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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진달래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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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긋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절입니다. 달래와 냉이, 미나리와 두릅, 쑥, 그리고 딸기와 매실. 그 이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끝에는 봄바람이 내려앉습니다. 봄의 향긋함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그 시절, 그 봄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할머니의 저녁 일과는 항상 같았습니다. <6시 내 고향>부터 시작해서 <러브 인 아시아>/<우리말 겨루기>/<한국인의 밥상>을 거치고, 일일 연속극과 뉴스를 잠시 본 후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생로병사의 비밀>로 하루를 마무리하셨습니다. ‘본다’기보다는 그저 ‘틀어두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6시 내 고향>이나 <한국인의 밥상>은 제철 음식의 향연이었습니다. 화면 너머의 극진한 향연은, 화면 밖에 있는 사람조차 잔치에 머무르고 싶게 했습니다. 먹어본 음식에는 침이 고이고, 처음 보는 음식에는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제철 음식들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지. 입이 짧던 저조차도, 그 영상들을 보면 기분 좋게 배를 곯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는 입맛은, 우리 일상에의 변화를 알리는 의식이었습니다. 그 시절 할머니와 저, 우리의 일상에 이는 유일한 변화는 그것뿐이었습니다. 저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감각은, 변하지 않는 저녁 일과에 달려드는 변화구였던 것입니다. 저는 미숙한 투수였고, 할머니는 노련한 타자셨습니다. 무엇이든 뚝딱 해주셨습니다. 만일 주재료가 없다면, 다음날이라도 꼭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방송에 나온 보라색 꽃이 얹힌 화전을 통해 봄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이 어느새 봄날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배를 곯고, 입맛을 다신 끝에 “먹고 싶다”고 말하며 변화구를 던졌습니다. 월요일이었는지, 화요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변화구가 한참동안 공중에 매달려 있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분명히 우리 할머니는 그 변화구를 칠 텐데, 그게 내일이려나, 모레이려나.

 

토요일 아침, 부엌에는 파란 봉투와 하얀 포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에나 꺼내는 커다랗고 동그란 전기팬이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예감을 틀리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타자는 변화구를 쳐낼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었습니다. 부엌 옆 베란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은 분명 봄의 정령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파란 봉투에서 진달래꽃을 꺼내셨습니다. 갈색 채반 위에 예쁜 자태의 꽃들을 가지런히 올려두셨습니다. “이건 어디서 땄어요?”, “이걸 다 먹을 수 있어요?”, “안 씻어도 되는 거예요?”. 별별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마다 답이 돌아오긴 하였는데, 의미는 흘려두고 할머니의 목소리만 담아냈습니다. 그저 할머니의 곁이라는 게 달가웠습니다.

 

이윽고 하얀 포대에서 퍼낸 찹쌀가루가 은색 양푼에 담겼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옆에 앉아 그의 구호를 기다렸습니다. 구호에 맞게 소금이나 설탕을 양푼 위로 털어내었습니다. 할머니의 조금과 저의 조금은 아주 달랐습니다. 할머니의 조금은 한 국자였고 저의 조금은 한 꼬집이었습니다. ‘할머니, 이만큼이요? 더요?’라는 말이 쌓여갔습니다.

 

반죽을 치대고, 동그랗게 빚고, 전기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자글자글 끓는 소리에 맞춰 하얗고 동그란 반죽을 올렸습니다. 할머니의 맨손은 기름 위의 반죽을 납작하게 눌러내고, 그 위에 진달래를 얹길 반복했습니다. 채반 위에 차곡차곡 화전이 놓여갔습니다. 마무리는 설탕을 솔솔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생애 첫 화전, 누르스름한 보랏빛의, 쫄깃하고 달콤한 봄의 맛이었습니다. 그건 단언컨대, 홈런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고전문학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덴동어미 화전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실 때였습니다. 학부생들에게 화전을 먹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을 하시고, 화전 놀이에서 먹던 화전에 대해서, 조선시대 여인들의 휴식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양반들의 유흥과 여유가 담기는 다른 화전가들과 달리,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간 여성의 <덴동어미 화전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순간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변화구를 능숙하게 쳐내던 할머니의 솜씨가, 의도치 않게 삶에 의해 훈련된 것이라는 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빚고 구워낸 것은 비단 화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아마, 당신의 속 쓰린 생애, 볕 들지 않던 자신의 봄날을 지져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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