 울퉁불퉁 손님 작년 봄 땅에 묻고 안부가 여무는 동안 설렜다 1년 만에 햇살 퍼지는 길일 자궁 속 탯줄에 달린 아기처럼 삽과 괭이에 와르르 몰려나와 이슬 차던 해 닮은 얼굴 뙤약볕 내면에 익어갔을 풍경 가을 새의 체취에 감자 속살 말려 대지를 꿈꾸며 찬바람 음미하는 어머니께 두둥실 조각달 띄워 보내는 날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여름에 피어난 보랏빛 향연의 숲이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 자연휴양림 일원에서 펼쳐진다. 군은 장항맥문동꽃축제추진위원회와 함께 ‘여름에 피어난 보랏빛 향연의 숲’이라는 주제로 제3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를 맥문동꽃 절정기간에 맞춰 오는 28일 개막을 시작으로 3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축제는 오감을 느낄 수 있는 ‘맥문동을-듣다’, ‘맥문동을-보다’, ‘맥문동을-만지다’, ‘맥문동을-맡다·먹다’ 등의 주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막바지 뜨거운 여름밤을 만끽할 수 있는 로맨틱하고 열정이 가득한 공연이 펼쳐진다. ‘맥문동을-듣다’는 개막 당일인 28일에는 가수 유리 상자, 윤형주 등이 출연해 여름밤의 보랏빛 향연을 선보이고 29일에는 지역 내 시니어 모델들의 멋진 워킹 시연과 함께 지역 출신 가수 이승환, 강유진, 박민수 등이 출연하는 화려한 무대가 선보인다. 또 30일에는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과 함께 가수 웅산이 이끄는 재즈가 있는 낭만의 밤 ‘맥문동 재즈 페스타’가 펼쳐져 한 여름밤에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축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행사도 진행된다. ‘맥문동을-보다’는
둥근 것을 보면 각 잡고 사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모서리의 힘이 필요했으므로 각의 힘을 빌려 ㅁ처럼 사셨다. 때때로 달을 보면 먹먹해지는 날 먹먹함을 말아 올린 담배 연기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로 보내곤 했다. 얼 만큼 동그라미를 그려야 둥근 하늘이 될지 모른 채 ㅁ의 문을 열고 나가면 ㅇ를 만날 수 있는데 아버지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근 것들의 안부만 물어가며 그 흔적마저 지우고 사셨다. 태양이 오후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시간 미움이 마음이 되는 아니, 아니 마음마저 까맣게 놓쳐버린 날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판교면 시간마을(현암마을)이 예술 플랫폼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군은 내년 2월 28일까지 기획전시 및 공모 선정 작가전 ‘유토피아적 플랫폼의 경계’를 판교 시간마을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간마을 내 유휴공간을 예술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지난 6~7월에 진행된 전국 공모를 통해 총 83팀이 지원했고, 외부 심사를 거쳐 고보연, 고지은, 유기종, 이웅빈, 주기범, 허지예 등 6명이 최종 선정됐다. 작가들은 공간과 시간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해 3기에 걸쳐 전시를 선보인다. 1기 전시(8.1.~9.14.)에는 기획전시 작가 쑨지, 노동식과 함께 공모 선정 작가 이웅빈, 고지은, 유기종이 참여한다. 쑨지 작가는 미디어 설치, 노동식은 솜을 활용한 설치작업을 통해 공간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는다. 고지은, 유기종, 이웅빈 등은 각각 생태적 시선, 사진 매체, 공간 조형으로 주제를 풀어낸다. 2기 전시(10.1.~11.14.)는 허지예와 이웅빈이 참여하며, 이 기간 판교극장에서는 별도 기획전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9.2
어렸을 때 산이 울었다 모깃불 옆에 잠드는 졸음에 실려 은은하고 처량히 시집와서 굶어 죽은 며느리가 보릿고개 지나면 나와 운단다 아주 먼 데서 배고파 우는 구슬픈 징 소리처럼 엄니 가슴에서 산 울음 운다 배고프지 않아서는 들을 수 없는 울지 않는 산 포만감에 졸며 밤에 주저앉아 있다 아쉬울게 없는 요즘 산은 울지 않고 내 가슴만 쓸어 내린다
탱자꽃 새 하얗게 속눈섭을 새울 때 초록빛 사이사이 날아드는 작은 새들 울언니 시집가던 날 탱자 나무 울타리에 쪼그려 앉아 눈썹이 젖도록 서럽게 울었지 먼곳으로 둥지 찾아 떠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한숨 짓던 아버지 모습 아버지 굳은 등짝에 초록빛 가시가 듬성 듬성 돋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