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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사바소바와 사랑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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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 열여섯의 아이들과 계절을 읽었습니다.

 

문학 작품 속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몇 번이고 펼쳐 보았는데, 아이들 사이를 지나온 문장들은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고도 선명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글쓴이가 누구든, 또 어느 계절을 묘사하든 문학 작품은 끝내 사랑으로 번져갔습니다.

 

저는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모아보고 또 그간의 배움을 돌이켜보아도, 문학은 여실히도 매번 사랑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늘 문학의 화두였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이자 절정이며, 끝내지 못할 결말이었습니다.

 

문학이 지금까지도 맥을 이어오는 것은, 사랑이 아직 멸종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아무리 사랑이 메마른 시대라고 해도, 저마다의 가슴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 내재해 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납니다.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달라질 때마다 문장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또 사랑은 양면적이라, 어느 때는 슬픔류(類)를 또 어느 때는 기쁨류(類)를 품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그렇기에 문학은 끝도 없이 새로운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5월은 문학 작품 그 자체였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사랑, 사랑, 사랑을 말하고 들은 5월이었습니다.

 

어느덧 7년 차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애정은 여전히 달갑고 반갑고 이상하리만치 신기합니다. 대체 나를 왜, 하는 의문 끝에는 아무래도 더 사랑해야겠다는 의연함이 남곤 합니다.

 

물론 이때의 사랑도 슬픔류와 기쁨류의 복합체였습니다.

 

어느 날은 슬픔류의 사랑이 마음 가장자리까지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기꺼이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몇 번이고 잠수를 해댔습니다. 정화수 의식을 치르듯, 내일의 기쁨류 사랑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봄을 미처 다 지나치기도 전에 여름이 와버린 듯 뜨겁던 날들 뒤로, 변덕스럽고 차가운 빗줄기가 옴팡지게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슬픔류의 사랑으로 둔갑했던 몸이 잠겼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살결은 부드러워지는 것을 넘어 천천히 무르고 있었습니다.

 

불어난 손가락을 보자니, 물에 젖었다고 물손가락이라 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비슷하게 불어버린 라면을 보고도 면이 불었다고 하지, 그 안에 스며든 국물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가락에 밴 물을 어느새 손가락의 일부처럼 여기는 걸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물을 사랑으로 치환해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물에 빠지다, 사랑에 빠지다. 사랑을 액체에 빗대어 말하는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천천히 물러지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또 사랑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게, 이름도 없이, 그저 스며들어 어느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물이 손가락에 밴다고 해서 그것을 물손가락이라 부르지 않듯, 사랑도 어느새 한 사람 안에 스며들어 그 사람의 결이 되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부 같은 무름이 아니라 대나무의 무름이랄까요?

 

쉽게 뭉개지고 부서지는 무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과 상황에 몸을 맡긴 채 바람 따라 흔들릴 줄 아는 무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뿌리만은 끝내 제자리를 놓지 않는 대나무처럼요. 어쩌면 그래서 사랑은, 애써 증명받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흘려보낸 사랑은 결국 어디론가 스며들어, 끝내 누군가의 일부가 되고야 마는 법이니까요.

 

생각의 끝에는 가벼운 몸과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날은 사바소바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냄비에는 가쓰오부시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한가득 넣었습니다. 물 위로 둥둥 떠오르는 가쓰오부시를 바라보고 있자니, 꼭 사랑이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쏟아부어야만, 겨우 감칠맛 비슷한 것이 우러나는 법이었습니다. 아낌없이 넣어야만 국물은 비로소 깊어집니다.

 

메밀면은 조금 오래 삶아 푹 물러지도록 두었습니다. 쫄깃함보다는 무름에 가까운 상태로요. 치아의 일이라기보다 혀의 일에 가까운 음식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꼭 사랑의 물성에 가까운 음식이기를 바랐습니다. 단단히 씹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금고 천천히 녹여내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불어버린 메밀면을 후루룩 삼키고 있자니,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무르고, 어느새 국물 속으로 스며들어 제 경계마저 흐려지는 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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