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한자로 ‘放學’이라 씁니다. 놓을 방(放)에 배울 학(學). 배움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영어로는 Vacation, 프랑스어로는 Vacances. 두 단어 모두 라틴어 vacare(비우다)에서 태어났습니다.
방학은 하루를 잠시 비워 두고, 다시 채워 가는 시간인 셈입니다. 하지만 집은 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학교의 시간이 비워진 자리에는 남편의 발소리와 아이의 말소리가 들어섭니다.
아침은 조금 늦어지고, 점심은 더 부지런해지고, 저녁은 한층 소란스러워집니다. 방학의 집은 온종일 사부작 움직임들로 차오릅니다.
그리고 한바탕 비가 쏟아지면, 방학의 집은 더욱 가득 차버립니다. 비 오는 날의 낮고 눅눅한 공기는 소리를 멀리 보내지 못합니다.
남편의 발소리와 아이의 말소리, 사부작 움직임들은 공연장의 메아리처럼 천장과 벽 사이를 오래 맴돕니다. 빗소리까지 더해지면 방학의 집은 작은 공연장처럼 빈틈없이 울립니다.
오키나와의 아쿠아리움, 마카오의 서커스, 베트남의 수중극장, 호주의 오페라하우스. 제 기억 속 공연장들은 하나같이 넓었고, 높았고, 오래 울렸습니다.
목소리 하나가 공연장을 몇 번이나 돌아올 만큼 울림이 길었습니다. 신기한 건, 그곳에서는 탄성을 삼킨 침묵마저도 오래도록 공연장을 맴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 내리는 날, 남편과 아이를 기다리며 혼자 있는 집은 꼭 그런 공연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침묵의 울림이 깊을수록 손은 더 바빠졌습니다.
제가 혼자 채울 수 있는 무대는 식탁뿐이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유일한 두 관객을 위해 공중 곡예사처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무대 위에 가장 먼저 오르는 것은 파피요트라는 작은 마술이었습니다.종이 호일 위에 대구와 새우, 조개를 올리고 레몬과 타임, 채소를 넉넉히 더합니다.
소금과 후추,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종이호일을 단단히 감싸 오븐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물 한 방울 보태지 않아도 재료는 저마다 품고 있던 수분으로 함께 농익어 갑니다.
재료들은 저마다 제 향과 맛을 잃지 않은 채, 같은 열기 안에서 서로의 수분을 나누며 깊은 맛을 완성해 갑니다. 오래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서로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사랑이라는 온기를 오래 품고 살아갈수록 함께 무르익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파피요트를 함께 열어야, 서로에게 가장 깊은 맛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조용한 조리법대로 오래도록 함께 무르익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종이 호일을 식탁 위에 올립니다.
칼끝으로 살짝 가르는 순간, 새하얀 수증기와 바다 향이 한꺼번에 피어오릅니다.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새하얀 비둘기가 날아오르듯, 빗소리마저 타닥타닥 박수를 칩니다.
유능한 곡예사는 호응이 끊길세라 서둘러 다음 순서를 준비합니다. 이어지는 무대는 아코디언 포테이토라는 작은 곡예였습니다. 감자에 촘촘히 칼집을 넣되 끝내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잘한 칼집 사이로 버터와 꿀, 마늘을 꼼꼼히 발라 오븐으로 보냅니다. 뜨거운 공기가 스며들자 감자는 천천히 몸을 펼쳐 냅니다. 공중 곡예사가 허공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오르는 모습과 꼭 닮았습니다.
위쪽은 바삭하게 갈라져 피어나지만, 아래쪽은 끝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방학 동안 아이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규칙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껏 늦장을 부립니다.
그렇다고 가족이라는 단단한 뿌리까지 놓아버리지는 않습니다. 자유롭게 펼쳐지되 끊어지지 않는 것. 제멋대로인 날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다운 균형이야말로, 비 내리는 공연장에서 아이에게 건네고 싶었던 어른의 조리법이었습니다.
마술과 곡예가 끝나자 공연장은 어느새 식탁이 되었습니다. 파피요트에서 피어오르던 바다 향은 천천히 접시 위로 내려앉고, 바삭하게 몸을 펼친 감자는 하나둘 사라져 갑니다.
창밖에서는 비가 쉬지 않고 창문을 두드립니다.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천천히 음식을 나누며 사소한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내일은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안도감과 방학이기에 가능한 느긋함이 빗소리 사이사이를 채워 갑니다. 공연이 끝난 무대에는 박수 대신 웃음만 오래 남았습니다.
문득 방학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려놓고, 비워 두는 계절. 하지만 비워 둔 학교의 자리는 가족으로 채워졌고, 비워 둔 하루는 웃음과 식탁의 온기로 차올랐습니다.
비워 두었기에 더 깊이 채워지는 계절. 올여름의 빗소리와 따뜻한 식탁을 마음속에 조용히 접어 둡니다.
다시 분주한 계절이 찾아와도, 올여름 식탁의 온기는 오래도록 제 안을 하뭇하게 데우며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