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잘 먹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새로운 음식’이라는 표현보다 ‘낯선 음식’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아이이었습니다.
박대나 조기에 밥, 열무김치에 밥, 계란찜에 밥, 김에 밥 그것도 아니면 누룽지나 깨죽 그리고 크림스프나 과일만을 찾았습니다. 깨작깨작, 아주 조금만 먹던 탓에 어른들의 걱정을 단숨에 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자라면서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을 다니며 ‘낯선 음식’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음식’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자주 의식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편식하는 모습이 흠이 될까봐 먹는 체한 것이 식도락의 재미를 깨워준 것입니다.
어느새 식도락의 재미는 자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먹으면, 꼭 집에서 제 방식대로 만들어 식탁을 채워갑니다.
특히, 많은 음식 중에서도 식탁에 자주 오르는 것은 파스타입니다. 가지각색의 파스타 모양, 가지각색의 소스, 가지각색의 토핑 덕분에 재미가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토마토 스파게티를 차츰 먹기 시작하였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크림 스파게티를 조금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서야 메뉴판에서 파스타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파스타를 찾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겨울, 최고의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맛보았습니다. 가족끼리 여행으로 간 오키나와의 선술집에서였습니다. 너무도 단순한 그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왜 맛있었던 것인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래도록 고민하였습니다.
허기 때문에 맛있게 느낀 것일 수도, 야끼소바 면의 전분기 때문에 맛있게 느낀 것일 수도, 여행이라는 환경 때문에 맛있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며 합리적인 이유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 주 저녁으로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남편과 담소의 주제는 단연 ‘스파게티’였습니다.
우리 부부가 공유하고 있는 스파게티의 연혁(가령 임신했을 때 사온 ‘스파게티’, 연애할 때마다 먹은 ‘스파게티’)을 시작으로, 각자의 사연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스파게티의 맛과 먹는 방법(가령 학교 급식으로 나온 ‘스파게티’, 스푼과 포크를 이용해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 먹는 방법을 알게 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자신만이 아는 스파게티에 대한 기억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렇게 스파게티와 관련된 가장 오랜 기억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며 물꼬를 트면서도 머뭇거렸습니다. 어렵사리 들춰낸 바로 그곳에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던 때의 토요일, 6학년이던 언니는 3교시가 끝나자마자 2학년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올려다본 언니의 얼굴은 유난히 빨갰습니다.
반팔티 아래로 늘어뜨린 팔에는 하얀 플라스틱 포크가 꽂힌, 얇은 휴지를 뚜껑으로 한 종이컵이 들려있었습니다. ‘너, 먹어.’라는 세 글자와 남은 건 축쳐진 휴지, 그 아래 바짝 달라붙어 있는 토마토 스파게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는데 음식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 휴지 조각이 면 위에 붙어 버린 이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빨갛고 새콤한 냄새가 나는 이 음식이 과연 맛있을지. 화장실 비품함 위에 (최선을 다해) 가지런하게 고민을 올려두었습니다.
몇 번 주춤하고는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와 교실로 향했습니다.
언니와 하교하는 길, 울긋불긋해진 흰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있었습니다. 하교하는 15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한낮의 태양은 너무도 뜨거웠습니다. 걸어가는 길이 너무 뜨거운 탓이라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언니를 향한 감정 중엔 죄책감이 있는데, 그것의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러 언니의 생일에 상을 차리기도 하고, 별일 없이 음식을 만들었다며 챙겨 가라고 하는 동생이길 자처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언니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가장 좋아하는데, 선술집의 이 스파게티가 여지껏 먹어온 것 중 제일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나 파스타 잘 만들잖아. 이거 내가 만들어줄게.”라며 덧붙였습니다. 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좋다고 답했습니다. 언니와 함께 먹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정말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