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도영의 시로 전하는 이야기] 모시 올 사이로
모시 꽃 피고 나면 절정에 오른 매미 울음도 차라리 시원한 여름이다 모시밭길 바람 벗겨 빨랫줄에 널어놓고 흔들리던 불안에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 모시 한 필 팔러 나가 바람 따라서 오지 않는 남편 기다린 지 반평생 반달로 사시다가 이제는 반달 되신 어머니 모시 덤불 무릎으로 끌어안고/삼베처럼 살았어도 당신 생의 속껍질은 하늘빛이었다고 모시 포기 나누듯 자식새끼 나눠 보내고 모시송편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한 서러움에 모시 꽃으로 다시 피는 어머니의 청춘이여! 모시 올 사이로 살아생전 모시 적삼 입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한산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태모시를 앞니로 쪼개는 일이 하늘빛을 쪼개는 일이라고 믿으시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난에 침을 바르고 민둥산처럼 반들반들해진 쓰리디쓰린 무릎을 곧추세우고 그저 운명처럼 한세월을 사셨다. 그랬어도 가난은 모시 광주리에 쌓인 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고 차라리 모시 방 뜬소문들은 7월에 더위를 한바탕 웃음으로 식혀주었다. 온몸을 사르며 밤낮으로 번지는 통증을 뒤로하고 가마솥에 모시풀을 찌고 솥이 작으면 모시풀 키만큼 비닐로 칭칭 감아 찌고 삼기를 한나절, 삶은 모시풀을 빨랫줄에 널고 속 껍질을 벗겨내고
- 김도영 칼럼위원(서천 시인협회 회원/신문예 신춘문예 등단)
- 2024-06-02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