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늘 낮은 데서 먼저 누워 세상의 무게를 견딘다 말보다 깊고, 슬픔보다 먼저 젖는다 우리가 걷는 땅 아래엔 말 없이 흘러내리는 울음이 있다 한 번도 닿지 못한 뿌리들이 조용히 엇갈려 스며든다 분단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입술에서 나왔지만 그 여운은 흙 깊은 곳에 스며 강물의 길을 바꾸고 지붕들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내 시선은, 가장 낮은 틈에 머문다 가장 깊이 파인 골짜기에서 먼저 피어나는 꽃을 철조망이 휘어진 자리마다 돌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순한 생명을 흙은 늘 누구의 선도 기억하지 않는다 비는 구분 없이 젖게 하고 바람은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는다 통일은 지도 위에서 이뤄지는 약속이 아니라 흙이 매일 보여주는 일처럼 서로 스며들고, 엉기며 어디서부터였는지 잊히는 일이다
높은 빌딩, 그 가장 높은 끝에서 여름을 떠나보내는 매미의 울음이 바람 속에 가늘게 흩어진다 저 매미는 외로움을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토해내고 있다 이 여름 끝자락을 붙잡으려는 아니,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깊어서일 것이다 제 짝을 찾지 못한 채 못내 아쉬움 품은 목청이 오늘따라 더 절절하다 구애의 소리 속에 스며 있는 노총각 매미의 처량한 생을 보라 그 울음의 마지막 고개를 넘을 즈음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도시의 유리창을 타고 스며들고 햇살은 빛을 덜어내어 하늘을 한층 멀게 한다 구름 그림자는 골목을 길게 끌며 발끝에까지 내려와 머물고 가을은 아직 문턱에 있으나 그 그림자는 이미 내 마음 깊숙이 내려와 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지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