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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바닷마을의 플럼 크럼블 코블러(Plum Crumble Cobb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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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닷마을이 내 마을이기만을 바라던 때를 건너왔습니다. 누군가는 떠날 채비만을 하는, 또 누군가는 잃을 궁리만을 하는 이 마을이, 나에게는 숲속 오두막의 다락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혼자만 알고 싶을 만큼 아까운 곳이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난 지금은, 내 마을이 우리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비가 편지를 물고 오듯, 이곳에서는 바다를 한입 가득 머금은 바람이 비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물고 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오일장은 계절을, 아니 제철을 한 아름 품고 찾아옵니다.

 

장의 모퉁이에만 닿아도 오늘의 계절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바람에 바다의 눅눅함이 스미기 시작한 지금, 복숭아와 포도, 자두와 매실이 한창 제철입니다.

 

바다를 곁에 둔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잰걸음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헤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흘이 지났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문득 실감한 시간의 흐름은 제 걸음마저 재촉했습니다.

 

장터 어귀에 이르기도 전에, 갓 튀겨낸 뻥튀기의 고소한 냄새와 한여름 열기에도 지지 않는 호떡 기름의 달큰한 냄새가 마중을 나오는 듯했습니다.

 

천막 아래에 즐비한 계절이 피워낸 것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같은 여름 햇살 아래에서도 참외는 노랑을, 수박은 초록을, 살구는 주황을, 복숭아는 분홍을, 매실은 연두를, 포도는 보라를 입는다는 게 여전히 신기했습니다.

 

떨이로 몇 자루씩 놓인 자두는 다홍과 빨강 사이를 오갔습니다. 다홍빛은 손만 닿아도 금세 터질 듯 물렀고, 붉은빛은 아직 며칠쯤 더 단단히 여름을 동여매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떨이의 싼값과 색만으로 익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는 호기는, 자두 한 자루를 온전히 책임지는 일로 돌아왔습니다. 여름을 너무 쉽게 안다고 여긴 오만은, 여름이 제때를 얼마나 짧게 허락하는지 몰랐던 착각이었습니다.

 

다홍도, 빨강도 소용없었습니다. 자두는 이미 여름을 끝까지 품은 채, 칼끝만 닿아도 속절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여름은 색의 향연이기에, 색으로 읽히는 계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색보다 빠르게 익어가고,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흘러내리는 계절이었습니다.

 

이미 제철의 끝에 다다른 자두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여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색을 입히고, 끝내 과일을 익혀 낸 여름의 최후에 예의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여름이 익혀 낸 자두를 손질합니다. 칼을 넣을 때마다 불그스레한 껍질 따로, 노르스름한 과육 따로 힘없이 벌어집니다. 제철을 지나온 시간은 단단함 대신 무른 향을 남겼습니다.

 

잘게도 썰고, 굵직하게도 썰어봅니다. 무너지는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그 위로 레몬 껍질을 갈아 내립니다. 레몬즙 몇 방울을 영롱하게 떨어뜨립니다. 자두 위에는 여름의 햇살과 빗방울이 함께 내려앉은 듯합니다. 여름은 햇살과 비 한 줄기로도 무지개를 빚어내는 계절입니다.

 

이미 여름을 끝까지 품어버린 자두라면, 작은 무지개 하나쯤은 피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설탕은 자두의 신맛을 달래고, 시나몬은 여름 끝자락의 씁쓸함을 살짝 보태줍니다. 자두가 저마다의 맛을 받아들이는 동안, 버터는 오븐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향을 피워냅니다.

 

집 안에는 금세 여름과 빵집의 냄새가 뒤섞입니다. 바닷바람까지 창을 넘어 들어오면, 부엌은 어느새 장터에서 몇 걸음 떨어진 또 하나의 여름이 됩니다.

 

밀가루와 설탕,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그리고 우유를 슬슬 섞습니다. 성급하게 뒤섞으면 퍽퍽해지고, 너무 오래 만지면 단단해집니다. 사람의 마음도, 반죽도 적당한 손길을 만나야 제 모양을 찾아갑니다.

 

차가운 버터와 땅콩버터를 넣고 손끝으로 비벼 크럼블을 만듭니다. 꼭 갯벌의 작은 게가 모래알을 한 알 한 알 모으듯이 말입니다. 손끝에서 태어난 작은 부스러기들은 여름 위에 내려앉을 준비를 합니다.

 

녹은 버터 위에 자두를 담고, 반죽을 붓고, 마지막으로 크럼블을 아낌없이 올립니다. 어릴 적 읍내 케잌마차 제과점에서는 소보로가 가장 두꺼운 빵을 고른다며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유년의 작은 손이 크럼블을 한 줌 더 얹고야 맙니다.

 

오븐이 돌아가는 소리, 빵 굽는 냄새, 갈매기 우는 소리, 여름 바다 냄새. 허무함을 안겨주었던 장날의 자두가 여름의 소리를, 여름의 냄새를, 여름의 맛을 만들었습니다.

 

오일장이 서고, 제철 과일이 떨이로 쌓이는 바닷마을의 여름. 그 여름 속에서 제 유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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