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구병대 선생은 고향 시초면 신곡리(옛 龜亭里)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장마철인 듯 해질 무렵 그칠 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손님과 잠시 머무는 동안 조국의 국권을 빼앗긴 상황을 생각하며 당나라 고사 헛된 꿈이 되어버린 남가일몽(南柯一夢)에 빗대어 시를 남겼다. <편집자 주>
◯ 구암 丘秉大(구병대) 선생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해 질 무렵에 산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서쪽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와 내린 비로 물과 연기로 가득 채운 시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집에 있는 어린아이는 글을 익혀 능히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모든 손님이 참 잘한다고 칭찬하며 어여뻐 하고 있다.
구암 선생의 이루고 싶은 꿈의 자연 속의 그림과 같이 매화꽃 피고 정원에 대나무를 심고 겹쳐진 대문을 달아 놓은 집에서 살기를 꿈꾸어 왔다.
많은 비가 오는 동안 홀연 잠깐 생각해보니 뜰 앞 나무 남쪽가지 아래에서 살고 있던 개미의 보금자리가 많은 빗물에 잠겨 허물어졌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같이 조국도 서구 열강의 외세에 국권이 상실되어 쓰러지고 있으니 그간 노력하여 이루어 놓은 노력이 헛된 일장춘몽이 되어버렸구나며 한탄하고 있다.
당(唐)나라 때 이공좌(李公佐)가 저술한 『남가기(南柯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순우분(淳于棼)이 꿈을 꾸는데, 괴안국(槐安國)으로 들어가 그 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들고 남가태수(南柯太守)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후에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갔다가 패하고, 공주도 세상을 떠난다.
게다가 국왕의 시기와 의심을 받아 축출된다.
이에 이르러 꿈을 깨고 보니, 대괴안국(大槐安國)이란 뜰 앞 홰나무 아래에 있는 개미굴이고, 남가군(南柯郡)이란 홰나무 남쪽 가지 아래에 있는 다른 작은 개미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부터 ‘남가일몽(南柯一夢)’은 한바탕 헛된 꿈 또는 헛된 즐거움에 비유되는 말로 쓰였다.
<精選 龜巖遺稿 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