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땡볕은 붉다.
땡볕의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온 몸으로 맞아야하는 밭작물들이 견디고 있다.
비인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수로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불길을 뚫고 일어선 흰참깨꽃이 환하다 못헤 맹렬하다.
한여름의 땡볕을 극복하려고 참깨 씨를 꽉 깨문 씨통이 대견하다. 우리네는 어떨까.
농촌의 특성상 어르신들의 여름은 지루하도록 가혹하다.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신체적 불편이 그렇고 또는 홀로 혹은 개나 고양이와 지켜내야 하는 외로움이 더더욱 그렇다.
지역사회의 농촌은 한계가 있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에게 한 편의 전화라도 받는 것이 이제는 즐거움樂이 될 나이.
나 역시 일을 하고 있어 업무상 타동네 어르신들을 자주 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땡볕 여름을 건너는 법을 잘 전하진 못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돌아보고 싶은 것은 아직 나에게도 팔순의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동네를 돌아 나오는데 장마에 대비한 공사가 여기저기 진행 중이다.
지금이 장마인데 부디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도시가 도시를 연결하는 작업으로 첫걸음이 도로개설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도로의 폭이 좁고 구부러져 비효율적인 구간이 잔존한다.
새로 나는 도로를 현실적으로 설계, 공사를 하다 보니 구도로는 뒷길이 되고 새로 생겨나는 길에 비해 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여름을 나는 방법을 얘기하는데 왠 도로일까? 할 수도 있겠으나 자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어르신들에겐 길도 불편함의 하나일 수 있겠다.
오후의 땡볕은 더욱 붉다. 뜨거울 정도를 지나 따갑기까지 한다.
잠시 나무 그늘아래 차를 세우고 다음 내방할 어르신 집에 자료를 들추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관여치 않고 일하려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차 문을 열고 나가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어린 고양이가 엄마를 찾아 나섰는지 두리번거리며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다.
에궁, 어쩌다 이 더위에 길을 잃었누?
농촌이라고 해서 모든 어르신만이 우리가 챙겨야하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어린 고양이처럼 꽃으로 피어난 아이들도 불볕더위는 마찬가지다.
불길에 데일 것은 어른, 아이 가릴 수 없으니 마을에 적은 수의 아이들이어도 우리가 돌아봐야할 것이다.
무더위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나가야 하는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있으면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잠시 차를 세워 함께하기를 바래본다.
나무아래 그늘이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기울어 차를 비켜서고 있다.
어쩐지 뜨겁더라니! 차를 몰고 다음 어르신 집으로 향하는데 하우스가 활짝 열려 있다.
아는 어르신 댁이어서 지나는 차에 힐끗, 돌아본다.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 참외 순을 정리하고 계신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작은 물병 하나를 들고 들어가 본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얼굴을 감싼다. “어머니! 이 더위에 뭐하세요?” 깜짝 놀라신 듯 어르신은 앉은 채 뒤를 돌아본다.
“아이고 우짠 일이데에” 이 더위에 열사병이 걱정된다며 물병을 건네자 냉기가 급하셨던지 반병을 들이키신다. 다행이다.
먹고 쉬고 놀 수만은 없으니 어르신들은 하루 조금이라도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며 하우스에 들어가시는 모양이다.
바깥의 온도가 30도를 상회하니 하우스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문이 닫혔든지 열렸든지 지나는 길이 있다면 잠깐의 관심을 가져주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있듯 모두가 소중한 것처럼 계절에 민감한 것이 사람인 것 같다.
어르신들도 아이들도 불길
앞에 온전할 순 없다. 우리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고향이지만 농촌에 내려 온지 몇 해가 지났어도 왠지 생경하거나 아직 낯선 것은 객지 생활의 티를 벗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지방자치의 시대에 서로 함께 살아가는 길은 우리가 되는 길이다.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보고 사랑을 가지고 감싸 챙길 때 농촌의 삶도 아궁이만큼 따듯하고 환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