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시로 전하는 이야기] 모시 올 사이로

  • 등록 2024.06.02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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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꽃 피고 나면

 

절정에 오른 매미 울음도 차라리 시원한 여름이다

 

모시밭길 바람 벗겨 빨랫줄에 널어놓고

 

흔들리던 불안에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

 

모시 한 필 팔러 나가

 

바람 따라서 오지 않는 남편 기다린 지 반평생

 

반달로 사시다가 이제는 반달 되신 어머니

 

모시 덤불 무릎으로 끌어안고/삼베처럼 살았어도

 

당신 생의 속껍질은 하늘빛이었다고

 

모시 포기 나누듯

 

자식새끼 나눠 보내고

 

모시송편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한 서러움에

 

모시 꽃으로 다시 피는 어머니의 청춘이여!

 

모시 올 사이로 살아생전 모시 적삼 입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한산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태모시를 앞니로 쪼개는 일이 하늘빛을 쪼개는 일이라고 믿으시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난에 침을 바르고 민둥산처럼 반들반들해진 쓰리디쓰린 무릎을 곧추세우고 그저 운명처럼 한세월을 사셨다.

 

그랬어도 가난은 모시 광주리에 쌓인 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고 차라리 모시 방 뜬소문들은 7월에 더위를 한바탕 웃음으로 식혀주었다.

 

온몸을 사르며 밤낮으로 번지는 통증을 뒤로하고 가마솥에 모시풀을 찌고 솥이 작으면 모시풀 키만큼 비닐로 칭칭 감아 찌고 삼기를 한나절, 삶은 모시풀을 빨랫줄에 널고 속 껍질을 벗겨내고 앞니로 쪼개고 무릎에 침을 발라 비벼서 실을 만들고 베틀에 걸터앉아 밀려오는 졸음과 허기를 달래가며 모시 한 필을 만들려면 침이 세 말이오, 실낱같은 초롱불 기름이 석 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모시는 인간 승리의 작품이며 어찌 보면 아낙네들의 시집살이에 한이 서린 옷이다.

 

모시의 유래가 1,500년이나 된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직물인가 신이 인간에게 준 귀한 옷감임이 분명하다.

 

속껍질을 벗긴 모시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하늘빛을 지녔다.

 

그래서일까 모시의 주산지인 서천사람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듣는다.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은 모습과 근면한 모습이 그러하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나셔서 생전에도 모시옷을 많이 입으셨고 한다.

 

흰색의 주는 의미에 알 수 있듯 모시옷은 부정을 멀리하고 청빈낙도의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입었던 옷으로 이상재 선생님께서 즐겨 입으신 것을 보더라도 모시옷은 올곧은 사람들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모시옷을 입어보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고 상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윤달이면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모시옷을 수의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만큼 모시는 5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수의 옷으로는 가장 좋은 옷감이다.

 

이렇게 훌륭한 직물이 옷감 시장에서 밀리는 이유는 경쟁력과 가격 때문일 것이다.

 

세계의 직물 시장은 값싼 폐플라스틱을 재생해서 옷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패션 의류 업계는 플라스틱 생산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단기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자명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친환경적이고 지구까지 살릴 수 있는 모시라는 직물을 세계에 알릴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대량생산으로 모시옷의 가격이 지급보다 저렴해진다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매년 6월이면 한산모시 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모시 축제의 화려함은 더 해지고 있지만, 전국 축제라기보다 지역축제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어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다는 생각이 듣는다.

 

한산모시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세계인들에게 직접 한산모시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을까? 각국에 영향력 있는 외국인 100인을 선정해 패션쇼를 열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입어보고 만져보면 누구나 모시의 우수성을 알게 될 것이다.

 

한산면 구동리에 모시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총사업비 32억을 투입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면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에 모시만큼 걸맞은 적합한 섬유가 있겠는가?

 

아시아 국가 고위층을 상대로 모시의 통풍성과 습기 발산이 빠르고 땀을 잘 흡수하며 고결함과 기품까지 갖춘 직물이라는 점, 친환경 직물로 10년 이상 입어도 빨면 빨수록 새 옷 같은 옷이란 점 등등 모시의 장점을 살린 옷이 널리 실용화된다면 한산모시는 분명 직물 시장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란 생각을 한다.

김도영 칼럼위원(서천 시인협회 회원/신문예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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