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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비석에 피어난 700송이의 헌화, 서천 보훈공원 ‘살아있는 역사의 숲’으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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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주의 벗고 일상으로 스며든 ‘보훈’… 고사리손부터 백발 노병까지 5일간의 뜨거운 교감
‘미래세대 교육의 광장’으로 진화… 서천군이 제시한 ‘일상 속 보훈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

 

[sbn뉴스=서천] 홍영택 기자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잊히고, 일상과 단절된 추모는 결국 화석처럼 굳어버린다.

 

호국보훈의 달, 흔히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치러지던 추모 행사의 틀을 깨고 충남 서천군이 묵직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보였다.

 

지난달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서천군 보훈공원에서 열린 ‘2026년 군민 헌화·참배주간’은 단순한 의식을 넘어, 과거의 영웅들과 미래의 주역들이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거대한 ‘세대 교감의 장(場)’이었다.

 

6·25전쟁 제76주년을 맞아 700여 명의 군민이 다녀간 이 특별한 5일은, 보훈(報勳)이 더 이상 1년에 단 하루 묵념으로 끝나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웅변했다.

 

이번 참배주간에서 가장 눈부셨던 장면은 단연 차가운 충혼탑 앞에 선 백발의 참전용사들과 아이들의 만남이었다.

 

서천군 8개 보훈단체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로 일일 해설사를 자처하며 보훈공원과 현충시설 곳곳을 누볐다.

 

교과서 속 텍스트로만 전쟁을 배우던 마동초등학교 학생들과 관내 어린이집 원아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눈빛은 노병들의 생생한 증언 앞에서 호기심을 넘어선 벅찬 경외감으로 반짝였다.

 

훈장을 단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피 묻은 능선의 기억과 전우를 향한 그리움은, 그 어떤 역사 수업보다 강렬한 울림을 아이들의 가슴에 새겼다.

 

타지에서 먼 길을 달려온 6·25 전사자 유가족들의 뜨거운 눈물이 더해지며, 보훈공원은 슬픔을 넘어선 숭고한 치유와 통합의 공간으로 승화되었다.

 

성공적인 행사 이면에는 묵묵히 땀방울을 흘린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있었다. 영웅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말과 구호가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의 실천으로 시작됐다.

 

행사에 앞서 특수임무유공자회 서천군지회, 서천지역자활센터, 서천군재향군인회 회원들은 보훈공원과 충령사 일원에서 대대적인 제초 작업과 환경정비 봉사활동을 펼쳤다.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고 비석의 먼지를 닦아내는 이들의 헌신은, 국가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에 대한 가장 예의 바르고 진실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영웅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작은 실천과 연대에서 출발한다는 진리를 지역 사회 전체가 몸소 증명해 낸 것이다.

 

군의 이번 행보는 보훈 시설이 나아가야 할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한다.

 

일상과 동떨어진 채 1년에 한 번 문을 여는 성역(聖域)이 아니라, 언제든 군민들이 찾아와 거닐고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열린 광장’으로의 진화다.

 

유재영 부군수는 “보훈공원이 군민과 미래세대가 함께 찾는 추모와 교육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라며 공공 공간의 가치 확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상무 서천군보훈단체협의회장 역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이 후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보훈문화 확산에 힘쓰겠다”라고 화답하며,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마땅한 책무를 다짐했다.

 

76년 전, 이름 모를 고지에서 쓰러져간 젊은 청춘들의 피와 땀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일상의 뿌리가 되었다.

 

지난 5일간 서천군 보훈공원 충혼탑 앞에 쌓인 700송이의 헌화는 단순한 애도의 표상을 넘어,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군민 700명의 단단한 약속이다.

 

서천에서 피어난 이 ‘일상 속 보훈’이라는 아름다운 씨앗이, 대한민국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정신적 유산으로 만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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