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의 작고 고즈넉한 마을, 한산면. 이곳에 자리한 한산초등학교(교장 장태종)의 한 교실이 순식간에 호주 시드니의 심장부로 변모했다.
교과서 속 활자에만 갇혀 있던 영어는 모니터 너머 8,000km 떨어진 또래 친구들의 생생한 웃음소리와 맞물려 ‘살아 숨 쉬는 언어’로 피어났다.
지난 21일, 한산초 3~4학년 학생들은 호주 공립학교 ‘스트라스필드 사우스 퍼블릭 스쿨(Strathfield South Public School)’과 실시간 화상 연결을 통한 첫 온라인 공동수업의 닻을 올렸다.
단순한 외국어 학습을 넘어, 농촌의 소규모 학교가 글로벌 미래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설득력 있는 첫걸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산초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2026 한국어교육 기반 국제이해교육 학교 특색사업’의 핵심 일환이다.
언어는 닫힌 책상 앞이 아닌 열린 관계 속에서 교감할 때 비로소 내재화된다는 날카로운 교육적 통찰이 담겨 있다.
이날 첫 수업은 양국 학생들이 수줍지만 당찬 목소리로 첫인사를 건네는 ‘아이스 브레이킹(Ice-breaking)’으로 시작됐다.
화면 속 호주 친구들과 직접 눈을 맞추고 서툴지만, 자신만의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긴장감보다 경이로움이 앞섰다.
연간 총 5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 공동수업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 소개하기, 우리 학교 자랑하기 등 학생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주제를 단계적으로 다루며, 언어적 장벽을 자연스럽게 허물고 실전 의사소통 능력을 높여갈 예정이다.
또한 이번 국제교류가 더욱 빛을 발하는 지점은 ‘문화적 주체성’에 있다.
한산초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해외 문화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뿌리인 지역 문화를 세계에 당당히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다.
학생들은 이어지는 수업을 통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빛나는 ‘한산모시문화제’와 달콤한 전통 모시 간식을 호주 친구들에게 영어로 직접 소개할 계획이다.
나아가 고사리손으로 꾹꾹 눌러 쓴 손 편지, 한산의 특색이 오롯이 담긴 기념품과 간식을 정성껏 포장한 ‘K-컬처 박스(K-Culture Box)’를 호주로 발송하는 따뜻한 물리적 교감도 준비 중이다.
첨단 에듀테크 위에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얹어 진정한 마음의 연대를 끌어내는 것이다.
“화면으로 호주 친구들을 직접 만나 영어로 대화를 나누니 정말 신기했고, 다음 수업이 벌써 기다려집니다”라고 소감을 전한 4학년 학생의 말속에는 이번 교육이 선사한 가장 강력한 성취가 담겨 있다. 바로 배움에 대한 ‘자발적인 동기’와 ‘호기심’이다.
물리적 거리나 지역적 인프라의 차이는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다.
한산초의 이번 시도는 농촌 소규모 학교가 가진 공간적 제약을 창의적인 기획력과 열정으로 어떻게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선례다.
한산초등학교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지역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바탕으로, 다름을 존중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글로벌 시민’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서천의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이 유쾌한 반란이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